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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before)과 이후(after)의 삶이 분명해야 합니다(벧전2장10)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변화를 경험합니다. 직업이 바뀌고, 거주지가 바뀌며, 관계가 변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인 베드로전서 2장 10절은 우리 삶의 지엽적인 변화가 아닌, '존재 자체의 근원적인 변화'에 대해 선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짧은 한 절 속에
'전에는'과 '이제는'이라는 두 단어를 대조시키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들이 입은 놀라운 신분의 격상을 설명합니다.
□ 이전(before)과 이후(after)의 삶이 분명해야 한다.(10절)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10절)
어떤 단어가 반복해서 나옵니까?
“전에는”이라는 말과 “이제는”이라는 말이 각각 두 번씩 나옵니다.
□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더니”
여기서 전에는 예수를 믿기 전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바로 예수를 믿은 후를 말합니다.
예수를 믿기 전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백성이 아니더니": 이는 단순히 국적이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라는 통치자의 보호 아래 있지 않았고,
영적인 소속감이 없는 '유랑자'와 같은 상태였음을 의미합니다.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의 자비(Mercy) 밖에서 자신의 죄의 무게를 온전히 스스로 감당해야 했던 비참한 영적 파산 상태를 말합니다.
에베소서 2:2절을 보면 이 세상의 풍속을 쫓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라 다녔던 사람들입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2:2)
여기서 '세상 풍속'은 단순히 유행이나 문화를 넘어, 하나님을 배제한 채 흘러가는 이 세상의 가치관과 체계를 의미합니다.
예수를 믿기 전 인간은 자유로운 것 같으나,
실상은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 탐욕, 경쟁의 흐름에 떠밀려가는 존재입니다. 내 의지로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세상의 시스템'에 길들여진 상태를 말합니다.
권력의 실체: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성경은 우리가 단순히 나쁜 습관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영적인 악의 세력이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에서 '공중'은 하늘과 땅 사이, 즉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영적 영역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공중 권세 잡은 자)의 영적 영향력 아래 놓여 있습니다. 목자 없는 양이 이리의 위협 속에 살듯, 영적인 보호막이 없는 상태에서 악한 영의 조종을 받는 '영적 종살이'를 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불순종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거역하는 것이 본성이 되어버린 인류를 가리키는 히브리적 표현입니다.
악한 영은 밖에서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활동(역사)'합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게 만들고, 자기 스스로가 주인 되어 살도록 부추깁니다.
죄는 단순히 행동의 실수가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역사하는 '영적인 힘'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는 여기서 벗어날 수 없으며, 반드시 더 강한 권세(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끄집어내 주셔야만 합니다.
우리의 과거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던 '무(無)'의 존재였으며, 심판의 두려움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는 이제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책임지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신다는 '보장'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입었습니다. 심판 대신 용서를, 진노 대신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25절에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로 돌아왔느니라”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양은 짐승 가운데 가장 우둔하고 나약한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길을 잃으면 자기 스스로 우리를 찾아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리와 늑대가 나타나면 한 번도 싸워보지 못하고 그대로 잡혀먹는 짐승이 바로 양입니다.
자기 스스로 먹이를 구하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짐승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양에게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은 목자가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목자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어야 하고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해 주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자가 막대기와 지팡이를 가지고 이리와 늑대로부터 보호해 주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양이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왜 길을 잃어버렸을까요?
한 눈을 팔다가 길을 잃어버렸을까요?
아니면 목자가 말을 듣지 않아서 일부러 떼어놓고 가 버렸기 때문일까요?
이사야 53:6절을 보면 그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각기 제 길: 양은 목자를 따르지 않으면 각자 자기가 보기에 좋은 길, 편해 보이는 길로 흩어집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려는 죄의 본성(Self-will)을 의미합니다.
그릇 행하여: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되어 가는 길이 결국 낭떠러지인지도 모른 채 달려가는 인간의 무지함과 비참함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우둔하고 나약한 양이 어느 날 자기 스스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하여 목자를 따르지 않고 각기 제 길로 나아간 것입니다.
이 말을 좀 더 풀어 설명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너도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사단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을 말합니다.
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까?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죄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이 도와주지 않아도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얼마든지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이 바로 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되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이런 교만한 생각 때문에 양이 목자를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길 잃은 양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죽음의 골짜기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방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죄와 죽음의 법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늘 불안과 염려 속에 사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크고 작은 인생의 온갖 두려움 가운데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다 길을 잃어버린 양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영혼의 목자가 되신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 험한 광야의 나그네 인생길에서 나를 뒤에서 몰아가지 않으시고 앞장서서 나를 인도해 주실 수 있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나를 저 천국에까지 인도해 주실 수 있는, 나의 영혼이 육체의 장막을 벗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나를 책임져 줄 수 있는 영혼의 목자이신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죽음의 골짜기에서 두려워 떠는 양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는 길 잃은 양들을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5: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에게는 이전(before)과 이후(after)의 삶이 분명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누가 뭐라고 해도 신분이 바뀐 사람들입니다.
인생의 방향이 바뀐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살던 인생이 이제는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고 사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우리의 인생길에도 넘어짐이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넘어지고 쓰러졌다 할지라도 인생의 방향은 바뀌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살아왔던 인생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니 돌아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홍해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그런데 뒤따라오던 애굽의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그 홍해의 깊은 바다 가운데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 사건이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는지 아십니까?
첫째는, 너희들도 죄 때문에 다 저렇게 죽어야 할 사람인데 유월절 어린양의 피 때문에 살았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하나는, 이제 너희들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교훈합니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는 저렇게 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돌아가겠느냐? 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옛날이 그립다고 애굽으로 옛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자는 죽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했지만 한 사람도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돌아가려고 하다가 광야에서 다 죽고 만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전(before)과 이후(after)의 삶이 분명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을 앞둔 사형수가 사면을 통하여 자유함을 얻었다면 아무렇게나 살겠습니까? 결코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는 일을 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난 이후 복음의 권세와 능력을 경험한 이후 결혼도 하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달려가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예수를 알고 난 이후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가치관이 바뀌었습니다. 인생의 우선순위가 바뀌었습니다.
전 세계에 크리스천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이 어떤 찬송인지 아십니까?
그 찬송이 바로 찬송가 405장 Amazing Grace〈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입니다. 그런데 이 찬송을 작사한 존 뉴턴은 주님을 믿기 전 아프리카의 원주민을 노예로 잡아 백인들에게 팔았던 사람입니다.
흑인 노예상입니다.
가정을 파괴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심지어는 살인도 불사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진정으로 주님을 만난 후에는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노예선의 선장이었던 그가 노예제도를 폐지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이런 놀라운 변화가 있었기에 그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렇게 아름다운 찬양을 지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만이 아니라 존 뉴턴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이전(before)과 이후(after)의 삶이 분명해야 합니다. 아니 이전과 이후에 대한 분명한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전에는 내가 어두움 가운데 있었지만
이제는 빛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에는 육신의 일만 생가하고 살았으나
이제는 영적인 일을 생각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육신대로 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종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지만 이제는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며 살았으나
이제는 그 일을 부끄러워하며 빛 가운데 살기를 힘쓰는 자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마지못해 인생을 살았지만 이제는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살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불평불만을 말하며 짜증나는 인생을 살아왔지만
이제는 감사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우리 모두에게는 이와 같은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종교 하나를 선택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길 잃은 양에서 목자 계신 양으로 그 존재의 근원이 뿌리째 바뀐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에, 우주의 창조주께서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십니다. 내 힘으로 인생을 버텨내던 '영적 고아'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이 우리 앞서 가시며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고 계심을 신뢰하십시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사명은 하나입니다.
신분에 걸맞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와 가치관과 우선순위가 '하나님의 백성'다워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입술이 아니라, 우리의 '이전과 이후가 다른 삶'을 보고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선포가 여러분의 가정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여러분의 고백 속에서 날마다 실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긍휼을 얻은 자답게, 이제는 빛의 자녀로서 당당히 걸어가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의 영원한 목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