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수사국(FBI)이 인터넷에 극비 문서들을 처음 유출한 주 방위군 소속 용의자를 체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미 유출된 기밀 문건들을 찾아 검증한 뒤 이를 기사회하는 미 유력 언론들의 취재 보도는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워싱턴 포스트는 13일 유출 문건 분석을 통해 러-우크라 어느 쪽도 전장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지 못하고, 협상 의지도 없기 때문에 평화회담은 올해에도 기대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또 지루한 교착상태에 빠진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정치 혹은 군사 지도부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WP가 미 국가정보국 문건들을 바탕으로 보도한 우크라이나 전쟁 전망은 이렇다.
유출 문건을 보면, 러-우크라 평화협상은 올해엔 예상되지 않는다/WP 웹페이지 캡처
1) 러-우크라 어느 쪽도 협상에 나서거나 결정적인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은 해를 넘긴다. 믿지는 않지만, 설사 우크라이나가 반격 작전을 통해 상당한 영토를 탈환하고, 러시아가 큰 손실을 입는다고 하더라도 평화 협상은 없을 것이다. 2023년 말까지 양측은 소규모의 땅만 서로 주고받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게 가장 현실적인 전망이다. 양국 모두 가용 병력과 군사 장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느 쪽도 결정적인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교착 상태가 올해 말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게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2) 끝없는 소모전 양상은 우크라이나의 정정(政情)을 뒤흔들고, 정치 혹은 군사 지도부의 교체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정보국 문서는 "현재의 소모전이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에 대한 환멸과 대응 방식의 비판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젤렌스키 대통령 혹은 잘루즈니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의 교체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군사작전을 둘러싼 젤렌스키 대통령과 잘루즈니 총참모장 간의 의견 충돌은 이미 언론에서 여러차례 소문이 돈 바 있다. 우크라이나 일각에서는 잘루즈니 총참모장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정치적 위협이 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스트라나.ua는 이 대목에서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유고를 상정한 대응 방안도 유출 문건속에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3) 전선의 교착상태는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건강한 남성들을 모두 동원하도록 만들 것이다.
진창으로 변한 우크라이나군의 바흐무트 방어진지/영상 캡처
4) 미 국가정보국은 가능성이 낮지만, 러-우크라 중 어느 한 쪽이 결정적인 승기를 잡을 경우를 가정한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권력 교체에, 우크라이나가 더욱 위험한 공격 작전(크림반도 탈환)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는 비전통적인 무력 사용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이에(우크라이나군의 공세에) 맞설 것이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다. 크렘린은 새로운 대규모 동원령을 발령할 수도 있다.
5) 양측은 날씨가 따뜻해지고 진창길이 사라지면서 적대 행위를 강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에게 제공될 무기및 탄약의 하역 모습/우크라군 합참 페북
우크라이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 것은 미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다. NYT는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시작되기 전에 서방의 탄약 제공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지난 3월 20일과 4월 4일 발표한 군사 지원 패키지가 '마지막 노력'"이라고 전했다. 또 우크라이나 동맹국들에게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충족시킬 만큼 탄약이 충분하지 않으며, 자체 재고가 매우 적다고 했다.
이에 따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조만간 독일 람슈타인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을 위한 소통그룹' 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스트라나.ua는 전망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고갈된 방공 미사일과 포병용 포탄, 기타 군수품들의 추가 공급 여부가 주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기밀 문건 유출을 계기로 쏟아지는 우크라이나의 반격 작전에 대한 미국 주요 언론들의 비관적인 보도를 우크라이나에서는 어떻게 볼까? 한마디로 우크라이나를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미국 주요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에 "키예프(키이우)는 크게 짜증을 내고 있으며, 고위 인사들이 패배주의의 정서 확산에 불만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한 고위 인사는 "키예프가 전쟁 초기 사흘 안에 함락될 것이라고 말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이제는 자유 세계에 유해하고 우스꽝스러운 정보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우크라이나 내각 회의/사진출처: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젤렌스키 대통령도 13일 국민들을 향해 특별한 영상 메시지를 내보냈다. 군사 내각(아직 전시 내각이 아니었나?)의 구성과 강력한 우크라이나군의 추가 조치에 대한 약속이다. 알렉세이 아레스토비치 전 대통령실 고문도 "반격 준비는 이미 90% 끝났으며 유일하게 남은 문제는 날씨(도로의 라스푸티카·진창길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스트라나.ua는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군의 공격) 전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며 "미국은 러시아의 공격을 거듭 경고했지만, 우크라이나는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2월과 지금 사이에는 두 가지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고도 했다.
우선, 우크라이나군이 큰 승리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은 언론에서만 나온다는 것. 서방 측은 우크라이나의 결정적인 반격에 대한 전망을 바꾸지도 않았고, 공식적으로 지원 프로그램을 줄이지도 않았다.
또 러시아군의 공격이 시작되면 단시일내에 우크라이나가 붕괴될 것으로 서방측은 예측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서방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공격(시점)은 정확히 예측했으나, 전쟁 진행 과정및 결과에 대한 전망은 빗나갔다. 물론, 여기에는 서방의 적극적인 군사 지원이 가장 컸다.
지난해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 개시 초기, 우크라이나 영토 깊숙이 진격해오는 러시아 기갑부대/사진출처:러시아 SNS
스트라나.ua는 "미국 언론들의 비관적인 전망에는 러시아를 겨냥한 '역정보 흘리기'라는 분석도 있다"면서 "'사흘 안에 붕괴될 것'이라는 전쟁 초기의 전망은 러시아 군부를 안이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이미 학습효과를 얻은 터라 또다시 당하기 보다는 역이용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러시아 정보당국이 유출된 기밀 문서를 다각도로 분석한 뒤 향후 군사작전에 반영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크라이나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언론 보도에 대한 또다른 설명은, 전쟁 중단을 위한 국제적 여론 조성과 맞닿아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이 해석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군사 지원이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판단을 근거로 한다. 더 이상의 지원 확대는 나토와 러시아의 직접 충돌, 혹은 제 3차 세계대전(핵무기 사용) 유발, 중국의 러시아 군사 지원 등 상상하기도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오늘(13일)의 주요 뉴스 요약
- 미 연방수사국(FBI)는 극비 문서들과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도청 내용이 처음 유출된 온라인 게임 채팅방을 운영한 미 메사추세츠주(州) 방위군 소속 군인을 조사한 뒤, 그를 체포했다고 NYT가 13일 보도했다. 기밀 유출 용의자로 체포된 잭 테세이라(21)는 매사추세츠주 주방위군 소속 공군 정보부에서 근무해왔다. 그는 게이머들이 즐겨 찾는 소셜플랫폼 디스코드(Discord)에서 전술 비디오 게임 관련 채팅방 ‘써그 쉐이커 센트럴(Thug Shaker Central)’의 리더(닉 네임 OG)로 활동했다.
WP는 그가 지난해부터 게임방에 최소 300장에 달하는 기밀 문서를 올렸다고 전했다. WP는 해당 채팅방 회원 중 청소년 2명의 인터뷰를 통해 OG가 지난해부터 전문 군사 용어 등이 포함된 텍스트를 업로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청소년들은 "OG는 자신이 미국의 극비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자료들을 집으로 가져왔다며 과시했다"고 전했다.
- 러시아 군부는 데우크라이나 특수 군사작전이 당초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서 내부 대립 상태에 빠져 있다고 NYT가 유출 문건을 인용, 보도했다. 2월 28일자 보고 문서를 보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러시아군 사상자 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국방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 또 NYT가 확보한 기밀 문건 중에는 2월 21일 민간 용병 업체 '와그너 그룹' 수장 프리고진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향해 "용병들을 착취하고 와그너 그룹을 와해하려고 한다"고 공개 비난했으며, 이에 푸틴 대통령이 이튿날 두 사람을 불러 화해시키려고 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사실, 이같은 내용들은 친 크렘린 텔레그램 채널이 소식통을 인용해 이미 보도한 내용들이기도 하다.
특히 러시아군 사상자 파악에는 FSB가 대통령 직속 국가근위대(내무군)와 '와그너 그룹', 체첸 수장 람잔 카디로프가 이끄는 체첸 전사들도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러시아 군부는 '상부에 나쁜 소식(많은 사상자)을 전하기를 계속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정보 문건은 평가했다. 그러면서 "실제 전장에서 부상하거나 전사한 러시아인들의 숫자는 11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예측했다. 미국은 그동안 러시아군 사상자 수를 약 20만명으로 추정해 왔다.
- 러시아 검찰이 우크라이나군 포로를 참수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과 관련해 자국군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러시아 검찰은 13일 성명을 통해 참수 영상의 사실 여부를 평가하고 적절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수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온라인에서 유포된 영상에는 위장복 차림에 마스크를 쓴 남성(러시아군?)이 군복 차림의 남성(우크라이나군)의 목을 베는 장면이 담겼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와그너 그룹' 전사들이 전쟁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 러시아 전투기가 바렌트해 상공에서 노르웨이 정찰기를 요격했다고 러시아 국방부가 13일 밝혔다. 국방부는 이날 성명에서 "러시아 항공 통제실이 바렌트해 상공에서 러시아 영공에 접근하는 공중 목표물을 포착했고, 미그(MiG)-31 전투기가 즉각 이륙해 공중 목표물이 노르웨이 공군 소속 P-8A 포세이돈 정찰기임을 확인했다"며 "우리 전투기들은 해당 정찰기를 영공을 침범하지 않도록 인도한 뒤 기지로 귀환했다"고 설명했다.
- 러시아는 자국 농업 부문에 대한 5대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다음달 18일 이후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협정 연장 논의는 없을 것이라고 13일 밝혔다. 러시아 외교부는 이날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흑해 곡물 협정과 함께 자국이 유엔과 합의한 러시아 농업·비료 수출 관련 각서가 여전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주장하는 5대 구조적 문제는 △러시아농업은행의 국제 은행 결제망 재연결 △농업 기계과 부품 공급 재개 △보험 및 재보험 관련 제재 해제 △자국산 비료 수출을 위한 암모니아 수송관의 우크라이나 구간 재개통 △러시아 농업·비료 관련 기업들의 해외 자산 동결 해제 등이다.
앞서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 설치된 러-우크라-터키-유엔 4자 ‘공동조정센터’의 곡물 수송선 검사 업무가 지난 11일 중단됐다. 유엔측은 관련 당사국들이 작업 우선 순위에 대해 이견을 보이면서 이날 흑해 통과 곡물 수송선 검사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흑해의 관문인 보스포루스 해협 등을 거쳐 우크라이나 항구로 들어가려던 선박 50척의 발이 묶였다고 한다.
- 헝가리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국제금융기구 '국제투자은행(IIB)'에서 탈퇴하겠다고 13일 발표했다. IIB는 구소련 시절 소련과 동구권 국가 중심으로 중·장기 신용 제공을 위해 설립된 국제금융기구로, 2019년 모스크바에서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로 본부를 이전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폴란드와 체코,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발해 IIB 탈퇴를 선언했다. 이날 헝가리의 결정은 전날 미국이 러시아인 2명, 헝가리인 1명 등 IIB 고위층 3명에 대해 제재를 가한 데 이은 것이다.
데이비드 프레스맨 헝가리 주재 미국 대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계속되는 잔인한 침략과 대서양 안보에 대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확장하고 심화하려는 헝가리 지도자들의 지속적인 열망에 대해 (미국은) 우려하고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