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함께 나란히 하다"는 뜻이다.
'가루다'라는 말은 많이 쓰지 않는 말이 되어 버렸읍니다.
그런데 명사인 '가루지기'는 많이 쓰이지는 않지만 많이 알고 있지요.
그것은 특히 영화의 제목으로 쓰여 널리 알게 된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성(性)과 관련이 있는 이 '가루지기'는 〈가루지기타령〉으로 조선 후기에 시작되고, 많이 불리어졌던 판소리 12마당 중의 하나였읍니다.
〈변강쇠가〉·〈변강쇠타령〉·〈횡부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었지요.
지금은 그 맥이 끊겨 창으로 이어지지 않고 송만재가 1843에 쓴 〈관우희>와 이유원의 〈관극팔령〉 가운데 칠언시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이 작품은 신재효에 의하여 판소리 사설로 정착된 작품이고
이 소리 중에 ‘辛己年怪疫’이란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기년(1881) 이후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또한 조선 말기의 명창 송흥록·장자백 등이 잘 불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19세기말까지 이어져 오다가 20세기 이후에 그 소리의 맥이 끊겼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박동진이 살아 있을 때에 가끔씩 이 신재효 사설을 바탕으로 소리를 재현하여 부른 것으로 알려졌읍니다.
이러한 '가루지기타령'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합니다.
전반부는 평안도의 음녀(淫女) 옹녀와 삼남(三南)의 잡놈 변강쇠가 청석골에서 서로 만나 함께 사는 내용으로
옹녀는 여러 도회지를 전전하며 들병장사, 막장사 등으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는데 반하여
강쇠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른다고 합니다.
이에 옹녀는 강쇠를 달래어 지리산으로
옮겨 살게 되었는데
어느날 강쇠가 땔감으로 장승을 베어다 불을 때다가 장승 동티에 맞아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후반부는 이렇게 죽은 강쇠의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시신을 치우는 과정이 복잡하게 전개된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특히 사당패· 풍각쟁이패· 초라니 등 유랑연예인의 등장하여 노는 모습은 조선 후기, 하층 민간생활의 일면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음란한 성에 대한 경계에 그치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층 유랑민의 비극적 생활상이 광대들 자신들의 삶을 그대로 녹여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인 의의가 매우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읍니다.
그러니까 19세기 농촌공동체의 경제적 분화과정에서 발생한 사회 현상으로 민중들이 농촌공동체를 지키고자 했지만 어쩔수 없이 붕괴되고 마는 사회적 현실이 그대로 잘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판소리 열두마당은 조선 후기에 하나씩 사라져 조선 말기에 활동하던 명창을 마지막으로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다섯마당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전승이 끊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적벽가>·<심청가>·<춘향가>와 같이 사대부들이 좋아했던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들은 계속 이어져 왔지만
<강릉매화타령>·<가루지기타령>은 서민적인 재담을 담고 있었던 것들은 이어지지 못하고 도태된 것으로 보고 있어 참으로 아쉽게 여기지 않을 수 없읍니다.
아무튼, "자리를 함께 나란히 하다"는 뜻으로 쓰인 '가루다'와
힘이 넘쳐 그런 행위를 즐기는 이들을 가르키는 '가루지기'라는 말이 널리, 즐겨 쓰이기를 빕니다.
누가 이 '가루지기'를 나쁘다고만 말 할 수 있으리오.
이 세상이 끝없이 이어질 수 있는 것에는, 性 에너지를 인정하고, 바르게 쓰는데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