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으로 한국 대중문화가 퍼져가고 있다. TV 드라마 <겨울연가>와 영화 <쉬리>로 본격화된 일본 내 한국 바람은 현재 많은 한국 배우들의 얼굴을 곳곳에 심어 놓고 있으며, 일본엔 없는 무엇을 한국에서 발견하며 열광하고 있다. 일본에 불고 있는 한국 현상, 그 정체와 이유는 무엇인가. FILM2.0이 도쿄에서 한국을 추적했다.
한국영화가 일본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99년 <쉬리>부터지만, 최근 일련의 드라마가 일본 TV를 통해 방영되고 배우들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반응은 갑작스럽게 열렬해졌다. 개봉하는 영화마다 일본 팬들의 방문 소식이 줄을 이었다. FILM2.0 편집부에도 한국 배우들의 사진을 찾는 일본 측 영화 잡지의 요청이 이어졌다. 배용준의 팬을 자처하는 한 일본인은 <스캔들> 후시 녹음 현장 기사를 읽고 “배용준이 녹음을 했다는 스튜디오를 알려달라"며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이른바 한류(韓流) 바람이 일본에 불어닥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지의 분위기는 동남아나 중국, 홍콩 등의 야단스런 한류 열풍과는 사뭇 달랐다. 광고마다 한국 배우가 등장하거나 길거리마다 한국영화의 포스터가 붙어 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는 곳마다 요란스런 마케팅을 펼치는 할리우드영화와는 다른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판가름할 순 없다. 서점의 잡지 코너는 때마침 <라스트 사무라이>의 개봉을 앞두고 일본을 방문한 톰 크루즈 얼굴로 도배되어 있었지만, 그 한쪽 곁엔 배용준과 원빈을 표지로 삼은 잡지들도 함께 진열되어 있었다. DVD 가게 어딜 가나 한국영화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호들갑스럽진 않게, 그러나 주목할 만한 에너지로 한국의 대중문화는 일본 속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겨울연가>와 배용준의 힘
현재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배우는 배용준이다. 도쿄 곳곳의 서점에서, 비디오 가게에서, DVD 숍에서 진열장에 놓여 있는 그의 얼굴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특히 20, 30대 여성들 사이에서 배용준의 인지도는 한국의 어떤 거물급 인사보다 높다. 지난 4월 NHK를 통해 TV드라마 <겨울연가>가 방송되어 예상 밖의 뜨거운 호응을 얻은 후부터다. “배용준은 일본에선 드문 얼굴이다. 순수하고 깨끗한 그의 이미지는 일본에서 인기를 얻었던 기존의 스타일과 크게 다르다.” '서울스코프'의 츠치다 마키 영화 팀장은 배용준의 인기 원인을 일본과의 차별성에서 찾는다. 배용준 못지않게 인기를 얻고 있는 원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배우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신선함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 마니아가 없는 분야가 있겠나?” 도쿄에 2년째 머무르고 있는 유학생 박이연 씨의 말처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처음엔 소수 마니아층에서 출발했다. 배우들의 인기 역시 소수의 팬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었다. 2002년 <공공의 적>이 개봉할 당시 이성재 팬클럽 ‘초록 사이다’와 설경구 팬클럽 ‘페퍼민트 캔디’의 팬들이 개봉일에 맞춰 서울을 방문한 적은 있었지만, 폭 넓은 인기라기보단 몇몇 열혈 팬에 국한된 현상이었던 것. <미술관 옆 동물원>과 <박하사탕> 등 일본에서 소규모로 개봉되어 조용한 호응을 얻었던 작품들을 통해 알려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내에서 그들 배우의 이름을 아는 관객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겨울연가> 이후로 분위기는 달라졌다.
도쿄에서 관광 가이드 및 통역사로 일하고 있는 김양자 씨는 요즘 일본 여행사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유행을 설명한다. “배용준이 출연했던 드라마나 영화 속 촬영지를 찾아가는 한국 여행 패키지가 최근 일본 여행사의 인기 상품이다.” 지난 10월에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하 <스캔들>)의 개봉에 맞춰 배용준의 팬들이 대거 한국을 찾았다. 성지 순례를 꿈꾸듯 <겨울연가>의 촬영지를 답사하는 관객들도 이어진다. 배우 한 명의 이름이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으로 기획되는 건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드문 일이다.
장동건, 원빈 주연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촬영현장을 공개했던 지난 5월, 경주 현장에는 10, 20대부터 중, 장년층까지 4백여 명의 일본 팬들이 몰려들었다. 일본의 케이블 방송사인 KNTV와 여행사 긴키니혼 투어리스트가 마련한 ‘<태극기 휘날리며> 패키지’. 오직 장동건과 원빈을 만나겠다는 일념을 간직한 열혈 팬들이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처음에는 100명 정도의 규모로 참가자를 모집했으나, 뜻밖으로 4천여 명의 팬들이 몰리는 바람에 그중에서 선발된 소수 정예들이었다.
일본엔 없는 것이 한국에 있다
이 모든 바람의 출발점은 <겨울연가>다. 몇몇 한국영화는 일찍부터 일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이전에도 위성 방송으로 방영된 한국 드라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난 4월 NHK를 통해 방영된 <겨울연가>는 그 모든 전례들을 한꺼번에 능가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몰고 왔다. 공중파도 아닌 NHK 위성 방송인 BS 2 채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결과다.
종영한 지 벌써 6개월이 지났지만 그 여파는 아직도 크게 남아 있다. 방송이 끝난 후 DVD는 드물게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도쿄 내의 가장 큰 음반 체인점인 HMV 각 지점에는 <겨울연가>를 비롯해 배용준이 출연한 각 영화와 드라마의 DVD 코너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대표적 대학가인 이케부쿠로의 비디오 대여점에도 한국 드라마 및 영화 섹션이 따로 세워졌다. 비디오 가게를 찾은 날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는 통째로 대여중이었다. 때마침 3일간의 황금 연휴가 이어지던 둘째 날이기도 했지만, 배용준의 얼굴 앞에서 사람들은 쉽게 발길을 멈췄다.
일본 내에서 가장 먼저 알려진 한국 드라마는 <가을동화>다. 이것이 어느 정도 호평을 거두자 각 지역 방송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기 시작했고, 한국에 대한 인지도도 일본 전역에서 조금씩 높아졌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관심은 여전히 소수에 국한된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한국 배우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 건 한일 합작 드라마 <프렌즈>부터다. <태극기 휘날리며>로 한층 관심을 모으고 있는 원빈이 처음 일본 내에서 주목을 받은 것도 이때부터다. “아무래도 영화보다는 방송 매체의 파급력이 크지 않나. 원빈이 지금 일본 내에서 얻고 있는 인기는 드라마 <프렌즈>에 힙입은 바가 크다.” 츠치다 마키 팀장는 현재 한국 배우들의 인기는 영화보다는 방송에서 시작된 부분이 크다고 설명한다. <겨울연가>는 단연 그 대표 주자가 됐다. “일본의 드라마에선 애정 표현이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데 반해, 그저 지켜보는 사랑, 순수한 사랑을 표현하는 한국 드라마의 방식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그의 설명대로, 일본과 다른 한국 드라마의 관습은 뜻밖에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올해로 창간 21주년을 맞는 TV 주간지 '더 텔레비전'의 야스모토 요이치 편집장은 그 원인을 ‘순수함’에서 찾는다. 지금 러브 스토리의 가장 큰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30대 여성들에게 <겨울연가>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구조는 작품성 높은 연애 드라마가 생산되던 그들의 20대 시절을 연상시킨다는 것. “일본 드라마는 언젠가부터 모든 소재를 다 다뤄봤다는 이유로 러브 스토리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겨울연가>는 연애 드라마를 즐기는 데 필요한 요소들, 이를테면 장애를 이겨내는 사랑, 공감 가는 대사, 매력적인 배우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일본 드라마가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는 정반대의 경우다. '더 텔레비전'에서 TV 드라마의 인기척도로 활용하는 독자 의견 코너 ‘Voice Box’에는 <가을동화>가 시작할 무렵부터 조금씩 엽서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겨울연가>의 경우 방송 직후부터 종영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엽서가 쏟아지고 있다. <겨울연가>는 12월부터 재방송을 시작한다. '더 텔레비전'은 그것을 계기로 <겨울연가>를 최신호 특집으로 다룰 예정이다. “본 방송이 아닌 재방송 드라마를 특집으로 다루는 것은 '더 텔레비전'의 21년 역사 속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야스모토 편집장의 설명이다.
확산 일로의 한국영화
<쉬리>를 통해 방송보다 먼저 관객과 만났건만, 영화의 반응은 방송보다 느렸다. 그러나 지금, 전형적인 예술영화나 전형적인 흥행 대작 위주로 개봉되던 과거에 비해, 요즘 일본에서 만날 수 있는 한국영화는 장르나 소재 면에서 훨씬 다양해졌다. 지난 11월 마지막 주, 도쿄 신주쿠의 한 극장에는 <밀애>가 상영되고 있었다. <쉬리>로 알려진 김윤진의 지명도 덕분에 작은 규모지만 개봉관을 잡을 수 있었다. 다음 상영작으론 <무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1998년 <8월의 크리스마스>가 일본에 개봉되었을 당시 관객과 평론가들의 반응은 따뜻했지만 규모는 작았다. 이때까지 대부분의 한국영화들은 도쿄 내에서 단관 개봉한 후 다른 지역의 소극장으로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 관례였고, 영화 팬들에게 잔잔한 호응은 얻었을망정 일반인들의 인식까지는 얻지 못했다. 1999년, <쉬리>는 그 관례를 깨뜨리고 일반적인 할리우드영화와 같은 방식으로 와이드 릴리즈를 시도한다. 전국 150개 극장에서 동시 개봉을 시도한 <쉬리>는 1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뒀다. 한석규의 또다른 영화 <텔 미 썸딩>이 이듬해 개봉했고, 이후로 <공동경비구역 JSA> <주유소 습격사건> <시월애> 등이 잇따라 일본에 소개됐다.
모든 영화가 성공한 건 물론 아니다. 지난 1월 일본에서 개봉된 <엽기적인 그녀>가 석달간 장기 상영되며 45억 원의 수입을 올리기까지, 기대 이하의 결과를 낳고 조용히 사라져간 영화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엽기적인 그녀>는 한국영화에 대한 통념을 깡그리 바꿨다.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갈 무렵 <겨울연가>가 배턴을 이어받으면서 ‘한국식 러브 스토리’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더욱 증폭됐다. 지난 7월 발매된 DVD는 두 달 만에 10만 장이 팔려나갔다. 어느 DVD 가게에서든 <겨울연가> 다음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엽기적인 그녀>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방송 드라마에서 나타난 폭발적인 인기와는 또 다르다. <쉬리>처럼 뜻밖의 성공을 얻은 경우에도 그 인기는 배우들과 직결되지 않았다.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 <텔 미 썸딩> <이중간첩> 등 한석규의 출연작 대부분이 일본에서 개봉했으나, 일본 내에서 한석규의 인기는 그리 뚜렷하지 않다. 지금 일본이 열광하는 건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정치적이고 무게 있는 영화에 출연했던 관록의 배우가 아니다. 일본 내의 아이돌 스타처럼 젊고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일본에 없는 신선함을 갖춘 새로운 인물이다. 일본이 기대하는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엽기적인 그녀>는 그런 시점에 일본과 만났고, 전지현이라는 새로운 스타를 낳았다.
영화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건 흥행뿐만은 아니다. TV 드라마보다 다양한 종류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건 영화의 장점이다. 소규모의 한국영화들은 아트하우스의 배급망을 타고 조용히 일본에 소개되고 있다. 지난 11월 중순부터 도쿄 시부야의 대표적인 예술 영화 극장 ‘유로스페이스’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상영중이다. 유로스페이스 안에는 영화와 관련된 서적 및 상품들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배두나가 입었던 모자 달린 T셔츠를 비롯, 포스터와 가방 등이 인기 품목이다. 커다란 상업적 이익을 가져오지는 못하더라도 일본의 영화 팬들과 교류할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이다.
시부야에 위치한 또다른 아트하우스 ‘르 시네마’의 상영작 리스트에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올라 있다. 2000년 <초록 물고기>와 <박하사탕>이 일본에서 공개된 데 이어 내년 1월 <오아시스>가 상영되면 이창동 감독의 전 작품이 일본에서 개봉되는 셈이다. 대규모의 흥행작들과는 또다른 경로로 한국의 영화들은 조용히 일본 관객을 만나고 있다. 한쪽의 인기를 등에 업고 다른 한쪽에선 또다른 한국이 전해진다. 몇몇 배우들의 인기는 드라마의 인기로, 다른 장르에 대한 관심으로, 그리고 그 나라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일본 속에서 한국은 그렇게 천천히 퍼져가고 있다.
첫댓글천천히 퍼져간다고 말하기 보다는 일부만 알려진 상태입니다. 아직도.. 특히 대도시인 토쿄를 제외하고는 거의 한류를 찾아볼수 없지만, "보아"만은 다르져. 이번에 한국올때 일본 오사카에 있었는데, 한류 열풍이라고 내세울만한 것은 "보아"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본청소속 파인애플군 올림
첫댓글 천천히 퍼져간다고 말하기 보다는 일부만 알려진 상태입니다. 아직도.. 특히 대도시인 토쿄를 제외하고는 거의 한류를 찾아볼수 없지만, "보아"만은 다르져. 이번에 한국올때 일본 오사카에 있었는데, 한류 열풍이라고 내세울만한 것은 "보아"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본청소속 파인애플군 올림
조용필님과 김연자님도..있지 않나요?헤헤...
일본은 매니아층이 두꺼운 반면에 매니아층을 만족시킬수 있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고 까다롭습니다. 한국의 마케팅이 조금더 분발해야 할 듯.. 본청소속 파인애플군 올림
우리나라 한 작곡가가 말하기를...자신이 이승환,박정현하고도 작업을 해봤지만.....이렇게 말하면서... 보아는 정말 노래를 잘부른다...이렇게 잘부른애는 처음봤다면서...노래와 곡을 살릴줄 아는 가수라고 칭찬하더군요...그러니까 일본에서도 성공할수 있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