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 하재일 모기에 고통 받는 수좌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가슴팍에 구멍을 하나 뚫어 모기에게 피를 나눠준 달마가 있었다 그로 인해 선방 스님들은 편안하게 정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달려드는 음험한 모기 몇 마리가 더 있었다 모기떼만큼 뒤에서 쑥덕공론하며 안거에 뜻이 없는 수행자들이었다 피가 아니라 목숨을, 네 자리를, 네가 가진 보따리 전부를 통째로 달라는 노골적인 요청이었다 아예 심장을 떼어 달라고 말하는 피투성이 사람도 있었다 돼지만 들끓고 나한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끝없이 구멍만을 후벼팠다 모기보다 작은 흡혈귀 인간들, 모기보다 못한 구멍 속으로 달아나고 허공엔 거대한 풍선이 하나 떠 있다
- 시집 『모과는 달다』 (달아실, 2024.08)
* 하재일 시인 1961년 충남 보령 출생, 공주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 1984년 월간 『불교사상』 등단 시집 『코딩』 『동네 한 바퀴』 『달마의 눈꺼풀』 『모과는 달다』 등 청소년시집 『처음엔 삐딱하게』 (공저) 등 **************************************************************************************** *** 이번 주 목요일이 처서이지요.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 말입니다. "처서비가 내리면 사방 십리에 천석을 감한다"고 했던가요. 아무튼 처서를 앞두고 오늘은 하재일 시인의 신작 시집 『모과는 달다』에서 한 편 띄웁니다. -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이 시를 읽다가 문득 그 유명한 달마와 혜가의 "안심(安心) 법문" 일화를 떠올립니다. 소림사가 있는 쑹산(嵩山)의 바위동굴에서 달마가 9년째 면벽수도를 하고 있습니다. 눈보라가 치는 어느 겨울 날, 40대의 신광이라는 남자-훗날 선종의 2대조가 되는 혜가(慧可, 487~593)-가 달마를 찾아옵니다.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말이지요. 눈보라 속에서 사흘 낮밤을 꼬박 선 채로 기다린 끝에 마침내 달마가 동굴을 나와 묻습니다. - 무엇을 구하러 왔는가? - 뭇 중생을 구하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 -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면 법을 주마. 그 말을 들은 신광이 칼을 뽑아 자신의 왼팔을 잘라버립니다. 사방으로 피가 튀자 눈밭은 어느새 붉은 피로 물들었지요. 그야말로 붉은 눈이 내린 듯 말입니다. 그 모습을 본 달마가 한마디합니다. - 부처는 몸으로 몸을 삼지 않듯, 목숨으로 목숨을 삼지 않으니 법을 구할 만하다. 그렇게 신광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법명을 내립니다. 그가 바로 선종의 2대조 혜가(慧可, 487~593)입니다. 달마의 제자가 되었지만, 공부도 수행도 더디기만 했습니다. 불안한 혜가가 달마에게 찾아가 하소연합니다. - 스승님, 공부에 진전이 없으니 마음이 불안하고 괴롭습니다. - 그렇다면 돌아가서 그 마음을 가져 오거라. 내가 네 마음을 편하게 해주마. 스승의 말씀에 막상 마음을 찾아보지만 찾을 도리가 없었겠지요. - 스승님,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마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달마가 웃으며 말합니다. - 네 불안한 마음이 이미 없어졌느니라. 보고 있느냐? 이 선문답 일화하고 오늘 소개한 시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가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느냐고 묻지는 마시길요. 요즘 티비만 틀면 나오는 용산과 여의도발 뉴스 속 인간들, 나한을 자처하며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고 떠드는 저들이 알고 보면 다 모기와 돼지들이란 말입니다. "돼지만 들끓고 나한은 보이지 않"으니 괴롭다는 말입니다. "허공엔 거대한 풍선이 하나 떠 있"고, 거기에 매달린 나를 포함한 중생들을 생각하면 가엾고 또 가엾습니다. 처서가 코앞인데, 더위는 도무지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하게 살아내야겠습니다. 2024. 8. 19.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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