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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廣場] 탄핵의 ‘아는 맛’에 취한 언론들, 반대시위는 못본 척
자유일보
황근
점입가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무시무시한 ‘내란 수괴’ 범죄자로 몰아세우면서 정권 찬탈을 위해 거침없는 행각을 벌이고 있는 야당이 그렇다. 당 대표의 여러 범죄 리스크들로 막판에 몰려 있는 야당의 조급함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영화 제목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 실행해 보지도 못했던 불과 6시간의 계엄 선포를 온 국민을 학살하려는 내란으로 몰아 대통령을 탄핵하더니, 정작 헌법재판소 심의가 시작되자 탄핵 사유에서 ‘내란죄’를 제외한다는 촌극인지 야바위 짓인지 모를 기상천외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총리도 국회의장 마음대로 151석 의결정족수를 정해 탄핵시키고, 심지어 권한대행의 권한대행까지 탄핵하겠다고 겁박하고 있다. 말 그대로 나라를 완전히 파탄시키려 작정한 것 같다.
야당만 그런 게 아니다. 검찰·경찰은 계엄 조치가 해제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대통령을 반란범으로 잡아넣겠다고 득달같이 나섰다. 심지어 존재감 없었던 공수처까지 나서 숟가락을 얹고 있다. 사법부 행태는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판사가 임의대로 법 적용을 유예해 주는 불법 체포영장을 내주지 않나, 그야말로 무법천지의 사법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법치국가가 아니라 판사가 마음대로 통치하는 ‘판치국가’인 것 같다.
상식조차 찾아볼 수 없는 정치적 마녀사냥에 언론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어떤 언론에도 계엄 조치나 대통령 탄핵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거나 평가하는 기사들은 거의 없었다. 탄핵 촉구 시위를 호들갑 떨며 경쟁적으로 생중계했던 매체들이 주말마다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는 요즘 말로 완전히 ‘생까고’ 있다. 탄핵을 반대하는 소리는 자발적으로 검열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언론들이 왜 그럴까. "제일 맛있는 맛은 아는 맛"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7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통해 군중심리에 영합하는 ‘황색언론’의 달콤함은 우리 언론들이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는 ‘아는 맛’일 수 있다. 아니면 극심한 경영 압박과 존립 위기에 봉착한 기성 언론들이 정치권력에 기대어 살아남으려 벌이는 처절한 몸부림일지 모르겠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마치 60년 전 중국의 문화혁명이 재현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대중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탄핵 반대 시위는 점점 커지고 있고, 이전에 보수성향 군중집회에서 볼 수 없었던 저항행위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이례적으로 탄핵 중인 윤석열 대통령 지지도는 탄핵 아니 계엄 이전보다 높아졌다는 조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왜 수많은 사람들이 탄핵 반대를 위해 광장에 나오는 것일까? 그 원인은 정치와 시민들을 연결하는 ‘공론장’(public sphere)이 완전히 왜곡됐기 때문이다. 이미 국회와 정당은 국민을 대변하는 대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이고, 그나마 이를 대행해 왔던 기성 언론들까지 정치적·상업적 이유로 공론 기능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자기 의사를 표출하기 위해 직접 광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공론장 이론을 처음 제기한 위르겐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기원을 17~18세기 영국·프랑스의 카페나 살롱 등에서 벌어졌던 합리적 토론 공간에서 찾고 있다. 이런 공론장은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혁명 과정에서 극단적 충돌을 억제하는 완충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19세기 이후 공론장은 미디어로 이전됐고, 상업화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체제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탄핵 반대를 위해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은 한국 사회의 공론장이 완전히 파괴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성 언론이 외면하는 동안 많은 인터넷 매체들이 대안적 공론장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합리성이 상실된 정치제도와 사법 시스템 그리고 기득권화된 기성 언론에 맞서기 위해서는 더 체계화된 대안 공론장이 구축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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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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