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아침 살금살금 / 함순례
밤새 내린 눈이 대지와 포옹을 나누고 있네 이대로 깊어지는 마음이 있다면 온 마을이 환하겠네 그 눈부신 포옹을 굳이 풀 일인가 마루에 앉아 한동안 바라보다가 등굣길 아이들 생각에 몸을 일으키네 빗자루 들고 대문을 나서자 잠꼬대에 빠져 있는 골목이 뒤척이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지낸 숫눈들의 잠을 흔들어 길가로 모아주네 비질 세수를 마치면 차례로 드러나는 글자들‘학교앞 천천히 어린이 보호구역 30’졸린 눈 비비며 눈을 뜨는데 좀 있으면 완전히 흰 잠에서 깨어난 어린 책가방들이 입김 내쉬며 이 모퉁이를 돌겠지 노란 웃음 태운 통학버스도 가뿐히 지나가겠지 모두가 잠든 이른 아침 살금살금 등교하는 비질 소리
- 시집 『구석으로부터』 (애지, 2024.05) -------------------
* 함순례 시인 1966년 충북 보은 출생. 한남대 영문과 졸업 1993년 《시와 사회》 등단. 시집 『뜨거운 발』 『혹시나』 『나는 당신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울컥』 『구석으로부터』 2014년 〈한남문인상〉, 2019년 〈아름다운작가상〉, 〈충남시인협회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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