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허리춤, 너를 담아둔 포켓이 늘어질수록 내 맵시는 꼰대처럼 굽어 슬프고
담을 수 없는 것은 그것대로 슬프다
너의 슬픔이 그러하다
언젠가 백화점 쇼윈도 앞에서 구찌 백을 바라보다 스타벅스에서 혼자 시무룩한 커피를
마셨다던 너 그것은 담을 수 있다
주말저녁 로맨틱 코미디영화를 보고 재미없네 하면서도 허전함을 감추지 못하던
너의 눈동자 그것도 담을 수 있다
나중에 같이 살면 욕조 달린 원룸에 개 한 마리 키우자고 말하고 세면대 없는 화장실에서
쭈그려 머릴 감고 있던 너, 옆에 세워져있던 엘라스틴 병속에 절약형 도브 샴푸
그것도 담을 수 있다, 어느 밤 넌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놓아줄게 잘가라며
난데 없는 문자를 보내놓고 그래, 안녕이라는 나의 답신에 담담한 척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니홈피 대문글을 바꾸던 너, 그것도 담을 수 있다
며칠 뒤 새 남친이 사줬다며 짭퉁인지 진퉁인지 모를 구찌백 사진을 업데이트 하고
오늘의 기분에 ‘설렘♥’을 띄워놓은 너, 그것도 담을 수 있다
까짓것 그에게 쳐 맞고 밤탱이 되어 ‘아픔’을 띄워 놓을 너도 담을 수 있다, 담고 싶다
구멍가게에서 담배 한 갑 사서 찔러 넣듯 썅년, 하고 돌아서버린 나
그럼에도 널 잊지 못하는 나, 이런 것은 담을 수 없다
이를 테면 우리가 외로워서 만났다가 외로워서 헤어졌다는 거
이런 것은 담을 수 없다
잔뜩 허기져 늘어진 내 포켓
첫댓글 좋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