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장례, 장묘문화 개선 할 수 없을까?
4월에 유럽 여행을 갔을 때나 케나다, 호주, 뉴질랜드에 갔을 때 드넓은 초원과 광활한 평야가 부러웠다.
그 넓은 국토에 우리나라 아무데서 흔히 볼 수 있는 묘지가 없는 것이 더 많이 부러웠다.
요즘 추석을 앞두고 전국에서 묘지의 벌초를 위해 많은 인력이 투입될 것이고 교통 혼잡과 에너지 낭비, 잡초 제거를 위해 많은 농약을 사용하니 토양 오염이 크게 우려된다,
나는 고향의 우리 가족 묘지를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나무를 심어 앞으로 사망하는 가족부터는 수목장이나 자연장 또는 잔디장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형님 형수들이 모두 반응이 없어 답답하다.
앞으로 20여 년 후 지금 60대인 우리가 죽을 때에는 사망자가 지금의 3배가량으로 묘지난이나 장례식장 등 장례시설과 승화원(화장장), 어쩌면 납골당이나 수목장도 모자랄 것이라는 통계다.
한국장묘문화개혁 운동본부 위원인 풍수지리가 박민찬씨는 국내묘지의 99%는 명당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풍수지리설은 자연의 원리에 따라 존재하는데 자연이 파괴되면 풍수지리설이고 명당 이고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한다.
그는 땅속에는 명당에 해당하는 온혈(溫穴) 이외에 냉혈 등 묘지에 나쁜 영향을 주는 20여 가지의 지형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아무리 유능한 사람도 온혈 즉 정혈(正穴)을 제대로 찾아 묘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 하므로 아무 문제없는 화장을 택하라고 한다.
현재 관리되고 있는 전국의 묘지 중 오래되었거나 무연고 묘지는 하루빨리 정리하여 나무를 심고 앞으로 생겨나는 묘지를 억제해야 한다.
이제 국민의식이 변하여 대체로 화장을 하고 가족묘를 조성하여 납골당을 만들어 유골을 보관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땅속에 돌로 만드는 납골당이 재래식 봉분보다 자연에 더 부담을 준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묘지문화는 중국에서 전해온 유교사상이 뿌리인데 정작 그 원조국인 중국은 법으로 정하여 100% 화장을 하고 있고 장례문화도 우리보다 훨씬 간결하다고 한다.
그것은 중국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등소평 부부와 5남매는 정부에 공개서한을 보내 자신들의 사후 장례절차를 간소하게 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는데
첫째 유해 고별식을 하지 말고
둘째 추도 대회는 화장 후 치르며
셋째 집에는 빈소를 설치하지 말고
넷째 각막을 기증하고 유체를 해부에 의학 연구에 제공하며
다섯째 유골은 남기지 않는다.
그 이전에 주은래 지도자 부부도 “화장 후 조국산하에 뿌려 달라“ 는 유언에 따라 화장 후 가루를 등소평이 비행기를 타고 전 국토에 살포했다고 한다.
2001년부터 시행에 들어간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있긴 하지만 잘 실행되지 않고 있다고 본다. 법률은 매장 60년 후 납골 화장을 의무화하고 묘지면적 상한선도 과거의 3분의 1로 축소하였지만 2001년 이전에 설치한 분묘는 해당이 안 돼 전국의 국토 1% 이상이 묘지라고 한다.
앞으로는 그 보다 더 강화하여 아예 개인묘지는 금지하는 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땅덩어리가 광활한 미국에도 개인묘지는 없고 집단(공원) 묘지에서도 1기당 1평 미만이고 묘지 간 간격도 20 쎈치 미안이라고 한다.
스위스와 독일 등 유럽에서는 1990년대부터 수목장이 시작되어 지금은 보편화 됐고 영국에서는 유골위에 장미꽃을 심는 장미묘원이 인기라고 한다.
‘수목장은 자기 자신이 죽음이 되면서 삶이 되는 장법이요 대지로 온전히 돌아가는 장법‘ 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과,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는 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고 한 톨스토이의 말을 음미 해보면서 자신의 죽음 이후 처리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 대부분은 공원묘지가 주거지 가까운데 위치하고 있어 유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고 화려하게 만들어 결혼식장으로도 함께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승화장이나 추모공원을 기피시설로 생각하여 시내에 설치하지 못하도록 극렬 반대하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
우리 삶의 중심에 죽음이 함께 하여야 한다. 죽음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 아니고 곧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며 살아야 한다.
나는 매년 초에 유언장을 작성해서 컴퓨터 내에 저장 해두고 해마다 보정하고 있다. 거기에 나의 두 딸들에게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나의 어머니 묘역에 삽장(揷葬) 하라 했고, 염의식도 하지 말고 수의는 평소 입던 옷으로 하며, 관은 가장 싼 나무관이나 딱딱한 종이로 하되 부조금도 받지 말라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선진의식을 가지고 합리적인 장례문화를 실천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대표적인 게 경기 양평에 있는 소망교회 묘지다.
교회 수양관 앞마당에 ‘소망교회 성도의 묘’ 라는 비석이 서 있고 비석 주변에 자갈을 깔아 그곳에 화장한 골분을 뿌리게 되어 있다. 묘역은 8.9평에 불과하지만 1995년 2월 묘지를 만든 이래 2,000 여명이 잠들어 있다고 한다.
10평도 안 되는 묘역이 수 천 명 신도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될 수 있으니 수목장보다 훨씬 앞서간 방식이다.
소망 교회식 묘지는 전국의 다른 교회에 영향을 주어 다수가 있다고 한다.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가족은 물론 수많은 신도들의 예배와 추모행렬이 끊이지 않아 고인들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자연을 해치지 않고 죽은 자와 산자들이 가까이서 교감할 수 있으니 그보다 더 합리적인 방법이 없다고 본다.
이제 요란한 장례와 호화 묘지를 가문의 융성과 효도의 상징으로 여기는 인식은 사라지고 자연에 부담을 주지 않는 장례로 변해야 한다.
앞으로는 아예 묘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인도의 영웅 네루, 중국의 주은래 와 등소평, 아인슈타인, 엥겔스, 등이 모두 유언에 따라 화장하여 강이나 바다에 뿌려져 묘지가 없고
프랑스의 영웅 드골 대통령은 자신보다 먼저 간 딸이 묻혀있는 시골 공동묘지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공동묘역 딸의 묘 옆에 묻혔다고 한다.
앞으로는 묘를 만들지 않고 사이버로 참배하면 된다. 사이버 상에 고인의 생전 치적이나 일상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올리고 유족은 물론 어느 누구나 추모의 글을 남기는 등 언제든지 심지어 해외에서도 수시로 고인을 만날 수 있게 하면 된다. 이미 이런 제도는 일부 시행되고 있다.
전 국민이 참여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은 모두 호화분묘를 조성해서 언론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호화분묘나 명당이라는 것이 미신이라는 것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때 왕들의 무덤을 그렇게 크고 좋은 곳에 했지만 모두 나라가 망했고 근대 이후 한국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증명한다.
앞으로 역대 대통령 가운데 묘를 만들지 않는 이가 나왔으면 좋겠다.
나는 월남파병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을 정말로 존경한다.
모두 호화묘역과 큰 묘역에 가고 싶어 안달인데 장군묘역에 묻히는 것이 보장되었지만 사병과 구분하면 안 된다며 사병 묘역에 묻힌 그분을 이순신, 세종대왕 못지않게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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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카나다에 묘지는 동네 대로옆에두 있구요
봉분만없지 괭장히 깊이 매장을 한답니다 평평하게요
대신 비석으로 부를 나타내듯
특히 중국 묘역은 더 ?
공감백배 ~~~ ^^
요는
가진사람들의
발상의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