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평론>지 청탁 글
10여 년 탐석길에 얻은 동시조
「물총새」
조 주 환
1970년대 후반부터 10여 년 나는 돌밭을 누비며 수석 탐석(探石)에 빠져 있었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 안강고등학교에 근무하던 어느 여름날 며칠간 폭우가 쏟아져 안강 칠평천 냇물이 범람할 정도로 홍수가 났다. 홍수가 난 며칠 뒤 우연히 냇가에 나가 산책하는데 어느 노인이 냇물을 거슬러 오르며 물속에 무엇을 찾고 있었다. 그러더니 돌을 주워 물에 씻은 뒤 눈높이로 올려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가까이 가서 무심코 무얼 하시느냐고 하자 수석을 찾는다고 하며 그분은 한때 일본에서 수석을 배웠다고 했다. 안강 칠평천의 돌은 검은색이다, 그래서 오석(烏石)이라고 했다. 그리고 평평한 돌이 많았다. 그래서 평원석이라고 했다. 평평한 돌의 한끝을 눈높이에 맞추어보면 다른 한 끝에 산처럼 볼록 쏟은 돌이 있었다. 그러면서 평원석은 저 들판과 산의 축약된 형태라고 했다. 그분은 경주에 살았다. 나는 흥미를 가지고 수석에 점점 빠져들었고, 마침내 그분을 따라 주말에는 안강, 경주, 영천 등에서 경북 일대로 탐석길에 나서서 수석에 대해서 기본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은 뒤 수석회를 조직해서 주말과 방학때는 물론이고 틈만 나면 동료들과 배낭을 메고 돌을 찾아 하루 20~30km 돌밭길 여울길을 헤맸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돌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누벼도 돌 한 점을 얻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렇게 탐석길에 나서면 직장이며 일상생활에 얽매이고 쌓였던 구속과 스트레스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해방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참으로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세상이 열려왔다. 곧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큰물이 지나간 맑은 냇물의 여울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것을 잊은 무념무상의 세계에 이른 것만 같았다. 가끔씩 먼 산의 뻐꾸기 울음이 들리고 산새와 물새들의 울음소리가 깨끗한 돌들과 맑은 물 위로 떨어저 가뭇가뭇 찍히는 것과도 같았다. 비가 그치는 시내의 한끝에서는 안개 자락이 걷혀가며 새롭게 열리는 하늘빛, 새로 갓 피어난 것과 같은 파란 잎을 단 푸나무들이 눈을 뜨는 등 태고의 숲이 펼처지는 것 같았다. 그런 무아의 경지에서 때로는 문득 내가 바라던 한 점 돌을 주워 올렸을 때의 환희는 한 점 꾸밈도 없는 염화시중의 미소랄까 뭐 그런 것이었다.
하나의 수석이 형성되는 데는 수십 만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돌을 하나 얻으면 한없는 상상의 날개를 펴기도 했다. 주름진 돌을 들여다보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감감히 그리고 더욱 선연히 떠오르는 수십 만년 전의 하늘과 땅, 그 땅에서 인간들에 의해 찢기고 할퀸 상흔이며 삶의 진한 소리와 무늬도 보이는 듯하다. 그런 돌에 손때를 묻히기도 하고 두 빰에 부벼가며 감상하기도 한다. 그러면 인간 세상에서 크고 작은 역사가 무너지고 일어서면서 생긴 돌의 주름살 속에는 물소리, 바람소리도 들리고 세(世), 대(代 ), 기(紀)의 불빛들이 깜박이는 것과도 같았다. 그런 상상 속에 여울물을 거슬러 가면 태고의 적막이 고여 산개울의 계곡은 더욱 깊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그런 탐석생활 10여 년 무렵 큰물이 지나간 뒤 햇살이 짱짱한 어느 여름날 참으로 맑고 한 점 티끌도 없는 경북 영천시 임고면 수성천 개울물을 거슬러 오르며 탐석을 하는데 10~20여 미터 앞에서 투명한 물총새 울음이 모든 잡념을 다 지운 내 가슴 위로 물방울처럼 방울방울 파문을 일으키며 들려왔다. 그건 또 드맑은 시냇물 위로 떨어져 오는 것과도 같았다. 마침 그 물 위에는 소금쟁이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물결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벙글 듯 번져가는 소금쟁이의 물결은 순수한 자연 그대로였다. 물총새 울음이 조약돌 위로 떨어져 오고, 소금쟁이가 일으키는 물결의 파문을 보고 있는데 문득 아기들이 풋잠을 들어서도 가끔씩 벙글 듯 웃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래서 이런 연상작용을 연결한 것이 바로 이 동시조 「물총새」다.
쫑쫑 물 쫑쫑
조약돌에 떨군 울음이
소금쟁이 실여울에
물무늬로 가 앉다가
풋잠 든 아가의 눈에
방울방울 벙근다
「물총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