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詩 (684)
별
― 정진규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허리 수술을 하고 지팡이를 짚게 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거리에 계단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이었다. 걷는 데에 불편함이 없었을 때에는 계단을 계단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허리가 아프고 걸음이 부자연스러워지니 계단이 보였다. 왜냐하면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정진규의 시 <별>은 바로 어둠 속에서만 보이는 별을 제시한다. 별이 빛나는 것은 그 바탕이 어둠이기 때문이다. 즉 어두워야 별이 보인다는 뜻이다. 별은 밝은 곳, 즉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서로 대비가 되는 ‘어둠’과 ‘내낮’이 뜻하는 것만 알면 이 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를 풀어서 ‘대낮인 사람들은 / 별들이 보이지 않’고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 별들이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시 속에 ‘별’은 무엇이고 ‘어둠’과 ‘대낮’은 어떤 의미일까. 내게 별은 계단이고 어둠은 허리가 아파 지팡이를 짚는 지금이요, 대낮은 허리가 아프지 않을 때이다. 허리가 아파 지팡이를 짚고 나서야 눈에 들어온 계단 - 어둠이 깔린 후에야 보이는 별, 즉 고난 속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만이 희망, 꿈을 꾼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꿈을, 희망을 품지 않는다. 삶이 고단할 때 꿈을 꾸고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더 노력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시인은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 별들을 낳을 수 있’는 것이요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고 한다. 앞의 어둠은 삶의 고단함일 것이요 이때 별들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은 희망 혹은 꿈일 것이다. 그러나 뒤에 어둡다는 것은 해가 져서 별을 볼 수 있는 어두움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그렇다는 것이리라.
어찌 보면 어둠이 빛이고 빛은 어둠이라는 역설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밤에만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대낮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별 - 꿈이나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살아가며 누구에게나 어두운 시기가 있다. 자신은 그런 날 없다, 자신의 삶은 언제나 해 뜰 날이라 자만하는 사람 - 그 삶은 곧 어두울 것이요, 그런 사람에게 희망이란 당연히 없을 것이리라. ♣
첫댓글 낮과 밤은 분명하고
별은 밤이 되고
맑은 날에 빛난다.
낮에 어두움을
느꼈을지라도 별은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이다.
보이지 않던 층층 계단을
필요할 때에는 오르고
감사함을 담는다.
보이지 않았고
바라 볼 여유가 없던
삶의 굴레를 귀하게 바라보리라.
글자에 색깔을 입히지 않습니다.
검정색으로만 통일합니다.
인용되는 글,
삽입되는 글.
특별히 강조되는 글은
색깔을 입히지 않고
글자크기, 기울기, 굵기, 글자체 등으로써
달리하면 되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해가 사라지면,
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햇빛이 강하기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요.
밤하늘의 별을 보고 꿈도 꾸고,
누군가 그리워도 하고,
아름답다고, 노래도 하고, 시도 쓰는 것이지요.
시평이 좀 다른 방향이긴,,,^^
부천이선생님
시 해설
잘 읽었습니다.
지금 어둠인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정진규 시인의 별 잘 읽었습니다.
별은 어둠이 있어야 빛난다 —
시인의 말이, 선생님의 깨달음으로 이어지네요.
고난을 겪어본 사람만이
희망의 불씨를 낳을 수 있다는 이 통찰,
읽는 내내 마음이 고요히 흔들렸습니다.
어둠의 시간을 견디는 사람,
그가 바로 별을 낳는 사람이겠지요.
— 탁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