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한국전 참전
한국전쟁 휴전과 이스라엘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체결된 휴전협정(정전협정)으로 공식적으로 전쟁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이 협정은 북한, 중공군, 유엔군이 서명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 휴전 협정문의 기초가 되는 유엔 결의안은 당시 이스라엘의 유엔 대표부 외교관들이 중심이 되어 작성한 7개 항목의 ‘원칙 성명(Statement of Principles)’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6,25 전쟁
대한민국과 이스라엘 간의 관계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같은 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시작되어, 1962년 4월 9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습니다. 그러나 최초로 양국 관계가 시작된 것은 1950년 한국 전쟁 발발을 통해서였습니다.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은 이스라엘의 외교 정책 방향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비식별 정책(중립적 정책)은 폐기되고 새로운 접근법으로 대체되었는데, 이는 냉전 대결의 한복판에서 이스라엘을 미국과 유엔의 편에 서게 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스라엘은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어떤 조처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바빴고. 당시 다비드 벤구리온(David Ben-Gurion) 총리는 IDF 병사들을 파견할 것을 제안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당 중 마팜(מַפָּ״ם)과 공산당 마키(Maki)라는 두 좌파 정당은 "이스라엘 독립 원칙에 위배된다"라며 새로운 정책 방향에 반대했습니다. 이러한 반대 견해는 이 두 정당의 특성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을 종식시키고 유럽 유대인을 구출하는 데 있어 소련의 역할에 대한 이스라엘의 인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벤구리온 정부는 중립 원칙을 포기한 후 일련의 불신임 운동에 직면하기까지 되었습니다. 결국 1950년 8월 3일, 이스라엘 정부는 군인을 파병하는 대신 유엔을 통해 63,000달러 상당의 의료품 등 총 10만 달러 상당을 한국에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유엔 내에서의 이스라엘의 역할 (Israel’s Role in the UN)
이스라엘 외교관들은 높은 학식과 능력으로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은 이를 보여줄 기회였습니다.
당시 안보리는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으로 인해 마비 상태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원국들은 안보리 대신 총회가 안보 위기를 다룰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그 결과 1950년 말, “평화를 위한 단결(United for Peace) 결의안이 제안되었습니다.
이 결의안은 논란이 많았지만, 이스라엘 대표 아바 에반(Abba Solomon Meir Eban) 대사가 법적 근거와 정치적 논리를 제시하여 완성에 기여했고. 그 결과 14개국으로 구성된 ‘평화감시위원회(Peace Observation Commission)’가 설립되었고, 이스라엘도 그 위원국 중 하나로 포함되었습니다. 기드온 라파엘(Gideon Rafael)은 보고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1950년 12월, 모쉐 샤렛(Moshe Sharett-이스라엘의 두 번째 총리이자 초대 외무장관) 외무장관이 유엔 본부를 방문했을 때, 트리그브 리(Trygve Halvdan Lie - 노르웨이의 정치인으로 1946년부터 1952년까지 초대 유엔 사무총장) 사무총장이 주최한 중국 대표단 환영 만찬에 초청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1950년 1월, 비공산권 국가 중 최초로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한 국가였고, 당시 모스크바에서 외교관계 수립 논의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샤렛은 중국 대표와 대화하며 한국전쟁 종식을 위한 7개항 평화안을 제시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즉각적인 휴전
2. 외국군 철수
3. 유엔 감독하의 선거 실시
4. 중국의 유엔 참여
5. 전후 복구 프로그램
6. 유엔과 중국이 보장하는 한국의 독립
7. 유엔–중국 간 현안 협의
중국 대표단은 이 제안에 관심을 보였고, 유엔 사무총장 리는 매우 고무되어 “다른 대표들과 논의해 초안 결의안으로 제출하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스라엘 대표단은 이에 따라 정전위원회(Ceasefire Committee)와 협력하여, 이 7개 항 계획을 기초로 한 ‘원칙 성명(Statement of Principles)’을 작성했습니다.
아바 에반 대사는 이를 토대로 결의안을 상정했고, 여러 나라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반이스라엘 국가들이 “결의안을 이스라엘이 제출했다”는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캐나다 외무장관 레스터 피어슨(Lester Bowles Pearson- 14대 캐나다 총리, 1957년 노벨 평화상 수상)은 일기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결의안이 이스라엘에 의해 발의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몇몇 대표단의 분노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핵심국들은 절충책을 마련했습니다. ‘원칙 성명’은 제1위원회에서 표결하고, 노르웨이 대표단이 사무총장에게 이를 중국에 전달하도록 요청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 절차는 그대로 실행되었으며, 이스라엘은 결의안의 저자 표시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원안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첫째, “원칙 성명(UN A/C.1/645)을 승인”하고, 둘째 이를 “중국 정부에 전달해 의견을 요청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바 에반은 “실질 내용에 변화 없음”을 강조하며 유연하게 대처했습니다. 1951년 1월 13일 유엔 제1위원회 회의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스라엘 결의안의 첫 부분은 이미 목적이 달성되어 표결할 필요가 없다.”
이후 노르웨이 대표단이 대체안을 제시하자, 에반은 “본질적으로 내안과 다르지 않다”며 이를 지지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의 이름은 최종 결의안에 남지 않았지만, 전 과정은 이스라엘 대표단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이스라엘의 주도적 제안은 훗날 한국전쟁 정전협정 협상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d; 이야기는 오랜 세월 동안 전문가와 학자들 사이에 전설처럼 전해져왔습니다. 최종 결의안이 노르웨이 대표부를 통해 중국(중공)측에 전해졌기 때문에 이것이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앗습니다.
하지만 전 이스라엘 대한민국 대사인 마영삼 대사의 노력으로 UN 본부에서 휴전안 초안을 이스라엘 대표뷰가 작성했다는 공문서를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이스라엘 정부도 가지지 못한 중요한 역사적 자료였습니다.
아래 UN 공문 원본을 공개합니다.
<자료제공: 전 이스라엘 대사 마영삼>
신앙적 관점을 배제하더라도 이스라엘은 멀지만 가까운 나라입니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이스라엘 아비그도리 리베르만 이스라엘 외무장관이 발표한 성명 내용이 ““미친 북한 체제를 쓰러뜨려야 할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절감케 한다.” “북한은 시리아, 이란과 함께 악의 축”이라며 “그들의 무기 확산과 도발 행위를 중단시켜야 한다”라고 비판했고. 이는 이스라엘의 대표적 영자신문 예루살렘포스트는 온라인판에 머리기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북한의 눈치를 보던 국내 정치권은 물론, 북한을 규탄했던 국제사회 다른 어느 국가보다 강도가 높은 비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대부분 주한 외국대사관이 ‘독도’와 ‘동해’를 각각 ‘리앙쿠르 암초’와 ‘일본해’로 표기할 때, 한국의 입장에 따라 ‘독도’ ‘동해’ 표현을 쓴 유일한 나라였습니다. 실제로 러시아,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스페인, 폴란드, 이탈리아, 에콰도르, 칠레, 스웨덴, 핀란드, 이란 대사관 모두 독도와 동해를 각각 리앙쿠르 암초와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여러 부분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우호와 지지를 항상 보내왔습니다.
올해는 이스라엘의 유대력 5786년이고, 지금은 잘 사용되지 않지만, 한국의 단기 4359년입니다. 이렇게 지구상에서 자기들의 민족력을 쓰는 유일한 민족은 유대민족과 한민족뿐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기도를 흡사 우리의 창처럼 암송하곤 합니다. 5음계로 이루어져 있어 듣다 보면 영락없는 우리 창과 가락이 같습니다.그래서인지 60~70년대 국내 번안 가요 중 유독 이스라엘 민요가 많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6.25전쟁 참전 유대인 용사들, 적게는 4,000여명부터 많게는 40,000명까지, 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미국에도 이스라엘에도 대한민국에도 없습니다. 단편적인 기록과 조각난 기억만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 조각을 모아 단 한장의 그림이라도 완성하자는 뜻으로 이 일을 시작합니다. 미군 혹은 영국군이자, 유대인이였던 그들은 피와 목숨으로 이 땅과 평화를 지켰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합니다.
We remember you
אנחנו זוכרים אותך
<참고>: Israel’s Role in the UN during the Korean War – YoungSam Ma
By Torah & Judaism / 유대인 한국전 참전 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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