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1)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우리 안에 들어간 좋은 것들이 폭력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긍정적인 에너지로 변화되길!
강력한 한파의 후유증을 단단히 앓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보일러며 난방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번 스스로 해결해보겠다고, 몇 날 몇 일을 어두컴컴한 보일러실에 앉아 메뉴얼도 꼼꼼히 탐독하면서, 이런 시도 저런 시도, 백방으로 노력해보았지만, 별 진전이 없더군요.
할 수 없이 전문 기사님을 호출했는데,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저기 쓰-윽 한번 훑어보시더니 즉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셨습니다.
초스피드로 분해와 교체, 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울 난방이나 온수 문제로 답답해하고 있는 사람들의 구세주로 맹활약하고 계시는 전문 기사님의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전문가적 포스가 풀풀 풍기는 보일러 기사님을 바라보면서, 저희 같은 사제 수도자도 마찬가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목자가 가장 멋있어 보일 때는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제단에서, 말씀의 선포자로서의 전문가, 이웃 사랑 실천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수도자가 가장 멋있어 보일 때는 복음삼덕의 실천의 전문가, 균형 잡힌 공동생활의 전문가가 되는 순간이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가장 멋있어 보일 때는 공동선 실천의 전문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세상 안에서의 일의 전문가, 부모로서의 전문가, 교사나 기술자, 정치인과 관료로서 충만하고 기쁘게 살아갈 때가 아니겠습니까?
피정객들을 위해 한 번씩 왕창왕창 시장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인간 존재라는 것 참으로 대단합니다.
평생토록 한 사람이 먹어치우는 양이 대단할 것입니다.
주식에 간식, 후식에 특식까지. 어디 그뿐인가요?
어마어마한 양의 술이나 음료, 안주까지...평생 먹은 것을 쌓아 올리면 대형트럭 몇 대 분량이 되겠지요.
우리 뱃속으로 들어가는 음식, 절대로 상한 것이나 부실한 것이 아니겠지요.
고마운 분들의 정성과 손길, 땀과 노고가 깃든 결과물, 정말 좋은 것들, 양질의 육류와 생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우리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좋은 것들을 매일 수시로 섭취하는 우리입니다.
섭생의 결실이 좋은 결실을 맺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안에 들어간 좋은 것들이 폭력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변화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불행하게도 너무나 초라하고 부실한 것들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코 복음 7장 20~23절)
좋은 것을 섭취한 우리에게서 보다 아름답고 고결한 것들,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들이 나와
동료 인간과 세상,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면 좋겠습니다.
좋은 생각,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태도, 순결, 자선, 생명 보호, 나눔, 호의, 정숙, 친교, 일치, 겸손, 지혜로움...
2)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4년 나해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마음의 작동원리를 알면 무슨 죄에서든 벗어날 수 있다>
복음: 마르코 7,14-23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들만 우리를 더럽힐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오염의 원천이 내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오산성당에 있을 때 성수가 계속 더러워지는 일이 있었는데 그 원인을 밖에서 찾았습니다.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수가 항아리에서 줄어들자 그 안에 박으로 만든 바가지가 엎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바가지에서 옻칠이 벗겨지며 성수를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나를 더럽히는 것은 내 마음에서 나오는 것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사람에게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십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서 욕망이 시작됩니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는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악의도 그렇고 불륜을 저지르거나 남의 것을 탐내고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도 그렇습니다. 위 여러 우리를 더럽히는 죄들은 ‘내가 ~을 하고 싶다’에 다 들어갑니다. 그러니 나의 마음에서 모든 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단순해집니다. 모든 죄의 원인인 마음만 바꾸면 됩니다. 마음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요? 마음의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살’ 45화에 최면으로 금연을 하게 된 사례가 나옵니다. 이남현 씨는 담배를 17년 정도 피웠습니다. 지금은 도저히 담배를 끊을 수 없었는데 최면으로 금연 성공 5년 차가 됩니다. 편안히 눈을 감고 왼쪽 손에 공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 담배 피울 때의 장소, 느낌, 상황들을 다 담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에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들을 담습니다. 싫어하는 사람, 무서운 것, 혐오스러운 것들을 담습니다. 하나, 둘, 셋 하면 오른손에 있는 이미지를 왼손에 있는 이미지에 마구 섞어 비벼줍니다. 내가 싫어하는 이미지가 담배 속으로 다 스며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이 부정적인 이미지와 섞인 담배의 이미지를 가슴속으로 깊게 밀어 넣어줍니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효과가 더욱 좋다고 합니다. 이남현 씨는 마음의 작동 원리를 이용하여 금연을 한 사례입니다.
마음은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그동안 마음이 담배가 행복한 것이라 믿고 바라고 사랑해왔습니다. 머리는 그저 마음을 따를 뿐입니다. 머리로 아무리 담배에서 벗어나려 해도 안 됩니다. 그렇다면 마음만 바꾸면 됩니다. 바로 마음이 담배가 행복이라 믿지 못하게 만들어 바라지도 사랑하지도 않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남현 씨는 최면으로 그렇게 담배에 안 좋은 이미지를 가미함으로써 담배가 행복이 아니라 고통이라고 마음이 믿게 하였습니다. 그것을 계속 가슴에 밀어 넣은 것입니다. 그러니 담배를 만났을 때 이전보다 덜 사랑하게 되고 그러면 끊기가 쉬워집니다. 마음의 작동 원리만 알면 못 할 게 없는 것입니다. 최면이어도 담배를 끊으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앤서니 라빈스의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에서 이런 사례가 나옵니다. 앨라배마에서 자란 한 젊은이의 이야기입니다. 약 15년 전, 학교의 7학년(한국의 중학교 1학년) 불량배가 싸움을 걸어오더니 주먹으로 때려 그를 기절 시켰습니다. 이 소년은 정신을 차린 뒤, 그 불량배를 죽이겠다며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그는 집으로 가서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22구경 권총을 집어 들고 그 불량배를 찾아 나섰습니다. 마침내 그 불량배가 사정권에 들어왔고, 소년이 권총을 쏘기만 하면 그 불량배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내가 지금 방아쇠를 당기면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까?’ 그러고는 마음속에 한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자기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의 운명이 판가름 날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이 감옥에 가는 모습이 소름 끼치도록 뚜렷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감옥에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고통은 복수를 하겠다는 기대감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결국 그는 목표물을 바꿔 나무에 총을 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훗날 미식축구와 야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보 잭슨(Bo Jackson)입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 장면을 묘사하면서,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감옥을 연상함으로써 받는 고통이 복수한다는 명분으로 다른 소년을 죽이는 만족감보다 의심의 여지 없이 훨씬 더 강력했다고 토로했습니다. 마음의 초점을 바꾸고 고통과 기쁨 중에서 하나를 결정함으로써 이 소년은 미래가 없을 뻔했던 삶 대신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하고 성공적인 운동선수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국 마음은 내가 행복이라고 믿는 것을 희망하게 되고 그것을 사랑하여 그렇게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을 바꾸려면 행복의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행복의 기준은 정체성에서 옵니다. 개는 네 발로 걷는 게 행복이라고 여기고 사람은 두 발로 걷는 게 행복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두 발로 걷는 개도 있고 네 발로 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욕망은 자신이 누구냐고 믿는 정체성에서 그 정체성에 있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바라는 마음입니다. 욕망으로 사람이 타락하기도 하고 거룩해지기도 합니다.
피조물은 좋은 것을 욕망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창조자와 하나가 되었다고 믿을 때 죄가 아닌 사랑이 행복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마치 아이였다가 갑자기 부모가 된 사람처럼. 보 잭슨은 감옥에 있는 것보다 밖에 있는 것이 더 행복이라고 여겼기에 사람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하느님의 자녀이고 하늘 나라에 사는 존재라고 믿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3)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마르 7,14-23: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예수님은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15절) 하시며 금기 식품은 없다고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시면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배 속으로 들어가서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라고 하셨다(마태 15,11.17 참조). 주님께서는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19절) 밝히셨다. 그런데 레위 11장에 보면 부정한 음식물의 종류가 나오고 있다. 그것은 유다인들의 전통에서 신앙처럼 지켜오는 먹지 말아야 할 음식 중에 대표적인 것이 돼지고기가 있다. 2마카 6장에서는 안티오쿠스 에페파네스는 유대교를 근절시키려고 유다인들로 하여금 돼지고기를 먹게 하였고, 그것을 안 먹는 유다인들은 왕명을 거스른 죄로 수백 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역사적인 사건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런 유다인들에게 그 말씀은 그들에게는 깜짝 놀랄 말이었다. 즉 그들은 부정한 음식을 먹음으로써 사람이 부정하게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내왔고 죽어가면서도 지켜온 그들의 율법을 무시하는 듯한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을 당황하게 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본뜻은 무엇인가? 물건, 음식이란 그 어떤 것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측면에서 볼 때 부정한 것이다, 깨끗한 것이다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데 믿음의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이라는 창고 안에 무엇을 쌓아 놓고 있으며, 그 안에서 무엇을 내어놓으며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악한 생각들이란 마귀가 나에게 불어넣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마귀는 우리의 나쁜 생각에 힘을 보태고 부추길 수는 있지만 그러한 생각들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것은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며 이러한 생각이 일어날 때, 마귀가 그것을 정당화시키고 그렇게 행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느냐에 믿음의 근본 의미가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물건이나 음식이 아니라 사람 자신에서 나오는 생각과 행위이다. 바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이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과 이웃을 향하여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4)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 20)
사람을 살리는 것
사람 마음을 깨끗이
하는 시작은
기도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으로부터
참으로 멀리
떨어져있습니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언제나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보다
더 위험한 존재또한
없을 것입니다.
절망과 부패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의 마음이 다시
예수님을 통해
정화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더럽고
나쁜 생각과
마음때문에
울부짖는 이웃들이
생겨납니다.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가장 영악하고
끔찍한 것들이 아닌
선한 마음이길
기도드립니다.
선한 마음은
하느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더러움의 근원은
무절제한 욕심이고
정화의 근원은
더러운 우리
마음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입니다.
제 마음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5)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이탈리아 국영 텔레비전에서의 흥미로운 조사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자동차가 신호에 걸릴 때, 외국인 노동자가 서 있는 차의 앞 유리를 재빨리 닦습니다. 그때 운전자는 그들에게 동전 몇 닢을 건네곤 합니다. 그렇다면 동전이 가장 많이 걷히는 도시는 잘 사는 도시 밀라노인지 아니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나폴리인가라는 비교 실험을 한 것입니다. 어디일까요? 당연히 부유한 도시인 밀라노 사람들이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나폴리였다고 합니다.
새 성전을 지은 신부님께서는 본당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많은 봉헌을 해서 성전을 지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실제로 봉헌금을 살펴보니 돈 많은 사람의 봉헌이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의 봉헌들이 모여서 이 아름다운 성전을 지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해서, 또 여유가 없어서 봉헌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였습니다. 예전에 만났던 한 자매님도 기억납니다. 성소국장으로 있을 때였는데 어떤 자매님께서 저를 찾아와서 신학생을 위해 써달라면서 후원금을 주셨습니다. 알고 보니 이분은 생활 보호 대상자였습니다. 신학생들을 후원하고 싶다는 마음은 가득했지만, 여유가 없어서 기도로만 대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하신 것입니다. 꽤 많이 받은 합의금으로 살림에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주님께서 원하실 것이 무엇인지를 기도한 뒤에 성소자를 위해 써달라며 모두 가지고 와서 봉헌하셨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멋진 모습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유가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느냐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깨끗한 마음으로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데, 우리는 자기 마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만을 신경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그 마음의 상태에 따라 사람을 깨끗하게도 하고 더럽게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의 준수만을 생각합니다. 율법을 잘 지킴으로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고, 그래야만 자기들이 하느님께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그들의 생각이 맞았을까요? 그들의 생각에 예수님께서는 “이 위선자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의 마음은 전혀 보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올바르게 보이려고만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죄로 가득한 마음 역시 받아주십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위선의 마음은 절대로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오늘의 명언: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잠언).
6)이병우 루카 신부님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마르7,15)
'영원한 생명!'
오늘 복음(마르7,14-23)은 어제 복음에 이어지는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입니다.
예수님의 초점은 언제나 보여지는 것 그 너머에 있는 본질에 있었고, 이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이들은 보여지는 것에 머물러 있고, 본질이 아닌 것에 너무 많은 힘을 쏟기도 합니다.
몸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우리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는 것, 곧 사람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7,20-23)
몸 안에 있는 것은 감추어져 있어서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몸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러한 것들이 세상 밖으로 드러날 수 있을까?
그 '촉매제'는 바로 '고통'입니다. 고통 앞에서 감추어져 있는 것이 드러납니다. 곧 인간의 민낯, 마음속 깊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렇게 보니 고통은 우리에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박해시대 때 많은 이들이 고통과 칼이라는 죽음 앞에서 신앙을 배교했습니다. 이 배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많은 이들은 박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간직했고, 그래서 그들도 살았습니다.
배교자들은 눈에 보이는 생명을 선택했고,
순교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선택했습니다.
날마다 성령의 힘으로 내 안에 있는 더러운 영들을 몰아냅시다! 우리도 순교자들처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선택합시다!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마르 7, 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