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참된 성도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의 특징은 무엇을까요?
가슴이 막 뜨거워지는 체험일까요?
혀꼬부라지는 소리를 막 쏟아내는 방언의 체험일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4-15)
교회를 오래다니면 남을 판단하는 판단력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의 성품을 닮아 인내하여 온유하며 모두를 관용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을 열심이 연구하면 많은 성경지식으로 남을 무시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가르켜주는 모든 방향은 자아를 부인하는 것이고, 주님을 모인으로 모시며 사는 것입니다.
전도를 잘하며 많은 사람들을 인도한다면 자신의 신앙은 잘나고 남의 신앙은 부족하다고 깔보는 마음으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을 주님의 사랑으로 대하며, 주님처럼 대하는 사람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3-24)
나쁜 사람은
나 뿐인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은
조화로운 사람입니다.
예쁜 사람은
그 마음과 생각과 대화에 예수님 뿐인 사람입니다.
모두가 다 나와 같지 않습니다.
나와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안에서 한 지체들입니다.
눈과 손, 다리 모두가 연합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5-27)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4-18)
흔들림은 꼭 교리 때문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는 마지막 시대 교회를 흔들기 위해서 분열, 분쟁, 시기와 다툼을 사용할 것입니다.
“사탄은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쓰라림과 불화를 일으켜 하나님의 진리를 무효화시키려고 결심하고 있다.”
— Testimonies for the Church, vol. 5, p. 236
“지금도 대원수 마귀는 얼마나 자주 동일한 정책을 쓰고 있는가! 그는 어떤 성화되지 않은 자의 마음을 움직여 교회 중에 시기와 다툼의 불을 붙여 놓은 후에 하나님의 백성의 분열된 상태를 이용하여 그의 대리자들로 하여금 그들을 멸망시키게 한다. ”(부조, 675)
형제의 부족함이 보이면, 지적하고 고치려하기보다 그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며 용기와 힘을 주며 말씀과 지혜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고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진정한 변화는 오직 성령께서 해 주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7-8)
연합은 힘이요 분열을 슬픔입니다.
더 크고 놀라운 일을 위하여 우리는 다 자아를 죽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으로 모여야 합니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
🍀어느 날, 목공소의 연장들이 회의를 열었습니다.
회의 진행은 평소와 같이 망치가 맡았습니다. 그런데 회의 도중 회원 몇몇이 반기를 들고 망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였습니다.
"망치는 항상 깨고 부수는 자입니다. 늘 소란을 피우는 자니 사회자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여기서 떠나야 합니다."
그러자 망치가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나 스스로도 나의 결점을 인정하므로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하지만 나와 함께 떠나야 할 자가 있으니 바로 대패입니다. 왜냐하면 대패가 하는 일에는 전혀 깊이가 없고 늘 남의 껍질만 벗기기 때문입니다."
이에 화가 난 대패가 말했습니다.
"나 뿐 만 아니라 자도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는 자기만 옳은 듯이 항상 눈금을 매기고 측정하여 모두에게 덕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조용히 듣고 있던 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톱을 지적하면서, "톱은 연합하기보다는 분리시키니 여기에서 가장 불필요한 자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한창 다투고 있을 때 목수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목수는 이 모든 연장들을 총동원하여 순식간에 아름다운 설교단상을 만들었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약점을 들추며 다투던 그들은 결점 많은 자신들을 이용하여 이처럼 아름다운 설교단상을 만드는데 쓰임 받은 사실에 감탄하면서 "우리 모두가 나사렛 목수의 동역자들이구나!"하며 좋아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각자 흠도 많고 약점과 결점이 많은 연약한 지체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들을 일꾼으로 사용하셔서 함께 동역하시기에 우리는 믿음안에서 하나요 영적 동지입니다.
그런데 망치와 대패와 자와 톱의 모습이 혹시 나의 모습은 아닌지요?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까? 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 왜 삶에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느냐 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이 선포하신 이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고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성전은 오로지 예루살렘에 있는 돌로 지은 성전 외에는 없다고 믿었고, 그곳은 자신들조차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을 만큼 거룩한 곳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 안에 거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슨 근거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성도 안에 계시는 성령의 내주하심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 순간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내 안에 계십니다.
성전이란 하나님의 영이 머물러 계시는 거룩한 곳입니다.
성전은 예배당 뿐만 아니라 어디든지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이며, 거룩한 성전인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생명의 성령 공동체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 귀한 성령님이 바로 내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성전이기에 우리는 성전 된 우리 몸을 소중히 지키고 가꾸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릇에 밥을 담으면 밥그릇, 꽃을 담으면 꽃병,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되는데,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계신 성전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을 얼마나 의식하며 살고 계신가요?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잊어버리고 세속주의, 물질주의, 향락주의에 빠져 인간의 정욕이 뛰어노는 터전으로 몸을 함부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성전이기에 우리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이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의 손도 선한 곳에서 선한 일을 해야 하며, 우리의 발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의 몸을 성전에 비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린도 지역은 항구 도시로 부유한 상업도시였고 향락의 소굴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곳에 고린도 교회를 설립했고, 아볼로가 와서 그들의 신앙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는 지식과 은사, 체험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바로 서지 못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하나가 되지 못했고, 내분이 일어나 어떤 이는 바울파, 어떤 이는 아볼로파로 나뉘어졌습니다.
바울은 자신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이 자라나게 하셨나니,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며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나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에 비유한 것은, 교인들이 나뉘어 분쟁하는 것이 교회를 부패시키고 파괴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중대한 죄악임을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교회가 왜 하나 되지 못할까요? 왜 서로 사랑하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성전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거룩한 내 몸을 내 것인 것처럼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성령과 말씀으로 거듭났다고 곧바로 우리가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속 사람은 변하여 새로운 영이 들어왔지만 그 영을 품고 있는 우리의 육신과 마음은 여전히 옛 사람 그대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난 이후에는 하나님을 바라보려고 하는 영적인 속성과 하나님을 거부하고 세상을 바라보려고 하는 육적인 속성이 싸우는 영적 전투가 일어납니다.
하나됨을 막는 것은 시기와 분쟁과 교만입니다. 시기는 열등감에서 나오고, 분쟁은 우월감에서 나옵니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비교 의식에서 나옵니다. 교만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며 하나님 없이도 잘 살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나누고 분리시키는 것은 마귀의 일입니다. 분열의 싸움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탄의 역사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로 우리 영에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훈련을 해야 합니다.
신앙이 성숙해간다는 것은 바로 육적인 속성을 벗어버리고 점점 영이 육신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서로 하나되어 화해하고 화목하게 화평을 누리며 살길 원하십니다.
따라서 경쟁 분쟁 파당 분열을 피하고 화목하여 한 몸을 이루어 주님이 맡기신 하나님 나라 건설과 확장에 매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과 함께 거룩한 성전으로 만들어나가길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교만과 이기심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분열과 다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 제 잘못입니다.
다 제 허물입니다.
진정 주님의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하지 못해서
진정 주님의 마음으로 자매를 섬기지 못해서 제 부족이 드러난 일입니다.
주님 하나되게해 주옵소서
서로를 주님처럼 대하게 해 주옵소서
내가 비난하고 정죄하는 영혼의 얼굴속에서 주님의 얼굴을 보게하시고
하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주님의 눈물로 기도하시는 기도의 소리를 듣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는 저의 몸을 함부로 하지 않고 저의 눈과 귀와 입과 손과 발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의 산제물로 올려드리게 하소서.
우리의 입술을 주관하여 주셔서 사랑의 말만 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슴을 주관하셔서 겸손의 마음만 품게 하옵소서
우리의 손과 발을 주관하사 봉사하며, 형제의 필요를 채워줌에 분주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ttps://youtu.be/-tfqZhmk2rE?list=RD-tfqZhmk2rE
https://youtu.be/lcSOAgsK0mQ?list=RD-tfqZhmk2rE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