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단 하루, ‘장애인의 날’이라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이 장애체험 행사를 하고 장애아동을 초청하여 사진 찍는 행사를 거부하면서 그들 스스로 붙인 이름이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다. 2002년부터 시작된 이 발걸음에는 부양의무자 폐지, 장애등급제 폐지, 장애인활동보조 24시간 보장 등 해마다 변함없는 사안들이 동반한다. 변함이 없다는 것은 사회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2000년대 초반에 장애인 이동권이란 말이 관심을 끌었다면 최근 몇 년 간 주목을 끄는 말이 ‘탈 시설’이다. 올해 일정에는 ‘전국 탈시설 욕구조사 발표 및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도 잡혀있다.
‘탈 시설’이란, 말 그대로 시설에서 벗어나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가리킨다. 그런 말을 처음 접했을 때 날 비롯한 대개의 사람들은 ‘아유, 어떻게 감당하라고? 그런데서 책임안지면 누가 감당하라고? 그 사람들은 거기 아니면 어디 살 데가 있다고?’라며 손부터 내저었다. 그런 손사래가 어느 날부터인가 부끄럽게 느껴지더니, ‘네가 공모 했잖아’라는 지적을 정면으로 받게 됐다.
“26년 전 그날, 형제복지원 사건을 기억한다”는 제목의 토론회가 최근 있었다. 9살에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던 한종선 씨는 자신과 가족이 그곳에서 겪은 참상에 대한 기억을 담아 <살아남은 아이>란 책을 작년 말에 냈다. 그 책을 읽는 일은 참 고통스러웠다. 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 행상을 한다거나 술에 취했다거나 장애가 있다는 둥의 이유로 끌려가 강제노역과 매질, 성폭행,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렸다. 5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런 탓에 죽었다. 1987년에 사건이 1차로 폭로됐지만 사회정화를 명목으로 그런 일을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비호했던 정권은 시설장을 싸고돌았고, 26년이 지난 지금도 가해자들은 건재하다. 반면에 26년이 지났지만 유린당한 삶의 상처로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9살이었던 아이가 30대 중반이 되어 재차 그 사건을 고발했다.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리라, 지나가리라’ 가해자들은 조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모자로 지목된 보통 사람들은 과연 이번에도 이 사건을 그냥 넘길 수 있을까?
형제복지원 사건은 ‘복지시설’이라기보다는 ‘강제수용소’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소위 ‘부랑아 단속, 사회정화’라는 이름하에 국가가 조직적으로 저지른 ‘국가범죄’이지, 한 시설 운영자의 비리차원에 그치는 단순 사건이 아니다. 일반적인 복지시설의 문제와는 가까우면서 먼 듯한데, 토론회 자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장애인들이었다. 그들을 공통으로 불러 모은 게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어떤 사람이나 특정 집단을 찍어서 사회로부터 격리해도 되고, 가늠이 안 되는 시간을(때론 평생을) 시설이란 곳에서 살아도 괜찮다고 여기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느꼈다. 그런 분노와 저항에 대해 “그곳이 ‘문제’ 시설이니까 그랬지, 다른 시설은 괜찮아요.”라고 대응하는 것은 턱없는 일일 것이다. <‘문제’시설이 아닌 ‘시설’문제를 말한다>는 토론회의 부제목이 그런 의미에서 나온 것일 게다.
이날 토론회의 한 발제자도 지적하기를 그간 우리는 한국 사회의 역사를 독재 정권 대 민주화 운동세력의 관계에만 치중해서 이해했고, 소위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를 진상규명하고 피해를 보상한다는 ‘과거청산’도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만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같은 시대에, 허름한 차림이란 이유로, 일 없이 거리를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술 마시고 길에서 잠을 잔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어딘가로 끌려갔다. 그곳을 바깥사람들은 ‘복지 시설’이라 불렀지만 그곳에서 강제로 살고 노역한 사람들에게는 ‘강제 수용소’였다. 민주화운동을 억압한 대통령은 그 시설의 운영자를 골칫덩어리들을 깨끗이 청소해준 은인으로 여겼다. 그래서 운영자는 그 시설 안에서 ‘대통령’으로 행세하며, 시설 수용자들을 군대식 규율로 다스렸다.
그런데 그 일은 흘러가버린 과거가 아니다. 시설 운영자의 권력은 세습되어 건재하고, 그를 비호하고 부추겼던 국가권력의 범죄는 규명되지도 처벌되지도 않았다. 그들이 챙긴 엄청난 경제적 이익도 여전히 그들의 곳간 안에 있다. 최근 부추겨지는 경범죄 단속, 법과 질서의 강조, 위생과 안전에 대한 열망은 사회 정화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안보이게 치워지길 바라는 공모자들의 욕망을 언제든지 현실화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토론회만큼이나 길고 진지했던 뒤풀이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잊혀진 사람들’이란 표현이 과연 맞을까?” ‘잊혀진’이란 말 자체가 기억이나 생각에서 사라진다는 말인데, 노래 제목처럼 ‘잊혀진 계절’은 가능해도 사람에 대해서 그런 말을 써도 될까라는 물음이었다. 잊혀진 사람이란 말은 잊힘을 당한 사람에게 문제를 돌리는 것 같다. 의도적으로 잊으려는 사람에 대한 물음을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이 문제는 현재형이다. 의도적으로 모른 척하고 잊어버린 책임자와 공모자가 있고, 살아있음에도 없는 듯 취급받는 잊혀진 삶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26년 전 있었던 형제복지원 사건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본 토론회 모습
국제인권기준에서도 가장 진척이 늦은 부분이 시설 수용자의 인권에 대한 부분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유엔인권최고대표실 유럽사무소가 낸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의 인권에 대한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유엔과 유럽연합의 법과 보고서, 가이드라인 등을 촘촘히 인용하고 있으나, 분량 관계상 아주 일부만 발췌했다. 이 보고서 자체가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시설 수용자와 관련된 인권기준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준에 대한 설명의 상당부분을 감옥 등 구금시설에 갇힌 사람과 관련된 인권기준에서 빌려오고 있다. 그나마 최근 구멍 뚫린 부분을 메우고 있는 것이 2006년에 제정된 장애인권리협약이다.
보고서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시설 수용은 무조건 안된다가 아니라, ‘장애인이니까’, ‘위험해보이니까’ 응당 시설에서 살게 해야 한다는 판단과 법률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동등한 기초위에서 자유의 제한을 결정하는 법적 근거가 중립적으로 정의돼야만 한다’는 것이다. 시설에서 제공하던 서비스를 지역사회에 기반한 서비스로만 바꾼다고 해서 지역사회에서의 삶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지도 않다. 지역사회 속에 살아도 고립과 배제를 피할 수 없다면 문제이다. 따라서 사회서비스, 보건, 주거, 고용 등 전반적인 영역을 아우르는 전략 개발이 요구된다고 했다. ‘자립생활’이라 하면 ‘네가 어떻게 네 힘으로 설 수 있어?’라고 반문하는데, 어떤 인간도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살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한 장애인권활동가는 ‘자립생활’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연립생활’이 맞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우리 자신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원하는 삶은 타인과의 교류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삶이지,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결정에 지배되는 삶이 아니다. 자립이란 그런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삶이지 타인의 영향을 차단하는 삶이 아니다. 자립하고 싶은 인간으로서 나는 누군가에 대한 단속과 수용을 암묵적으로 수용하는 공모자가 아니라 더 많은 교류를 함께하는 동료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