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은 1900년대에 세계 대전을 두번이나 겪었습니다. 1차대전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이고 2차대전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6년동안이었습니다. 1차대전의 주요국들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그리고 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제국 등입니다. 이른바 협상국과 동맹국의 대결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세계를 대상으로 식민지를 넓히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당시 강대국들은 서로 이해관계가 부딪히자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발칸전쟁이라는 예고편으로 시작해서 사라예보 사건으로 세계 대전의 막이 올랐습니다. 결과는 연합군의 승리속에 독일 등 동맹군의 참패였습니다. 전사자만 9백만명이 넘었습니다.
1차대전이후 독일 등 패망국들은 엄청난 시련에 봉착합니다.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모든 해외 식민지를 잃었고 패전국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배상금까지 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패전국 독일에 대한 감내하지 못할 가혹한 책임을 물린 것과 승전국에 속하면서도 보상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이탈리아 문제는 더 큰 전쟁의 씨앗을 남기게 됩니다. 협상국의 해상봉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독일로서는 어마어마한 전쟁배상금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국내적 정치상황까지 겹쳐 독일은 그야말로 정치적 경제적 대혼란을 겪게 됩니다. 추락하는 경제에 동력을 심겠다고 대량의 화폐를 찍어냈는데 그것이 바로 초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말았습니다. 빵 하나 사기위해 손수레에 돈을 가득 싣고 가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치적 문제도 독일의 발목을 굳게 잡고 있었습니다. 전후 독일에 들어선 바이마르 공화국은 제대로된 통치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좌우익간의 대립은 격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좌익은 사회주의 사상을 퍼뜨리며 사회주의 정부 수립을 위한 운동을 개시했고 1차대전 참전용사들이 주를 이룬 우익은 자유군단을 결성해 좌익과 격렬한 대립과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한반도에서 해방후 벌어진 좌우익의 대립과도 매우 흡사합니다. 그런 상황속에서 독일 국민들은 좌절하고 절망했으며 어떤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기를 학수고대했습니다.
이때 홀연히 등장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히틀러입니다. 1934년 8월 19일 세계 역사상 최악의 전쟁범죄자 가운데 으뜸인 히틀러가 국민투표를 통해 총통에 등극합니다. 당시 힌덴부르크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사망으로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95%이상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히틀러는 대통령 겸 총리가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히틀러의 공포스런 죄악이 유럽전체에 퍼져 나가게 됩니다. 독일은 1차대전에 이어 또 다시 용서받지 못할 2차대전을 일으킵니다. 수천만명의 인명이 희생됩니다. 그 전쟁의 여파로 한반도도 독립하게 되고 한국전쟁이라는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났으니 한국인에게도 잊혀지지 못할 전쟁이 됐습니다.
독일은 1차대전에 이어 2차대전에서도 패망합니다. 초반에 유럽 거의 전체를 휩쓸고 점령했지만 후반에 밀리면서 두번이나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패망한 나라가 됐습니다.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나뉩니다. 이제 독일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국제사회는 독일의 손과 발을 묶어버립니다. 일본에 군대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리고 독일은 학생들에 어릴 때부터 히틀러같은 선동가들이 전쟁을 부추긴다해도 국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게 하는 의식교육을 철저하게 시킵니다. 그런 교육을 독일인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교육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닮아야할 교육법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 독일에 최근 요상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바로 극우세력의 준동입니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극우세력들의 준동이 유행인 모양입니다. 독일도 그렇습니다. 독일은 16개 연방주들이 분권 정치를 하고 있는 데다 주 선거 결과에 따라 연방상원 구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주 선거가 연방 선거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내년 9월 예정된 독일 총선을 앞두고 이번에 3개주에서 선거가 실시됩니다. 튀링겐과 작센 그리고 브란덴부르크 등 주요 3개주 선거가 잇따라 치뤄집니다. 그런데 튀링겐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당이 주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독일을 위한 대안당은 그야말로 극우정당입니다.
튀링겐주에서 출마한 독일을 위한 대안당의 비외른 회케후보는 내놓고 히틀러를 절대악이라고 표현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인물입니다. 히틀러를 적극 두둔하는 인물이라는 말입니다. 지금껏 독일 정치인 사이에서 히틀러를 두둔하는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불문률처럼 여겨졌습니다. 그 지독한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럽을 피바다로 만든 장본인을 두둔하는 것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분위기였지요. 하지만 분위기가 점차 달라지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호응하니까 극우정당을 만드는 것이고 그 정당에서 출마한 후보자들을 지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외신들은 튀링겐주에서 출마한 회케는 2차대전 이후 독일 주 선거에서 승리한 최초의 극우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우려의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문제는 나머지 2개 주에서도 독일을 위한 대안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년 9월 독일 총선을 앞두고 이번 3개주 선거 결과가 나치 독일의 과거 청산에 전념해온 독일에 극우의 부활 내지는 히틀러 후예들의 준동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히틀러같은 극우세력의 재준동을 막으려 노력한 독일이지만 정치인들 개개인이 극우성향을 가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주민들이 외면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주민들이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그들이 내놓는 정책에 열광하면 그것은 사정이 달라집니다. 마치 1934년 히틀러가 괴변속 웅변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1차대전이후 독일도 나름 선동가들을 제거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다시는 세계대전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경제적 정치적으로 혼란을 겪자 독일인들은 돌아섰습니다. 현실 생활이 어렵게 되자 선동가들의 현란한 말에 넘어가버린 것입니다. 얼마전 겪은 그 혹독하고 참혹했던 전쟁의 기억을 순식간에 지워버리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리 극우세력이 선동을 해도 국민들이 외면하면 그 극우들은 설 땅이 당연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동조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다시 전쟁의 먹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입니다.
히틀러때도 그랬습니다. 설마 다시 세계대전을 일으킨다고...하지만 결국 그렇게 됐습니다. 의식있는 독일인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소리지만 게르만 민족에게는 세계 전쟁의 DNA가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2차대전이 끝나고 독일 권력자들이 세계를 향해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했지만 79년만에 또 다시 히틀러의 망령이 독일 곳곳에 들어차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이러다 독일 경제가 붕괴되고 국민들의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질 경우 또 어떤 모양의 극우정치인이 등장할 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마치 90년전 1934년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했던 그 시점처럼 말입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유럽언론들이 독일의 분위기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때문입니다.
2024년 8월 2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