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주의는 어떻게 흘러왔는가
앞에서, 교육의 평등으로 기회 평등과 결과 평등을 말했다. 이 과정에는 흑인의 평등이 흑인 인종 문제와 물려있음도 공부하였다.
1960년 대는 흑인문제가 평등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빈곤’이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보았다. 빈곤퇴치 운동을 펼쳤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경제체제가 변하지 않는다면 빈곤퇴치는 어렵기 때문이었다.
소수 인종의 대학 진학을 돕기 위하여 소수인종에게 인종별 할당제를 적용하였다. 70-90년 대의 평등 정책은 차별철페 조치(AA=Affirmative Action) 이다.
지금까지 요약한 내용은 평등교육의 의미가 교육기회의 평등에서 결과의 평등으로 흘러왔음을 말하였다. AA는 일정한 자격 취득을 돕는다기보다는 자격 자체를 다양화하는 데 큰 의의를 두었다. 이것은 상이한 결과를 동일하게 인정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정책이었다.
성취의 수준을 정하는데 보편적인 기준에서 벗어나서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반드시 변호사가 되어야 하고, 고급 관리가 되어야 하고, 회사에서도 지위가 높아져서 월급은 많이 받든지 하는 자만이 성취를 이룬 것이 아니고, 자기의 개성에 맞추어서 식당을 운영하거나, 운동선수가 되거나, 자기의 개성에 맞추어서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도 성취를 이루었다고 하자.
이것은 자기가 추구한 결과를 이룬 것이기 때문에 결과의 평등이라고 하겠다.
다양성과 개성을 인정해주는 것은 결과의 평등과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