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5일 ·
박흥주 대령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20세에 육군사관학교 18기로 입학해서 동기생 가운데 진급이 가장 빨랐으며, 청렴하고 강인한 성품의 인재로, "미래의 육군참모총장감"이라 기대를 모았었다고 한다.그가 중위 였을때, 당시 6관구사령관 이었던 김재규 장군의 부관을 지내면서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김재규 장군이 정보부장으로 임명되면서, 정보부장 수행비서관이었던 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권력의 핵심 한 가운데에 있었지만, 권세를 누리지 않았다. 권력형 비리가 난무하던 유신독재시절이었지만, 그의 가족이 사는 집은 차가 올라가지도 못하는 행당동 산동네의 12평 주택이었다고 한다. 그의 가족은 부인과 초등학생 두 딸, 생후 8개월의 아들이었다. 청빈하고 청렴했던 그의 본모습은 그가 재판을 받게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재판정에서 판사가 물었다. "다시 같은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똑 같이 김재규장군의 명령을 따를 것입니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고 한다. 박흥주는 10.26사태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를 저격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심복이었다. 자신의 사형이 집행되고 나면 박흥주의 곁에 묻어달라고 한 것을 보면, 김재규와 박흥주의 서로에 대한 믿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던 두 사람의 믿음과 의리는 참으로 존경할 만한 것이었다. 다음은 그의 아내가 죽음을 앞둔 그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법정에서 의연한 모습을 떠올리면 울 수가 없어요. 명예롭게 떠나는 당신의 아내가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 될 법한 소리인가요. 여보, 그렇지 않은가요. 울지 않겠어요. 아이들과 저는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슬픔이 아닌 자랑스러움으로 당신을 기억하겠어요. 세상은 당신을 잊지 않을 거예요. 먼훗날 역사는 당신의 그 자랑스러운 행동을 후손에게 알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보, 당신을 만나 지금껏 살아온 것이 자랑스럽고 행복해요. 여보, 이제는 서로 웃으며 헤어질 때가 온것 같아요. 당신이 나를 믿고 떠날 수 있듯이 저도 당신을 믿고 살아갈 수 있답니다. 당신의 향기를 영원히 간직한 채 살고 싶어요. 우리의 헤어짐이 헤어짐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이 더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어디가서든 저를 잊지 말고 아내로 맞아주세요. 당신의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을 거예요. 끝으로 보고 싶은 당신에게 제 아낌없는 사랑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당신. 어색하기는 하지만 당신의 이름 흥주 씨를 부르며 펜을 놓을까 합니다. 흥주씨!" -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는 아내가.박흥주 대령의 아내는 편지에서 알 수 있듯이 강인한 여자였다. 분식점을 운영하며 어렵게 살아가던 그녀는 박흥주의 인품과 충성심을 높이 평가하고 있던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으나 도움을 거절하였다. 그 대신 그녀가 권력자이던 전두환에게 요구한 것은 죽은 남편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요구를 받아들여 전두환이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도록 지시하였으나, 내란죄에 연루된 박흥주를 복권시킬 수는 없었다. 남편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 했던 그녀의 마음가짐은 참으로 강직하고 세인들의 마음을 숙연케 하는 것이었다.다음은 박흥주 대령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그의 가족에게 쓴 편지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에게.이제 이 한 장의 편지로 그동안의 내 삶을 마감할까 하오. 비록 죽음을 맞이하지만 결코 두렵거나 아쉬움은 없소. 내 부탁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이 이 아빠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전해 주시오. 앞으로 꿋꿋이 살아갈 식구를 위해 할 말을 다 하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고 있소. 우리 사회가 죽지 않았다면 우리 가정을 그대로 내버려두지는 않을 게요.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도와 줄 것이라고 생각하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의연하게 떳떳하게 살아가면 되지 않겠소.사랑하는 나의 두 딸들아. 아빠가 없더라도 예전처럼 모든일에 떳떳하게 나서거라. 아빠는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다. 부끄러운 사람이었다면 너희에게 이런 글을 남기지도 못할 것이다. ...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자기 판단에 의한 선택이면 그 선택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므로 후회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슬기로운 선택, 여기에 세상의 성공과 실패가 좌우 된단다.사랑하는 내 딸들아! 이 아빠가 어디에 있든, 언제나 네 엄마의 말을 믿고 따라야 한다. 네 엄마를 잘 돌보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다. 부디 건강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어린 아들에게도 같은 마음을 전하며...박흥주대령은 국립묘지에 묻히기를 원했지만, 그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신 그는 포천의 작은 교회 공원묘지에 묻혀있다. 그가 사형집행 직전에 남긴 마지막 말은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육군 만세!' 였다고 한다. 그가 최후까지 보여주었던 의리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신념은 혼탁한 유신독재 시절에 보석처럼 빛나는 것이었다. 우리는 누리고 있는 세상이 박흥주대령 같은 분들의 숭고한 희생위에 이루어진 것임을 한시도 잊지말고 그 정신을 넓히고 이어 나아가야 하겠다. 그의 한마디가 오래도록 남아 귓전을 울린다. "우리 사회가 죽지 않았다면, 우리 가정을 그대로 내버려두지는 않을 게요.
▶︎ 김재규 장군 최후진술 : https://goo.gl/Wu4C6L▶︎
10.26 궁정동 사람들 : https://goo.gl/DcBhBS▶︎
바람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http://omn.kr/6doj▶︎
노무현 - 선봉에 서서 : https://goo.gl/aGtxDQ▶︎
노회찬 - 소연가 : https://goo.gl/Et2Lko▶︎
한국인이면서 모르면 부끄러운 이야기 : https://goo.gl/mSXm6H▶︎
회고 - '군인의 길' 걸었던 朴대령 : http://bit.ly/348O97Q
2.2천회원님, 박우림, 이광호, 외 2.2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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