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어느 겨울밤,
노고단대피소
지리산에 머물 수 있는 수십 가지 방법 중 노고단대피소 코스는 가장 쉬운 길이라 할 수 있다. 그 아래 성삼재휴게소부터 대피소까지는 길이
쉽고 거리도 짧다. 하지만 겨울에는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휴게소까지 다니던 버스는 겨울철에 운행하지 않고, 폭설이 내리거나 땅이 꽁꽁
얼어버리면 그 부근까지 올라가는 택시도 찾아보기 어렵다. 화엄사를 지나 노고단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 역시 막막하다. 자칫 눈 때문에 길 자체가
없어져 오도 가도 못하는 구간을 만날 수 있다. 겨울 지리산은 그 품을 그리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노고단 정상의 일출
노고단 고개로 걸어가는 길
지리산은 전라북도 남원시와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산청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그 이름이 ‘지혜를 주는 산’이라는 뜻을 가졌다. 높이
1,916.77m의 주봉인 천왕봉과 지리산의 서쪽 끝인 구례군의 노고단(1,507m), 중앙의 반야봉(1,751m)을 중심으로 삼봉이 우뚝 솟은
거대한 산악을 이루고 있다. 많은 이들이 지리산을 어머니 품속 같은 산이라 칭하며 깊은 애정을 표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관리하는 공식적인
등산로는 17코스이고, 대피소 6곳과 야영장 6곳이 있다.
지리산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천은사에서 성삼재휴게소로
이어지는 길과 휴게소에서 노고단대피소로 이어지는 길, 그리고 노고단에서 화엄사로 이어지는 길이다. 천은사 구간은 차량으로 이동하기 용이한
코스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혔으며 1,000m 넘는 고지를 걷지 않고 오를 수 있는 구간이다. 하지만 겨울에는 차량을
이용하기가 어렵다. 구례터미널에서 성삼재휴게소까지 다니는 버스가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운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날씨가 따뜻할 때는
성삼재 부근까지 택시가 다니지만, 요금이 3만 5,000원 정도다. 더구나 산 아래에서 보는 것과 달리 막상 위로 올라가다 보면 택시조차 지날
수 없어 결국 걸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자기 차량으로 오르는 것도 운전이 아무리 능숙한 사람이라도 쉽지 않다.
산행길인 화엄사
코스는 7km 구간에 난이도가 중간이지만, 겨울 등산은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겨울 노고단에 오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천은사에서부터 걷는 것일지도 모른다.
[왼쪽/오른쪽]천은사 일주문 현판 ‘지리산 천은사’ / 천은사 극락보전
걷는 길에 마주하는 풍경
천은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28년에 창건되었다. 전쟁과 화재 등으로 소실된 것을 복원과 중수를 거쳐 현재 건물 20여 동이 남아 있다.
천은사 일원은 1984년 2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었다. 경내로 향하는 첫 관문인 일주문의 현판이 독특하다. 조선시대 4대
명필가로 꼽히는 이광사가 물 흐르는 듯한 필체로 ‘천은사 일주문’이라 써서 걸었다고 전한다. 천은사 옆으로 천은계곡을 따라 지리산에서 흘러온
물이 모여 천은저수지를 이룬다. 경내에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0호인 극락보전을 비롯해 아미타후불탱화, 괘불탱, 금동불감 등 여러 가지 보물이
있다. 현재도 새로 짓는 건물들이 있어 과거와 지금의 건축술을 비교해볼 수 있다.
천은사를 지나 성삼재로 향하는 길에 삼일암, 도계암,
수도암, 상선암 등 산내 암자들이 자리한다. 천은사에서 성삼재휴게소까지는 1988년에 개통된 지리산 횡단도로를 이용한다. 총 10km 구간으로
걸어 올라갈 때는 3시간 반, 내려올 때는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왼쪽/오른쪽]시암재휴게소 / 성삼재휴게소
[왼쪽/오른쪽]제설 작업 중인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 / 성삼재휴게소에서 보이는 구례의
마을
성삼재에서 2km 떨어진 시암재에도 휴게소가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지리산 특산물과 관광기념품을 판매하며, 직접 담근 과실청으로 만든 음료와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음식을 내는 식당이 있다. 해발 1,102m 성삼재는 삼한시대에 성이 다른 세 장군이 지켜낸 고개라는 뜻을 지녔다.
주차장과 휴게소,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고, 등산용품 판매점과 커피 전문점도 자리한다. 노고단 탐방로 안내소가 있어 등산객들의 안전장비를
점검하고, 등산 시 주의사항 등 정보를 제공한다. 성삼재 방향으로는 노고단 정상이 올려다보이고, 아래로는 구례군의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노고단 고개까지는 최단거리 4.7km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왼쪽/오른쪽]노고단 코스 / 노고단대피소에서 보이는 풍경
[왼쪽/오른쪽]노고단대피소 전경 / 대피소 앞 ‘할미’상
어느 겨울, 지리산의 일몰과 일출
노고단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를 국모신으로 모시고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면서 노고단으로 불리게 되었다. 노고는 순우리말로
‘할미’라는 뜻이다. 예부터 신령한 장소로 여겨지던 이 부근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환경파괴가 속출했다. 해방 후에는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완만한
경사도, 넓은 대지 등을 갖춘 탓에 전국스키대회가 열리기도 했고, 1960년대 벌목이 성행하며 노고단 부근의 주목들이 사라지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성삼재 횡단도로가 개통되면서 탐방객이 급증했다. 결국 노고단의 생태는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1991년에 이르러서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노고단에 자연휴식년제를 적용해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복원공사를 시작했다.
2001년 8월부터 재개된 노고단 탐방은
예약제와 지정제로 운영된다. 여름과 가을에는 1일 탐방인원을 제한하고, 안내원이 동행하여 자연생태에 대한 해설을 들려준다. 그 외 기간에는
인원에 상관없이 입장할 수 있지만, 탐방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로 제한한다.
노고단 고개 돌탑
[왼쪽/오른쪽]노고단 고개 옆 지리산 종주 시점 / 노고단 고개 옆 전망대 가는 길
노고단에서는 일몰과 일출을 모두 볼 수 있다. 그중 일몰은 노고단대피소에서 보면 좋다. 노고단 고개에서 해가 진 후 어둠 속을 걸어
내려오는 것은 위험하다. 일출은 노고단 고개에서 봐야 한다. 천왕봉 방향에서 해가 떠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 뜰 무렵 오르는 길에
미미하지만 빛이 있어 보다 안전하다.
대피소 내 숙박은 인터넷 예약제로 진행된다. 국립공원 대피소는 일반 여행객을 위한 숙박업소가
아니다.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직원들의 숙소이자 등산객의 쉼터이며, 산행 중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피난처이다. 식수는 아껴서 사용하고, 취사는
정해진 구역에서만 하며, 쓰레기는 도로 가져가야 하는 이유다. 모르는 사람들과 하룻밤을 지내야 하는 만큼 지켜야 할 사항들은 반드시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노고단까지 길이 아무리 쉽다 해도 이곳이 지리산임을 잊지 말자. 겨울 산행은 난이도와 상관없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빙판길과
추위에 대비한 장비는 꼭 챙겨야 한다.
노고단 대피소의 일몰
여행정보
지리산 노고단대피소
주소 : 전남 구례군 산동면 노고단로
1068-321
문의 : 061-783-1507, www.knps.or.kr
1.주변 음식점
구례구역 수원식당 : 순천시 황전면 섬진강로 225 /
061-782-4842
동해식당 : 구례군 구례읍 중앙로 3 /
061-782-1931
시암재휴게소 : 구례군 광의면 노고단로 209-1 / 061-782-1199
2.숙소
황토한옥펜션 : 구례군 광의면 매천로 411 /
061-781-9922
구례둘레길 게스트하우스 : 구례군 광의면 한국통신로 83-22 /
061-782-0203
월등파크호텔 :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377-18 / 061-782-0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