100日 결사. 2-57일차.
- 말씀/ 본문: 시 53편
- 제목 : 자신이 압제자인지 알아보는 방법
◆ 기도
아버지, 악인의 어리석음은 하나님이 없다고 믿거나, 하나님과 관계없는 듯 살아가다가 하나님을 대면할 날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빚 갚을 날 다가오는 걸 모르고 영원히 빚만 늘리며 살 수 있을 줄 아는 어리석은 자의 방종이 바로 악인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주여,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 본문살핌
신앙의 관점에서, 어리석은 사람이란 하나님이 없다 여기는 자들이다. 그들에겐 창조주도 심판장도 인도할 목자도 없으므로, 선을 행할 줄 모르고. 악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간다(53:1). 그러면 선을 행하는 이는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살펴보신즉 "없다" 하신다(53:2,3). 그러면 모든 이가 어리석은 악인이란 말인데 5절의 「너」는 누구인가? 누구이길래 그들(악인들)에게 오히려 수치를 줄 존재로 묘사되는가? 하나님은 그들이 누구이길래 그들을 대항하여 진을 친 악인들을 흩어버리셨는가?(53:5).
5절의 「너」는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하나님의 백성들)로 보인다. 앞뒤 문맥상 4절의 하나님의 백성, 6절의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에 관한 문장으로 보건대, 그렇게 보인다. 그렇다면 53편의 악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혹은 부정하는 힘있는 압제자가 아닐까? 이 압제자의 세력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알 마음도 없어서 그들이 보기에 좋은대로, 그들의 규율대로 살아간다. 그 자체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지만 그들은 그걸 모르는듯 하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그들보다 강하신 하나님의 손에 의해 흩어지게 될 것이며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53:5). 그리고 하나님께선 자기 백성들을 포로된 상태에서 놓여나게 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날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뻐할 것이다(53:6).
◆ 묵상
이 시편은 14편과 매우 흡사하다. 14편의 주해를 보면 '포로된 상태'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라기보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말한다(GBS). 오늘 묵상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상황 어떤 시대에 누구에게 썼느냐를 연구하는 게 아니라, 본문이 말하는 악인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살펴보는 일일 것 같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이들이다. 그런데 실제 무신론자들 중에 똑똑한 이들이 굉장히 많다. 세계적 리더들 중 비신자와 타종교인들이 즐비하다. 그들에겐 법이나 질서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저마다 높은 수준의 법률을 제정한다.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오늘 본문의 노래는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 기록했다. 그렇다면 이는 바보만 하나님 없다고 믿는단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믿는 이들이야말로 참된 바보들이다" 하는 의미로 볼 수 있겠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 생각하니 그들에겐 훗날 셈할 심판이 존재하지 않는다. 머릿 속에 심판날이 없으니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뜻과 반하는 일이 많을 수 밖에 없겠고 그중 심각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한다는 것이다. 본문기자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떡 먹듯이 먹는다"고 말하였다.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치 않지만 압제하거나 착취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이를 좌시하지만은 않으신다. 그들의 뼈를 흩으시며 그들을 버려두어 수치를 당하게, 더 이상 승승장구 못하게 하신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거나 착취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곧 악인이며 어리석은 자이고 하나님은 없다 여기는 자다. 그가 제사장이건 왕이건 선지자건, 그가 쓴 외형의 탈은 중요하지 않고 그들의 내면과 삶이 자기 존재의 진짜 정체를 드러낸다. 아합 왕도 왕이었고, 예레미야 때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궁정 선지자로 먹고 살았으며, 부패한 제사장들은 이사야의 책망을 받았다.
혹 자기가 리더의 자리에 있다면,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을 두려워하며 아끼고 사랑하고 섬기는가? 혹은 자기 발 아래 두며 존경과 공물을 즐겨 받는가? 이 질문은 본인이 악인인지 아닌지, 하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알수 있는 좋은 자가진단이 될 것이다. 만일 돌이키지 않는다면 화가 임할진저, 본문처럼 하나님의 보응이 반드시 임할 것이다. 이 질문에 자유로울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인간은 누구나 약한 고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에 찔리고 애통하고, 뜨끔한 이들은 돌이키기 가벼울 것 같다. 오히려 스스로 생각컨대 아무 문제가 없는 이가 더 문제일 것이다.
종이 주인을 압제할 수 없고, 포로가 승전군을 압제할 수 없다. 누군가를 압제하는 이는 어떤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다. 교회에선 말씀이 권력이 된다. 신앙의 중심부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회자, 혹은 사역자 그룹이 조심해야 한다.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확인된 순간, 그들에겐 책무와 함께 일정한 권한도 주어지기 때문이다.
섬기라고 주신 권한이 권력화되는 것은 찰라의 일이다. 섬기기 위한 힘을 이용해 섬김을 받는 순간 끝장이다. 공동체의 사랑과 도움을 받는 대신 높임을 받고 수발을 받는 순간, 이미 내가 권력을 사용하고 있는 중임을 알아야 한다. 알아채면 바로 내려와야 현명할텐데 그게 잘 되겠나... 개들도 정해진 시간에 간식을 줘 버릇하면 나중에 요구성 짖음이 생긴다. 정해진 밥을 잘 주는데도 간식시간에 간식 안준다고 컹컹대고 나중엔 화도 낸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섬김을 당연시 하면 나중엔 그게 권력인 줄 안다. 생전에는 누리다가 눈 감을지 몰라도 죽자마자 여호와의 불같은 콧김과 대면할 줄만 알고 있어라.
그전에, 눈 감기 전에 겸비한 마음으로 돌아가는게, 그렇게 할 기회를 만들어 주시는게 정말 은혜다. 십수년, 혹은 수십년 더 대우받다가 영원히 패망하느니 몇 십년 살짝 서운한듯 살다가 하나님 자녀로 영원히 사는게 더 이익이고 행복이다. 오늘에 주시는 말씀을 받아먹고는 있으나 이런 권력있는 처지에 가 본 적은 없어 실제적인 감은 안 오지만, 나 역시 조심해야 겠다. 조그마한 권한이라도 주어진다면, 그것이 권력이 되어 작은 자 한 사람이라도 압제하거나 착취하는, 그래서 실족시키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겠다. 사탕 한 개라도 조심히 받고 감사하는 마음, 갚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 기도
아버지, 오늘 말씀 마음에 새깁니다. 성령께서 언젠가 이 말씀 필요한 날 꺼내어 다시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기 위하여, 제 삶에 늘 함께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