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피로써 단추를 달아라,
“인간의 가슴은 피로 가득한 도랑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가슴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에는 피가 가득 고여 있습니다.
그 피가 어느 순간 틈틈이 보이면 그 틈새로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오늘 오후의 일입니다.
얼마 전 새로 산 바지가 너무 헐거워서, 단추를 다시 달기 위해
가위로 단추에 고정된 실을 자르기 위해 가위로 잘랐는데,
순식간에 아픔이 오고, 그래서 어디에서 아픔이 오는 것인가? 하고
바라보니 손가락 끝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차, 내가 또 실수를 했구나.
두 번째 손가락 끝 부분을 잘라 버린 것입니다.
아픔을 참고 피를 멈추기 위해 화장지를 찾아서 동여매고,
다시 대일밴드를 찾아서 칭칭 감았습니다.
그리고 단추를 찾는데 보이지가 않다가
약 1.5미터쯤 되는 곳에서 단추를 발견하고 가위를 보니,
손가락 끝이 가위에 붙어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내 분신이었던 손가락 끝이 나의 실수로 떨어져 나가
쇠뭉치에 매달려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그렇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니체는 말했지요,
“일체의 저서 중에서 나는 다만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써 써라!
그러면 그대는 깨달을 것이다.
피. 그것은 즉 정신이기 때문이다.
남의 피를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독서하는데 있어 게으른 자를 증오한다.“
나는 피로 쓰고 죽기 살기로 책을 읽으라는 니체의 말을 잘 못 이해해서
바늘로 단추를 달기 전에
피로 단추를 달기 위해서 내 손가락 끝을 잘랐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의 흐름에 의해서 피도 멎고, 아픔도 조금 가셨지만
대일밴드로 동여맨 손가락이 자유스럽지가 못해 자판을 두드리는데 조금은 불편합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이래 저래 실수만 많아집니다.
간판을 들이 받고, 문을 들이받고, 그래서 나이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
서글프기도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조금은 모자란 듯, 조금은 허망한 듯 살아가야 할 숙명, 그게 인생이겠지요,
하고 체념하기도 하지만 어디 그게 운명이겠습니까?
한 순간에 바뀌기도 하는 것(이를 테면 스스로에게 부과된 투표 한장), 그 또한 운명이 아닐까요,
그나마 방이 따뜻한 것, 그것이 위안입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따뜻한 방안 공기로 따뜻하게 데우시고,
저마다에게 부과된 권리인 투표를 꼭 하시기를,
신묘년 시월 스무엿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