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고 걷는 파키스탄 3題 - 발토로 빙하
시리도록 청정한 알라의 땅이여
글·사진 김미리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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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코룸을 뒤덮은 먹구름 사이로 햇살 한 줄기가 들어 침봉군을 비춘다. | |
파키스탄의 첫인사는 따뜻했다. 비행기에서 만난 파카스탄인 나실로부터 라왈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손님을 신의 축복이라고 여긴다. 손님을 초대하기 좋아하고 최선을 다해 대접한다.
라왈의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 나자 곧이어 친척까지 모여든다. 순식간에 잔칫집 분위기다. 부엌에서는 조선시대의 여인 같은 나실의 어머니와 제수들이 음식을 장만하고 있다. 겨우 눈만 보이는 히잡을 쓴 여인들만 보다가 처음으로 맨얼굴을 본다. 모두 미인이고 상냥하다. 의대생인 막내 여동생의 지성미가 은근하다. 그녀와 포옹을 하면서 맡았던 고상한 향내가 지금도 떠오른다.
나실의 아버지와 형제들은 파키스탄의 정치와 이슬람교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 주었다. 여러모로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 같다. 어제도 이슬라마바드의 붉은 사원에서 '샤리아(이슬람율법)'를 주장하는 원리주의자들의 시위로 강경무슬림 160명과 진압군 7명이 사상됐다고 한다.
파키스탄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실 아버지가 우리를 옥상으로 데려 가더니 핵무기가 있는 곳을 알려준다. 파키스탄에 핵무기가 있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사람들이 많으니 이별도 길다. 한 명씩 차례로 인사를 나누고 나니 밤 12시가 다 되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나실과 형제들이 이슬라마바드로 가는 지름길을 알려준다고 앞장선다. 평원의 끝에서부터 짙은 회색 구름이 밀려오더니 번갯불과 천둥소리가 잦아진다. 큰 비가 오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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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하 녹은 물이 흐르는 옥색 골짜기. 콩코르디아 뒤로 K2가 구름에 가려있다. | |
'세계 8대 불가사의' 카라코람 하이웨이
인더스강을 끼고 이어지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대부분 2000m가 넘는 절벽을 지나는 아찔한 길이다. 중국과 파키스탄이 공동으로 암벽과 산을 깎아 만든 엄청난 규모의 난공사였다. 16여 년의 공사기간 동안 3000여 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오죽했으면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 할까. 이 길은 달리 '하늘길'이라고도 불린다. 한숨도 못자고 달리는 운전기사가 걱정이 되어 얼굴을 살피니, 아니나 다를까 졸음운전 중이다. 말인즉 '하늘길'이 아니라 실제로 하늘길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아니, 파키스탄에 도착하는 순간 우리의 목숨은 오롯이 신의 뜻에 맡겨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카루드에서 요리사와 몇 명의 포터들을 소개받은 후, 지프를 타고 아스콜리로 향한다. 거리는 130km.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벗어나자 본격적인 요철이 시작된다. 오장육부와 뼈마디를 풀었다가 다시 짜 맞추는 듯한 흔들림이 계속된다. 이렇게 7~8시간을 달리자 사람들이 사는 마지막 마을인 아스콜리에 도착한다. '진이 다 빠졌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다. 대충 몸을 추슬러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 3시경 괴이한 소리에 잠에서 깬다. 장엄하다고 할까? 장송곡 같다고 할까? 꼭 저승에서 부르는 소리 같아서 섬뜩한 기분마저 든다. 자세히 들으니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코란 읽는 소리다. 코란은 큰 소리로 읽어야 하는데다 이 지역은 시아파가 많은 보수적인 곳이라서 조금 유별난 것 같다. 저만치 달아나 버린 잠을 애써 다시 청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텐트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니 초승달이 곱다. 이슬람교의 상징 중 하나인 초승달은 진리의 시작을 의미한다는데 과연 나는 어떠한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인천을 출발한 지 8일째다. 파이유까지 20km정도인데, 6~7km를 남겨두고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 평소에 다리가 튼튼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보다. 거의 기다시피 엉금엉금 가고 있는데 말을 몰고 오는 현지인이 보인다. 친구 혁래가 말을 빌려 나를 태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 돌길이어서 말을 타는 일도 쉽지 않다. 중심을 잡느라 안간힘을 쓰며 안장을 잡은 탓에 팔도 엉덩이도 아프다. 그래도 걷는 것보다는 낫다. 파이유에 도착하자마자 외국 산악인들의 관심을 독차지한다. 이제 겨우 트레킹 시작 이틀째인데 말을 탄 동양여자가 나타나니 그럴 수밖에.
밤이 되자 손 하나 까닥할 힘조차 없다. 배앓이에 몸살까지 겹쳐 오한이 난다. 온몸이 쑤시다 못해 살갗까지 아프다. 왜 왔는지 후회스러운 생각이 밀려든다. 다시는 이런 여행을 하고 싶지 않다. 앓다가 자다가를 반복하면서 집에 가는 꿈을 꾸었다. 꿈속이나마 너무나 행복하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고도계를 보니 3353m다. 벌써 고소증이 온 것일까, 아니면 어떠한 전염병에라도 걸린 것 일까?
아침이 되어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는다. 땡볕의 텐트 안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밤을 맞는다. 새벽녘이 되어 샤워를 한 듯 흠씬 땀에 젖기를 두어 번 반복하고 나자 다행이도 씻은 듯 열이 가라앉는다.
13일째 날. 콩코르디아에서 문 힐 캠프까지 가서 밤을 새고 다음 날 새벽 1시에 출발을 하기로 했다. 저녁식사 후?식당 텐트 안에서 새벽을 기다리다 잠든 혁래의 남편 마크가 갑자기 오한에 고통스러워한다. 저체온증에 걸린 것 같다. 다들 겉옷을 벗어 마크의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발이 시릴 것 같아 목도리를 풀어 발을 감싸주는데 발 냄새가 지독하다. 딱 청국장 냄새다.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블루치즈 냄새가 난다고 하니까 자기 치즈는 양질이라 괜찮다고 여유까지 보인다. 조금 지나니까 괜찮다고 한다. 너무 추워 우리 모두 찢어진 비닐 식탁보를 덮고 추위를 달랜다. 잠시 후 마크가 다시 덜덜 떨기 시작한다. 이번엔 더 심한 것 같아 가이드 카릴을 깨웠다. 포장해 둔 슬리핑백을 모두 꺼내 마크를 감싸주고 따뜻한 차와 영양 유동식을 먹였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다시 괜찮다며 출발해도 될 것 같다고 한다. 만일 마크에게 또 문제가 생기면 되돌아오기로 하고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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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바윗덩어리 그레이트 트랑고타워. | |
콩코르디아에 솟은 백색 피라미드 K2
콩코르디아의 북쪽에 '큰 산'을 뜻하는 '초고리', 보통 K2로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백색의 피라미드가 한눈에 들어온다. K2봉 반대편으로는 시아강그리(7422m), 스노돔(7150m), 초골리사(7665m) 등, 7000m급 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단일 빙하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발토로. 다섯 개의 빙하가 여기에 모이면서 펼쳐 보이는 기괴한 풍광은 마치 우주의 외진 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종교 문제가 아무리 복잡하다고 해도 이곳은 그것들과는 조금도 상관이 없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단절돼 있다. 시간이 정지된 곳 같기도 하다. 하지만 빙하천은 빠른 속도로 흐른다. 아마도 이곳에서 시간이 흐르는 방향은 세상과는 반대인 것 같다. 오로지 하늘과 구름, 눈, 빙하, 빙하 녹은 물, 그리고 크고 작은 돌들만이 존재하는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원초적인 땅이다. 그런데 이곳을 세련되고 고풍스러운 유럽의 광장인 콩코르디아라고 이름붙인 것이 어색하다. 잘못 입혀진 옷 같다.
트레커들의 대부분은 카라코람 산군의 중앙에 위치한 K2를 보기 위해서 기꺼이 고통을 감수한다. 등정 확률이 30%미만이라고 하는 K2는 8000m급 산중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산이다. '죽음을 부르는 산' 또는 '산악인들의 공동묘지'라는 별명이 이 산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14일째. K2 베이스캠프를 갔다가 다시 내려오기로 계획을 세웠지만,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어젯밤에 체기가 있어 잠을 못잔데다 부슬부슬 비까지 내리는 탓이다. 하지만 일행들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도 없다. 할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다섯 시간 정도 후에 브로드피크 베이스캠프에 도착한다. 외국 원정팀 텐트에서 차를 한잔 얻어 마시고 또 다시 K2를 향한다. 빙하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다른 방향으로 캠프가 보인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다. 방향을 바꾸어 캠프를 향해 가니 빙하가 녹아 흐르는 커다란 개천이 가로막는다. 가까스로 건너가니 러시아 원정팀이 반갑게 맞으며 차를 권한다. 쉬어 가고 싶지만 시간을 아껴야 한다.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한국인들의 캠프로 향한다.
좌우로 하얀 빙하가 나란히 있고 가운데 길게 형성된 모레인지대 위에 알록달록한 천막들이 아름답다. 중간쯤에 태극기가 펄럭인다. 화려한 오색 룽다와 잘도 어울리는 모습이다. 가슴이 뭉클하다. 친정집에 온 기분이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니 부산 다이나믹 K2원정대와 김창호씨, 여성산악회와 대장 오은선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며칠 전에 성공적인 등정을 마친 팀이다. 표정들이 밝다.
희극 뒤에는 비극이 있게 마련인지 정상 조금 못 미쳐 오은선씨 앞에서 셰르파 한명이 실족사했다고 한다. 등정하다가 유명을 달리한 산악인의 숫자만큼 셰르파들도 사고사를 당한다고 하니, 대략 20만 명인 그들의 인구로 볼 때 얼마나 많은 수의 셰르파들이 희생되는 것인가.
'문 힐' 캠프. 이름이 인상적이어서 달을 쳐다본다. 트레킹을 시작할 때 가느다란 달이었는데 지금은 꽉 차 있다. 곤도고라 위에 훤하게 뜬 둥근달을 보며 출발한다. 평평한 눈길을 걷다가 얼음물에 빠지기도 하면서 한참을 걸어 언덕길 시작점에서 크렘폰을 착용한다. 50도 정도의 오르막이다. 아래를 바라보면 무서울 것 같은데, 깜깜한 덕분에 겁도 없이 무조건 위를 향해 걷는다. 드디어 올해 6월에 생긴 크레바스 앞에 도착한다. 출발하기 전부터 궁금했던 곳이다. 괴물 같은 크레바스를 피해 스위스 원정팀이 왼쪽으로 낸 새로운 길은 거의 수직 벽을 10m정도 올라야 하는 위험한 길이다. 포터들이 먼저 올라가기를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갖는다. 하늘과 산이 온통 하얀데 구름 사이로 보랏빛 여명이 밝아온다. 이곳만 오르면 고갯마루가 나올 줄 알고 호기롭게 올라 쳤는데 눈앞은 끝없는 눈 언덕이다. 대여섯 걸음 올라가고 쉬기를 반복하면서 멀리 K2와 가셔브룸1, 2를 감상한다. 드디어 정상에 오르니 대설원이다. 드넓게 펼쳐진 눈밭과 파란 하늘 사이로 보이는 온갖 모양의 구름들, 천국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바로 이런 길일 것이다. 이런 곳에서 아침을 맞다니, 너무 행복하다.
정상에서 삼사십분 정도 경치를 감상하며 일행을 기다리는데 아무도 소식이 없다. 카메라 포터인 후세인이 추운지 그냥 내려가자고 한다. 발을 보니 다 젖어 있다. 나는 동계화에 크렘폰을 신었지만 그는 실내화 같은 운동화에 양말을 덧신었을 뿐이다.
거친 자연과 부드러운 눈동자가 공존하는 땅
고정 자일을 잡고 하강을 하는데 300m 정도를 20분에 내려 온 것 같다. 여기서부터는 급경사의 자갈길인데 고정 로프가 없다. '곤도고라'는 낙석고개라는 뜻이라는데 조심해서 내려가야겠다. 100m쯤 더 내려와서 쉬는데 후세인이 머리가 많이 아프다고 한다. 감기인가 싶어 머리를 짚어 보니 열은 없다. 어제부터 두통이 있다더니 고소증인가 보다. 짐을 반씩 나누어지고 내려오는데 그는 너무 졸려서 더 이상 못가겠다고 한다. 이 고개를 30번 넘었다는 그도 고산병에 걸리나보다. 평평한 양달에 후세인을 눕히고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는 커다란 눈에 고통을 가득 담고 잠이 들었다. 사람 좋은 러시아의 단골 등반가에게 무료로 일을 해준다는 착한 눈빛을 가진 후세인은 주름이 매우 깊어 서른 살이라는 실제 나이보다 십년 이상 더 돼 보인다.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찡해진다. 대부분의 파키스탄인들은 가난하지만 베풀기를 좋아하고 친절하고 사려 깊다. 언론에 알려진 무슬림에 대한 선입견과는 달리 행복해 보인다.
또 다시 반복되는 빙하와 자갈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지겨울 때쯤 되자 갑자기 눈 안에 푸르른 녹색이 가득 들어온다. 빙하 녹은 물이 만들어내는 몇 갈래의 실개천이 모이는 곳에 자리 잡은 야영지는 또 다른 삶의 한 편을 보여준다. 하루만에 느끼는 이승과 저승.
뒤늦게 '후스팡' 야영지에 도착한 마크와 혁래는 동시에 “네버 트레킹!” 이라며 짜증을 낸다. 그랬던 그들이 야생화가 만발한 아름다운 캠프에서 하룻밤 푹 자고 나서는 앞으로는 캠핑이 없는 트레킹은 안하겠다면서 “다음엔 어디로 갈까?” 하고 물어온다. 나도 콧소리를 섞어 맞장구를 친다. “마제노 패스 넘는 낭가파르바트 라운드 어때?”
이슬라마바드로 돌아오는 길에 길가의 양봉장에 들러 새벽부터 자는 사람 깨워서 야생 꿀을 사 왔다. 요즘 그 꿀을 먹을 때마다 파키스탄 생각이 난다. 벌꿀에 함유된 독특한 향은 파키스탄의 거친 야생화 밭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기분이 든다. 풀마저 메마른 거칠고 황량한 땅. 파키스타니들의 원시적인 부드러움과 맑고 순수한 눈망울. 나는 지금 꿈을 꾸듯 그것들을 떠올린다. 아무래도 나는 또 그곳으로 가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