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이란 지하 암석에 자연적으로 생긴 깊고 넓은 굴이다. 일단 사람이 충분히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 동굴은 오랫동안 우리 인류 조상들의 집이었다. 동굴은 암석의 종류나 생성원인 등에 따라 구분된다. 우리나라에는 석회동굴과 용암동굴, 해식동굴이 많다.
만장굴 내부의 웅장한 모습. <제공: 제주도 세계자연유산관리단>
제주도는 화산섬이다. 당연히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흘러가면서 만든 용암동굴이 곳곳에 분포해있다. 용암이 흘러갈 때 공기와 맞닿는 용암의 표면은 온도가 낮아 먼저 식어 굳어지지만, 온도가 높은 용암의 내부는 계속 흘러내려 빠져나가 비게 된다. 이에 따라 둥근 관 모양의 용암동굴이 생겨나는 것이다. 용암동굴은 관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에 영어로 ‘lava tube’라고 한다. 흘러가는 용암의 수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동안 새로운 용암층이 생겨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다층구조의 용암동굴이 형성되기도 한다. 용암동굴을 흘러간 마지막 용암은 동굴의 바닥과 벽에 달라붙어 남아있게 된다.
제주도에는 160개가 넘는 용암동굴이 분포하고 있다. 10만년전 한라산 중심에서 터진 용암이 바다로, 바다로 흘러가던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동굴들은 제주시 동부지역, 제주시 서부지역, 서귀포시 동부지역에 마치 사람의 혈맥처럼 지하에 분포하면서 숨을 내쉬고 있다.
만장굴의 종단면도.<제공: 제주 세계자연유산관리단>
동굴 위로는 포장도로가 개설돼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농경지가 개간돼 농약 등 각종 오염물질이 동굴 속으로 스며들기도 한다. 용암동굴은 형성된 후 1만년이 지나면 붕괴와 침식이 되거나 외부에서 유입된 물질로 채워진다고 알려져 있다. 제주도의 용암동굴은 대부분 10만년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위험성이 더욱 심각하다. 사단법인 제주동굴연구소 등 전문가들의 조사결과 동굴 내부광장의 천정, 측벽부, 내부 지형 등이 파괴 내지는 붕괴단계에 놓인 동굴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예고 없는 동굴 함몰로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소중한 자연자산인 동굴을 안전하게 보존하면서, 동시에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할 시점이다.
1946년 조명도 탐사장비도 없던 시절, 초등학교 학생들이 탐험에 나섰다. 부종휴 선생님과 제주시 구좌읍 김녕초등학교 제자들이 짚신을 신고, 횃불을 들고 현재 만장굴 제1입구(김녕미로공원 주차장 뒷편)로 굴에 들어간 것이다. 이들은 2m 길이의 노끈을 이용해 만장굴의 길이를 추정하면서 수차례에 걸쳐 탐험을 시도, 마침내 1947년 지금의 제3입구까지 발견했다. 탐험을 마친 부종휴 선생님은 길다는 의미의 만, 제3입구의 옛 이름인 ‘만쟁이거멀’의 장자를 따서 만장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만장굴은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일대에 위치해있다.
만장굴 내부 모습. <제공: 제주 세계자연유산관리단> |
만장굴 용암교 모습. <제공: 제주 세계자연유산관리단> |
만장굴의 총길이가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으나 현재 7416m로 잠정 정리된 상태다. 만장굴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긴 동굴로 보고되기도 했다. 1993년 당시 북제주군이 1만3268m로 측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이는 만장굴과 하류에 있는 몇 개의 동굴의 길이를 합친 것으로 보여지며, 2008년 손인석 박사 등에 의해 7416m로 조사됐다. 만장굴은 동굴 중간 부분의 천장이 함몰되면서 3개의 입구가 형성돼있다. 현재 일반인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개된 입구는 제2입구이며, 약 1㎞ 구간을 탐방할 수 있다. 만장굴은 주 통로의 폭이 18m, 높이가 23m로 세계적으로도 큰 규모의 동굴이다. 길이로는 세계 11위에 올라있다.
만장굴 내부를 탐방하고 있는 관광객들. <제공: 제주도 세계자연유산관리단>
전 세계에 많은 용암동굴이 분포해있지만 만장굴과 같이 수십만년 전에 형성된 동굴로 내부의 형태와 지형, 동굴생성물이 잘 보존된 용암동굴은 드물다. 만장굴의 학술적·보전적 가치가 무척 큰 이유다. 만장굴 내에는 용암종유, 용암석순, 용암유석, 용암유선, 용암선반, 용암표석 등의 다양한 용암동굴 생성물이 발달해 있다. 특히 개방구간 끝에서 볼 수 있는 약 7.6m 높이의 용암석주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다.
만장굴 용암종유 모습. <제공: 제주도 세계자연유산관리단>
용암의 유출방향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형성된 웅장한 규모의 단일통로는 규모가 매우 크고, 천정의 세 곳이 무너지면서 입구가 형성돼 용암동굴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뛰어난 동굴 지형과 구조들이 잘 남아있으며, 바닥 곳곳에는 홈구조와 용암 두루마리(lava roll)가 관찰된다.
만장굴 용암유선. <제공: 전용문 박사>
만장굴 내부로 들어가면 다양한 용암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동굴 벽면에 가로로 이어진 줄무늬는 동굴 안을 흐르던 용암 표면이 남긴 선구조이다. 동굴 천장에 상어 이빨처럼 늘어진 용암종유, 벽면에 선반처럼 굳어진 용암선반 등이 있다. 만장굴의 명물 중 하나인 거북바위는 천정에서 떨어진 낙반 주변으로 흐르던 용암이 달라붙어 만들어진 것으로 그 형상이 제주도를 닮아 더욱 인상적이다. 만장굴의 천정에는 낙반이 떨어졌던 흔적이 많이 발견되는데, 떨어진 낙반은 흐르던 용암에 의해 하류로 운반된 것으로 추정된다. 만장굴 비공개구간에는 천연기념물 제452호로 멸종위기 1급종인 붉은박쥐가 6년째 서식하며 둥지를 틀고 있다.
만장굴은 다층구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형성과정에 대한 몇 가지 이론이 제기되고 있다. 동굴이 하나의 층을 형성한 뒤 그 위에 다른 층이 형성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용암류가 소규모의 용암동굴을 만든 뒤 동굴 내부로 뜨거운 용암이 다시 흐르게 되면서 뜨거운 용암의 열에 의해 동굴바닥이 녹아 서로 합쳐져서 규모가 크고 복잡한 용암동굴로 변하는 ‘열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만장굴 비공개구간의 모습. <제공: 제주도 세계자연유산관리단>
만장굴 동굴입구 주변에는 동굴 내부와 외부의 온도차로 인해 독특한 식생이 분포하고 있다. 만장굴의 제1구간(비공개 구간)은 만장굴 2입구 계단에서 상층굴 입구까지다. 제1구간은 상층굴과 하층굴로 구분되며, 상층굴은 길이가 약 900m, 하층굴은 약 1500m다. 이 구간은 안전상의 이유로 현재 일반인 출입이 금지돼 있다.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천연기념물 만장굴
유네스코(UNESCO)는 2007년 국내 최초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란 이름으로 한라산을 비롯 제주도 1만8997㏊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했다. 세계자연유산은 유일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어 전 인류의 이익을 위해 보호가 필요한 유산이다. 제주도의 세계자연유산 등재사유는 탁월한 경관적 가치와 지질학적 가치다.
만장굴 낙반. <제공: 전용문 박사>
만장굴은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대표적인 동굴이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거문오름에서 출발해 북북동 방향으로 약 14㎞ 떨어진 바닷가까지 흘러가면서 만들어진 용암동굴계의 하나인 것이다. 만장굴은 2010년에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이에 앞서 1970년 김녕굴에 편입되는 형태로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98호로 지정됐다. 만장굴은 한해 70만명 이상이 찾는 유명관광지다.
김녕굴의 모습. <제공: 전용문 박사>
1702년 조선 숙종때 제주목사 이형상이 제주도내 각 고을을 살피는 장면을 기록한 화첩이 탐라순력도다. 이 책에는 이 목사가 김녕굴을 방문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동굴안으로 군졸들이 횃불을 밝히고, 목사는 작은 가마를 타고 들어가는 모습이다.
김녕굴은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위치해있으며, 동굴 길이는 800m다. 본래 만장굴과 같은 동굴계를 이루고 있었으나 천정이 붕괴되면서 만장굴과 분리됐다. 북서 방향으로 용천동굴과 연결돼있다. 만장굴과 함께 천연기념물,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돼있다. 동굴 주변에는 패사 퇴적층이 형성돼있고, 내부에는 다량의 모래가 유입돼있다. 김녕굴은 용암동굴로는 국내 최초로 1962년 천연기념물 98호로 지정됐다. 비공개 동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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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굴 용암석주. <제공: 제주도 세계자연유산관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