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는 길을 떠나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스바 3,14-18; 루카 1,39-56 / 마리아 방문 축일; 2024.5.31.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입니다. 5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을 축일로 정한 이유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25)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24) 사이에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셉과 정혼한 직후에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고 구세주를 잉태하게 되리라는 엄청난 소식을 전달받으신 마리아께서는 바로 그날로 엘리사벳을 방문하기로 마음을 굳히셨습니다. 왜냐하면 천사가 전해 준 소식 안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로 알려진 사촌언니 엘리사벳이 늙은 나이에도 아이를 잉태한 지 여섯 달이나 되었다는 소식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사로서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심을 확신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겠지만, 마리아로서는 석 달 후면 아기를 출산하게 될 엘리사벳에게 도움이 필요하리라는 생각도 했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잉태 소식을 부모나 정혼자 모두에게 당장에는 도무지 알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찾아온 천사가 떠나가자 마리아께서는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엘리사벳에게로 가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알렸습니다. 이 소식은 단지 한 아기를 잉태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 탈출 이후 하느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아온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을 하느님께서 지키셨다는 소식이기도 했고, 그토록 고대해 온 메시아께서 탄생하시리라는 소식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방문 인사를 받은 엘리사벳도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2.45) 성령의 귀띰으로 아기의 잉태 사실을 눈치챈 엘리사벳이 건넨 인사말을 듣자 마자, 마리아께서도 부모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메시아 대망 사상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였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성모 찬송입니다.
이 찬송 노래 속에는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종교인들, 즉 사두가이나 바리사이 같은 자들을 역사의 무대에서 내치시리라는 종교적 해방의 소식을 필두로 해서,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도한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하느님을 섬겨온 아나빔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되리라는 정치적 해방의 소식을 포함하고 있었고, 또한 무도한 정치 탓으로 굶주려 온 이들이 배불리 먹게 되는가 하면 나눔을 거절하고 호의호식해 온 부유한 자들은 빈손으로 내쳐지리라는 경제적 해방의 소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메시아로 인한 이러한 해방의 과제가 바로 스바니야가 예언한 대로, 환성을 올리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파스카 과업이었습니다: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스바 3,14)
이렇게 가슴 벅차게 하느님을 찬송한 마리아에게는 그가 미혼모로 의심받을 수도 있고 따라서 율법 규정에 따라 돌에 맞아 죽는 수치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자리잡을 틈이 없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낳을 아기가 사생아로 취급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요아킴이나 어머니 안나, 정혼자 요셉이 자신을 의심한 나머지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는 걱정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구세주 잉태의 전갈을 보내신 하느님의 자비와 안배에 앞으로의 운명을 맡겨드릴 따름이었습니다. 이는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인해 나타난 ‘상하지 못함’의 은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두려움도 마리아에게 작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아나빔으로서 살아온 마리아의 믿음이 순수하고 튼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 초대교회를 이끌었던 신앙 선조들도 그러했습니다. 이벽이나 권철신과 권일신, 그리고 약전, 약종, 약용의 정씨 삼형제, 그리고 이들과 함께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양반 선비들 모두 자신들의 이러한 행동으로 인하여 무려 백 년이나 끔찍한 박해가 닥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천주교 교리가 일러줄 신앙의 진리가 나라를 구하고 민족을 구하며 백성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절절한 희망뿐이었습니다. 심지어 대역죄인으로 몰려 능지처참형을 당한 황사영 알렉시오조차 그러했습니다.
한국 초대교회의 인물들은 경기도 양주 인근 지역 출신의 양반들이었는데, 이벽과 홍교만은 포천, 권철신과 일신 형제는 양근, 약전과 약종과 약용의 정씨 삼형제는 마재, 황사영은 송추 등 경기도 북부 지방 출신들이었습니다. 불행히도 이 선비들은 조선 왕조와 노론으로부터 대역죄인(大逆罪人) 내지 무군무부(無君無父)의 무리라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를 당하여 당시 조선 사회에서 모조리 축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후 2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이들이 열어젖힌 이 민족의 역사는 이 민족이 섬겨야 할 하느님의 최고선을 향하고 있었으니, 바로 양심과 신앙의 자유, 사회적 신분 차별과 남녀차별을 철폐하고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 평등할 자유 그리고 누구나 자기 실현과 사회 공동선을 위해 헌신할 자유를 실현하는 최고의 가치가 바로 그들의 용감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어 버리시고, 무도한 통치자들을 끌어내리시며, 탐욕스런 부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시는” 파스카 과업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민족의 복음화는 마음이 겸손한 아나빔들이 종교적으로 각성하고, 비천하게 억눌리던 민중이 정치적으로 주역이 되며, 착취당하고 소외되어 온 노동자 · 농민들이 제 몫을 되찾게 되는 그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만나러 떠난 여정은 성령께서 이끄신 길이었고 앞으로도 성령 안에 살게 될 것임을 확인하는 믿음의 길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래로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성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비로소 실현되기 시작했음을 확인하는 기쁨으로 가득 찬 석 달 간의 만남이기도 했습니다. 태중에 모신 성자 하느님으로 인해 여인 중에 복되신 분이 된 기쁨의 나날이기도 했지요. 그래서 이 여정은 우리 신앙인들이 일생 동안 걸어갈 영적 여정의 모델이 됩니다. 성모성월의 마지막 날인 동시에 마리아의 방문 축일인 오늘,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하느님께서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이루어 주실 종교적 각성과 정치 경제적 해방을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