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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韓愈>/맹동야를 떠나 보내면서(새로읽는 고전:100)
◎왜 감동하여 우는가?평형을 잃으면 울음이 있다. 불우한 벗에게 울라는 권유.
이는 중국 문학사의 황홀경이라 할 만하다.
품격을 갖춘 문학의 요건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들이야 한둘이 아니겠지만,그 전제가 되는 것은 아무래도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게 한다는 요소가 아닐까.감동이라 함은 인간의 마음 속에 마치 떨림판 같은 것이 있어 좋은 글을 읽으면 그 떨림판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공명(共鳴)을 일으키는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겠다.
바로 이 공명작용으로 문장의 본령을 설명하고자 한것이 바로 한유의 ‘맹동야를 떠나 보내면서’(送孟東野書)라는 천하의 명문이다.
○‘울 명’자 39번이나 나와
이 글은 한유가 맹동야라는 지인(知人)을 떠나보내면서 그를 위로하기 위해 쓴 글로,전체 6백30여 글자로 이뤄진 문장 가운데 ‘울 명’(鳴)이라는 글자가 39번이나 나온다.한유는 지극한 문장의 전제요건을 ‘불평즉명’(不平즉鳴)으로 요약한다.곧 문장의 ‘울림’(鳴)이라는 신비한 현상이 ‘불평’,다시 말해 평형을 잃은 상태로부터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다.
“무릇 물(物)이란 그 평형을 얻지 못하면 우는 법이다.풀과 나무의 소리 없음도 바람이 이를 흔들면 운다.물(水)의 소리 없음도 바람이 이를 움직이면 우는 법이다.그것이 도약하는 것은 또한 이를 격발하기 때문이요,그것이 내닫는 것은 이를 막는 까닭이며,그것이 끓어오르는 것은 열을 가하기 때문이다.쇠와 나무도 소리가 없건만 어쩌다가 그것을 두들기면 운다”
여기서 물(物)이란 객관 사물 일반을 가리킨다.사물의 보편적 원리로서 그것이 본시 유지하고 있던 평형의 정지상태를 상실하면서 어느 쪽으로든 기울어지는데서 울림이 생겨난다는 이치로부터 문장의 도입부를 마련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객관 사물과 마주하여 접하는 인간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로 평형을 잃으면 울리는 현상이 내재해 있다.
“사람이 말을 하는 이치 또한 그러하다.부득이한 사정이 있은 연후에야 제대로 말을 할 수 있는 법이다.노래함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요,소리를 내어 우는 것은 가슴 속에 품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무릇 입에서 나오는 것이 소리로 되는 것은 그것이 모두 평형을 잃은 까닭이다.음악이라는 것은 가운데 맺힌 바가 있어서 밖으로 새는 것을 말한다.잘 우는 것을 가려 뽑아 그것을 빌려 울게 하는 것이다.쇠 돌 실 대나무 표주박 흙 풀 나무,이 여덟 가지는 물건 중에서 잘 우는 것들이다”
무릇 인간의 가슴 속에는 창고 같은 것이 있어 그 속에 차마 말하지 못할 사연들이 오랫동안 저장되어 있다가 그것들을 더이상 가둬두지 못하여 부득이(不得已)한 지경에 이르러 급기야 터져나올 때만이 비로소 참된 언어와 진실한 글로 된다는 의미다.
○예술의 보편적 우주론 획득
이는 물론 음악에도 적용되는 이치가 아닐 수 없다.가슴 속에 맺힌 바(鬱於中)가 있어 그것이 그 맺힌 긴장을 이겨내지 못하고 북받쳐오를 때야말로 제대로 된 음악이 되는 것이다.우리가 악기로 사용하는 대나무나 쇠 따위의 것들은 다만 잘 우는 것(善鳴者)에 지나지 않는다.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모두가 우연한 것인가.
한유는 하늘의 이치,곧 보편적 원리를 끌어들여 설명한다.
“하늘의 때라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잘 우는 것을 가려뽑아 그것을 빌려 울게 하는 것이다.그리하여 새로 하여금 봄날에 울게 하고,우레로 하여금 여름날에 울게 하며,벌레로 하여금 가을날에 울게 하고,바람으로 하여금 겨울날에 울게 하는 것이니,네 계절이 서로 맞물려 밀듯 빼앗듯 하는 것은 반드시 평형을 얻지 못한 바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늘의 때(天時)라 함은 춘하추동 사계절을 가리킨다.그 사계절에 때를 맞추어 새와 우레 그리고 벌레와 바람이 우는 것이다.사계절의 운행을 가능케 하는 원리는 음양의 질서에서 기인한다.음과 양의 두 기운이 다시 사상(四象)이라는 더욱 정교한 시스템으로 나뉘면서 사계절이 서로 맞물려 밀듯 빼앗듯(四時之相推奪) 작동되는 바에서 바로 평형을 잃고 울림을 주는 원리가 찾아지는 것이다.인간의 언어와 문장 그리고 음악과 예술은 이렇게 해서 보편적 우주론과 만나게 된다.
문장을 다루거나 노래를 부르는 행위를 자신의 소명으로 삼는 자는 이러한 이치를 통해 선택된 자다.
“그것은 사람에게 있어서도 역시 그러하다.사람이 내는 소리의 가장 정묘한 것을 말이라 한다.문사의 말은 또한 그 중에서 더욱 정묘한 것이다.더욱이 잘 우는 자를 가려 뽑아 그를 빌려 울게 하는 것이다”
문인이나 예인은 ‘잘 우는 자로 가려 뽑힌 자’(擇其善鳴者)로서 하늘을 대신하여 우는(假之鳴) 존재다.문인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보자면 가장 축복받은 존재인 동시에 가장 저주받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문인의 존재론은 역설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한유는 저주받은 동시에 축복받은 문인의 원형을 공자에게서 찾는다.
“주(周)나라가 쇠하자 공자의 무리가 울었다.그 소리는 크고 멀었다.전하는 말씀에 가로되 하늘이 장차 부자로써 목탁(木鐸)을 삼으려 하였다."
○‘발분저서’의 전통 이어받아
그것이 어찌 믿을 만하지 않겠는가” 공자 역시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궁핍한 시대의 시인’인 셈이다.이러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의 계보학의 역사가 바로 중국문학의 정신사다.
그 계보학에는 공자로부터 거슬러올라가면 ‘주역’을 펼친 주나라의 문왕(文王)이 자리잡고 있으며,공자의 하대(下代)로 내려가면 이소(離騷)의 시인 굴원(屈原),‘사기’(史記)의 사마천(司馬遷)이 버티고 있다.
이른바 ‘발분저서’(發憤著書)의 전통을 한유는 정확하게 이어내리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전통은 한유로부터 다시 구양수(歐陽脩)의 궁이후공(窮而後工)으로 전승되면서 중국문학사의 척추를 구성한다.
회재불우(懷才不遇)하여 ‘불평’을 간직한 벗 맹동야에게 실컷 울어서 주위를 울게 만들라는 권유에 다름아닌 이 글이야말로 중국문학사의 황홀경이 아니겠는가.
<유중하 연세대 중문학과교수>
◎한유는 이런 인물/당송 8대가의 한사람…혁신적인 고문운동 전개
한유(韓愈·768∼824)는 당나라 때 문인으로 자는 퇴지(退之).하남성 하양(지금의 孟縣) 출생.원적(原籍)인 창려(昌黎)라는 지명을 따 한창려로도 불린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육조(六朝)시대 이래로 문단에서 유행한 바 있는,공소한 내용에 형식미만을 추구해온 변문(騈文)에 반대하여 유종원(柳宗元) 등과 함께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주도한 인물.그가 창도한 고문운동은 복고적인 것이 아니라 아이로니컬하게도 가장 혁신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글과 도를 하나로 일치시키되 도를 위주로 한다”(文道合一 以道爲主)는 유가(儒家)의 전통적 문학관을 견지하는 한편,불교를 배척하여 맹자(孟子)와 동중서(董仲舒)의 유가적 문통을 잇고자 한 정통주의자로 유명하다.
특히 그의 산문은 기세가 충패(充沛)하면서 동시에 종횡무진으로 치닫는 독특한 비유와 상상력으로 넘쳐나며 그로테스크한 면모를 지니면서도 엄정함을 잃지 않는 독보적인 것으로 후세의 모범으로 작용해왔다.‘퇴고’(推敲)라는 말은 그가 후배 시인인 가도(賈島)의 시구를 고쳐준 일화에서 기인한 말로 오늘날에도 인구에 회자하는 성어(成語)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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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 맹동야를 보내며 지은 서(序) (送孟東野序)
만물은 평정을 얻지 못할 때라야 소리를 낸다. 초목
은 본디 조용하나 바람에 흔들리면 소리를 낸다. 물
은 원래 조용하나 바람이 일어 흔들면 소릴 낸다.
그것이 튀어오르는 것은 부딪혔기 때문이고, 세차
게 흐르는 것은 무언가에 막혔기 때문이며, 끓어오
르는 것은 불을 만났기 때문이다. 쇠와 돌에는 소리
가 없건만, 때리면 소리를 낸다. 사람의 말도 이와
같아 부득이한 바가 있으면 말로 나오니, 그리워서
노래를 부르고, 가슴에 사무쳐서 곡을 하는 것이다.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은 평정치 못한 바가 있
기 때문이리라!
음악은 속에서 응어리진 것이 밖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음악을 연주할 때엔 잘 우는 재료를 골라
그로 하여금 소리를 내게 하는데, 쇠, 돌, 실, 대나
무, 박, 흙, 가죽, 나무 이 여덟가지가 만물 중에서 가
장 잘 우는 것들이다. 자연의 계절 역시도 이와 같
아서, 잘 우는 것을 골라 그로 하여금 소리를 내게
하는데, 그래서 새가 봄을 알리고, 우레가 여름을 알
리며, 벌레가 가을을 알리고, 바람이 겨울을 알리는
것이다. 사계절이 서로 밀고 당기고 하며 변화하는
것은, 분명 평정을 찾지 못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리
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소리 가운데 가장 뛰어
난 것이 언어이며, 언어의 정수는 바로 문장이다. 따
라서 이는 잘 우는 것을 더욱 세심히 골라 그로 하
여금 소리를 내게 한 것이다. 요순 시대에는 고요
와 우가 잘 우는 자였기에 그로 하여금 소리를 내
게 하였다. 순임금의 악관 기는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어, <소> 음악에 기탁하여 울었다. 하나라 때
에는 태강왕의 다섯 동생이 노래로서 소리를 내었
고, 은나라 재상 이윤은 은나라의 소리를, 주공은 주
나라의 소리를 내었다. <시경>과 <상서>, 육예에
실린 것은 모두 빼어나게 운 소리이다. 주나라가 쇠
락하자 공자와 제자들이 울었는데, 그 소리가 커서
멀리까지 미쳤다. '하늘이 장차 공자를 목탁 삼으려
하시니'라는 기록이 있는데도 믿지 못하겠는가! 주
나라 말엽 장주는 황당한 언사로 울어댔고, 대국인
초나라가 망해갈 땐 굴원이 울었다.
장손진, 맹가, 순경은 도로써 운 사람들이며, 양주,
묵적, 관이오, 안영, 노담, 신불해, 한비, 신도, 전변,
추연, 시교, 손무, 장의, 소진 등은 술수로써 운 사람
들이다. 진나라가 흥할 때 이사가 울었고, 한나라 때
는 사마천, 사마상여, 양웅이 가장 잘 우는 자였다.
그 후로 위진시대에는 예만큼 우는 자가 없었으나
완전히 대가 끊긴 것은 아니다. 그 소리는 맑으나
뜬구름 잡는 듯하고, 박자가 빠르나 조급한 면이 있
으며, 문장은 음탕하고 애달프며, 뜻은 느슨하고 방
자하였다. 그리하여 말로 내었을 때 난잡하여 아름
다운 조화가 없었다. 이는 하늘이 그 덕을 추하게
여겨 돌보지 않아서인가? 무엇때문인가, 잘 우는 자
로 하여금 소리를 내지 않게 한 것은?
당이 천하를 차지한 후에는, 진자앙, 소원명, 원결,
이백, 두보, 이관이 각자의 재능으로 울었다. 살아있
으면서 아래에 있는 자로서는 동야 맹교가 시로써
소리를 내니, 그 경지가 위진시대보다 위에 있고 나
태하지 않아 옛사람에 비견할 만하며, 시 외의 작품
은 한나라의 풍격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나를 따
라 학문을 한 자 중에는, 이고와 장적이 우수하니,
세 사람의 울음소리는 참으로 훌륭하다. 하늘은 장
차 그 소리에 화답하여 그들로 하여금 국가의 태평
성대를 노래하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몸을 굶기
고 심장과 간장에 우수를 깃들여 그들로 하여금 스
스로의 불행을 노래하도록 할 것인가? 세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위에 있다한들
어찌 희희낙락할 것이며, 아래에 있다한들 어찌 슬
픔에 젖어있으랴? 동야가 강남으로 부임하러 갈
때, 마치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듯 보였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운명은 하늘에 달려있다'는 말로
써 그 심사를 풀어주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