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3, 4, 12 ~ 13, 수 ~ 목요일, 맑음 ~ 흐림,
돈의문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송월동에 있는 "월암동" 각자를 찾아갑니다 ~
기상대를 지나.. 우측은 인왕산으로 가는 성곽길이고.. 직진을 하면 ~
서울시 문화재 자료 60 호인 "월암동"<月巖洞>이란 암각이 바위에 새겨져 있읍니다 ~
이곳 바위산을 "월암봉"<月巖峰>이라 했는데 "월암동" 각자가 새겨져 있어 주변 마을의 지명으로도 사용됐구요 ~
누가 쓴 글씨인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고고한 선비의 품격이 드러난 글씨로 붉은 주사<朱査>를 채워넣은 흔적이 남아었으며 ~
"월암봉" 은 주변보다 지대가 높은데다 둥그렇게 생긴 바위모습이 마치 달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
이곳 "송월동" 은 일제강점기 송정동과 월암동이 합쳐져 만들어 졌으며.. 송정동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네요 ~
도심에서 보기드문 "모과나무" 가 꽃망울을 터트렸지 뭡니까..?
"단군성전" 입니다 ~
"단군"<壇君>은 "단군왕검"<王儉> "단웅천왕"<壇雄天王>이라고도 하며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손자이고 "환웅"<桓雄>의 아들로 ~
서기전 2333 년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 을 개국했는데 "삼국유사" 에는 나오나 정사인 "삼국사기" 에는 기록되지 않았답니다 ~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널리 사람을 이롭게한다" 는 뜻이라 하구요 ~
"등과정"<登科亭>은 조선시대 무사<武士>들의 궁술 연습장으로 유명한 활터에 세운 정자 즉 "사정"<射亭>으로 ~
"등과정" 은 서울 서쪽 지역의 다섯군데 이름난 "사정" 가운데 하나였는데 "갑오개혁" 이래 궁술이 폐지되면서 헐렸답니다 ~
어제 수요일 "용암동" 암각과 "청와동" 각자를 찾다 "못찾겠다 꾀꼬리" 하고 퇴각을 했거든요..?
오늘도 방향을 잘못잡아 부부산신령을 본후 산을 헤메다..?
다시 수성동계곡 쪽으로 내려와 뱀인지 도마뱀인지 바위 감상도 함시롱..?
이곳 "감투바위" 는 무인당 택견인들이 국력이 기운.. 조선의 심장 서울 장안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던 장소랍니다 ~
어제 아지트 삼아 이 일대를 샅샅이 뒤지느라 눈에익은 누상공원 정자거든요..?
거기서 우측 위쪽을 바라보니 배드민턴장이 나오고.. 여기서 계단길이 아닌 오른쪽으로 ~고~
하수관로 옆 왼쪽으로 오르면 ~
비스듬한 바위에 "청와동"<靑瓦洞> 암각이 세로로 새겨져 있읍니다 ~
수성동계곡은 옛 한양도읍의 "동천"<洞天>이었음인지 ~
수려한 계곡미와 그시대의 선비가 남긴 "청와동" 각자가 있는데 짧은 식견이라 잘모르겠지만 "행서체" 인듯 하구요 ~
이번엔 정자에서 반대방향 배화여고 쪽 담장이 보이는곳에 "일세암"<一洗巖> 암각이 새겨져 있읍니다 ~
뜻은 모르겠지만 하나 "일" 에 씻을 "세" 바위 "암" 그러면 마음을 씻는다는 건지..?
둘도 아니고 어찌하여 하나만 씻느냐 고 ~ 요..?
"배화여고 교정 뒤에 터잡고 계신 "필운대" <弼雲臺>암각입니다 ~
"필운대" 의 "필운" 은 선조때 임진왜란을 수습하는데 공이 큰 좌의정 "이항복"<李恒福>선생의 "호" 고 "대" 는 누각 또는 집을 일컬으며 ~
그 옆에 "백사" 의 후손으로 고종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 이 쓴 각자로 "백사선생 필운대"<白沙先生弼雲臺>로 맺음을 했읍니다 /
첫댓글 청와동 각자를 찾기 위해 세 번 갔는데 모두 실패했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