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부터는 비가 예보되어있었기에,
오늘 걷기는 짧은 거리를 걸으리라 계획하고 길을 시작했다. 오전 9시 30분.
해가 너무 쨍쨍해, 대체 먹구름은 어디서 몰려올까, 농담까지 했다.
출발부터 땀이 흐리기 시작했다. 손수건도, 물도, 우산도 없이 걷는 길인데.
이성산성을 둘러보고 금암산 쪽으로 걸었다.
하늘이 차츰 흐려지고, 금암산 오르막 길을 걷는데, 방울방울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둘러야겠네, 우산도 없는데. 빗줄기 굵어지면 안되는데...' 그 생각에
성큼성큼 걸었다. 그러다 벤치가 나와 잠시 멈췄다. 뒤에 오던 동행이 벤치에 앉더니
한참을 힘들어한다.
'아 어지럼증을 느끼는 구나,' 생각해, ''어지러우세요?' 했더니, 그렇단다. 비가 방울방울 내리는 산 길에서
동행의 어지러움이 진정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덜미재에서 동사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동사에서 덜미재 가는 길은 아주 아름다운 오솔길인데. 누군가 수목장을 만들더니 다 망가뜨렸다. 그 아름다운 길을. 한탄하며 동사로 들어가는데, 빈 마당에 가득한 개망초, 4월에 꽃을 보지 못해 아쉬웠던 배나무가
아름답게 있다. 갈증이 너무 나, 새로 생긴 구조물-카페가 생겼네, 생각하며- 안으로 쑥 들어가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마셨다.
투명한 유리 창 너머 종무소에 있던 담당자가 와 주문을 받으려한다. 요즘 커피가 버거워 주스를 청했다.
종무소 직원은 종달새 처럼 재잘거린다.
- 이건 주지스님이 만드신 거에요. 이 음료도 주지스님이 정하신 거예요. 주지스님은 이것저것 관심이 많으세요. 일도 잘 하세요.
역사 발굴 때문에 우린 여기서 아무 것도 못해요.
- 이 절은 역사가 너무 중요해요. 그걸 지키는 게 더 중요해요. 이게 우리 나라에서 제일 처음 지어진 사찰일 가능성이 있거든요.
나는 말했다.
주스를 마시고 나오려는데 마침 점심시간인지, 사람들이 한 곳으로 가고, 재재거리던 여자가 식사를 하고 가란다.
동행은 마땅치 않아했는데, 나는 식사를하고 가겠다고 말했고, 결국 둘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소박하고 정갈한 채식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려는데, 후식인듯, 떡을 한접시씩 돌린다. 그 접시가 식탁에 내려오기 전에 거절했어야했는데... 결국 식사보다 더 많은 양의 후식을 먹고, 나는 집으로 걸어왔다. 마지막 걷는 길이 너무 덥고 힘들어, 온 몸이 땀에 젖고, 돌아와 씻은 후, 잠시 잠에 들었다. 요란한 소나기 소리에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