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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다.
지난 2월의 강화도사건을 계기로 카페를 탈퇴하였었고, 얼마 후에 다른 닉네임으로 재가입하
였으나 어느 분의 글에 단 댓글 때문에 강퇴를 당하여 두 번의 탈퇴를 하였었는데, 회장님이
영구 귀국을 하시고 문자를 보내 오시고 귀국인사를 겸한 모임에 참석해 달라고 간곡한 말씀
이 있으셔서 참석을 하였었다.
탈퇴를 했던 카페의 모임에 간다는 것이 겸연(慊然)쩍은 일이라 망설였었지만, 나처럼 무식하
고 아무런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에게 끝까지 애정을 가지고 대해 주시는 회장님의 성의와 인
품을 내 몰라라 하기가 어려워 다시 남도명상기행에 동참하기로 약속을 하였고, 전에 쓰던 아
이디는 다음에서 다시 쓸 수가 없어 탈퇴를 해서 다른 아이디로 재가입을 했고 코리안 아쉬람
에 다시 가입을 하며, 전에 쓰던 닉(철면천사)은 나같이 타락한 사람이 쓰기에는 너무 과분하
고 지금의 내가 시골인 예산에서 살고 있으니 "시골사람"이 어울리겠다 싶어서 시골사람으로
가입을 했다.
오후에 지난 번 카페 탈퇴의 빌미가 되었던 깜돌이를 하루에 거금 15000원에 애견호텔에 맡
겨 놓고 밤 10시 쯤 정안님으로 부터, 같이 물같이님의 조문을 다녀 온 소반님과 장순욱님 셋
이서 인천을 출발하였다는 전화를 받고 목욕재계를 하듯이 물을 데워서 욕실이 없어 부엌 바
닥에서 머리를 감고 수염을 깎고 샤워를 하고 출발을 했다. 문원공 완당(추사) 김정희선생의
문향과 예향, 그리고 매헌 윤봉길의사의 충혼의 기가 넘치는 예산을 뒤로 하고 영남학파의 유
향이 넘실거릴 남녘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수덕사IC로 진입하여다른 팀과 만나기로 한 인삼
랜드휴게소로 향했다. 온 세상은 루시퍼가 지배하는 듯 어둠이 삼켜 버리고, 고속도로변에 가
끔씩 나타나는 가로등만이 어둠으로 부터 세상을 지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 나의 가
슴과 동공에 아련함을 남겨 주었다.
제일 먼저 휴게소에 도착하여 20여 분 기다리니 소반님 일행이 도착하고 잠시 후에 휘오스님
일행이 도착하고 회장님 일행이 15분여 후에 도착했다. 재회의 기쁨들을 나누고 1시 반이 넘
은 시간에 출발하여 하동 진교면에 있는 영풍펜션형 민박에 네시 경에 도착하여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희모님과 들꽃님 솔님등 여성 분들이 준비 해 온 음식과 조리로 차려 진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이 번 모임엔 작년 여름 명상기행을 같이 했던 회장님의 길림사범대 제자로 서
울 시립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중인 꺼지엔난(葛建楠)양과 제자로 한국문화체험을 온
(희모님이 보살피고 있다고 함) 까오펑하오양이 스승이신 회장님을 따라 참석했고, 항상 이 카
페의 종군기자처럼 고령이신데다 불편하신 몸으로 어렵고 힘든 곳을 마다 않고 취재를 다니
시는 박진서 대모님, 그리고 임종은 목사님, 여러 모임을 빠지지 않고 다니시며 헌신적으로 봉
사를 하시는 들꽃님과 솔님, 식당운영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까지 많은 음식을 준비해 오신
희모님, 젊은 나이에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글인 "시간과 균형"이란 책을 쓰신 또 한 분의 석학
장순욱님이 참석해 주셨고 재가 신학자이신 임종원님,휘오스님, 그리고 허형철 목사님(정안)
그리고 존재 감이 없어 참석했는지 안 했는지? 아리송한 나, 그리고 우리의 기둥이신 회장님,
우리카페의 안주인 노릇을 하시며 모든 행사에 노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소반님, 그리고 다솔
사의 총무스님인 만종(강물처럼)스님 회장님의 누님도 꽤 긴 시간을 함께 해 주셨다.
공교롭게 우리모임을 하루 앞두고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물같이님 때문에 다소 무거운 마음
도 없진 않았지만, 예정된 행사라 진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회장님의 주재로 물같이님을 위한
묵념과 천국의 문을 열기 위한 기도도 드렸고, 이튿 날 발인시간 쯤일 때 임종은 목사님의 기
도로 물같이님의 영혼을 배웅해 드렸다. 부디 얽매임도 집착도 고통도 슬픔도 없는 하늘 나라
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다른 분들의 후기가 상세히 잘 되어 있어서 구구한 서술은 피하고 개인적으로 찍은 사진들을
올려 보면,
108 계단 앞에서 소반님과 정안님. 혹시 부처님과 통화를?
다솔사에서 차담을 나누던 건물에 붙어 있던 현판과 같은 추사 김정희선생의 글씨
명당이기에 묘를 쓰는 것을 금한다는 표(封表)
다랭이마을의 지붕에 있는 꽃문양
송정해수욕장 부근의 특이하고 아름답게 설계된 민박 건물
송정해수욕장에서의 5인의 광인(光人?)들 그리고 찍사 소반님
아마 위치상으로 추정해 볼 때 광양항인 것 같은데 잘 모를 항구의 야경
다랭이 마을의 다랭이 논 들(너무 늦게 도착하여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슴.
이렇게 1일차를 마치고 배고픔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숙소로 돌아 가서 늦은 저녁을 먹고 소
반님의 물같이님을 위한 추모의 곡을 마지막으로 마감하고, 휘오스님과 제일 늦게 1시가 조금 덜 된 시간에 잠을 청했으나 뒤척이다 막노동과 경비원 출근 때문에 일찍 일어 나던 습관이 들
어서 여섯 시 오분에 잠이 깨어 희모님이 세면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뒤로 하고 바닷가 산책을
나섰다. 겨울에 비하면 한낮이나 다름없는 분위기라 그렇게 신비롭거나 묘유한 기운이 느껴지
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신선한 짠내음이 코를 찔러 왔다.
조그만 어촌 마을의 항구
게들의 행진
이 게는 산으로 등산을 가다가 아니면 등산을 마치고 바다 쪽으로 가다가 변을 당했을까? 사람
들처럼 이런 미물들에게도 운명이란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개똥철학같은 생각을 해 봤다.
50여미터도 안되는 둘레길
이 부채를 선물로 받았슴. 다시 한 번 소반님께 감사
회장님이 졸업하신 양보중학교(회장님이 양보심이 많은 게 중학교를 양보중학교를 다닌 때문
이란 걸 알게 되었다.)
세계적인 석학인 이명권박사님을 키워 준 샘물
회장님을 제외한 손위 형제자매가 태어난 집 지금은 재실로 변해 져 있었슴.
횡천면 소재지의 식당에서 마지막 점심(칡냉면, 육회비빔밥, 된장찌개등)회장님의 우측에
회장님의 누님 모습이 보인다.(희모님의 열심히 먹는 모습이 성스럽게 느껴진다.)
점심을 끝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섬진강가의 송림공원으로 갔다가 귀경길에 오르고 장순욱
님은 21일 아침 생방송에 출연해야하기 때문에 하동 터미널로 가서 회장님 누님과 함께 진주
에 가서 고속버스나 열차로 귀경길에 오르기로 했고 정안님과 나는 일부러 내려 오기도 힘들
기에 이 기회에 청학동엘 가보기로 했다.
일종의 기숙학원인 풍교헌의 훈장님이신 구순의 강(진양 강씨) 어르신 문앞에 서 있는 청년은
조교 같은 역할, 나중에 청학동 박물관 안에서 차를 대접해 주던 장년의 사내가 이 어르신의
맏아들이다. 정안님은 같은 날에 부자의 사진을 다 찍었다.
집 뒤의 대나무 밭이 선비의 절개를 무언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
청학동 계곡에서 똥폼을 잡고서
혼자서 또 정안님과 둘이서
건국전을 배경으로 선 정안님
삼성궁의 건국전 모습
건국시조인 한배임,한배웅,한배검님의 영정을 모신 건국전
청학동을 둘러 보고 원래의 청학동인 도인촌으로 발길을 옮겼다. 충전을 위해 스마트폰을 가
져 가지 않아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서 정안님에게 찍으라고 했는데 정안님도 뭐에 정신이 팔
렸는지 찍지 않아 아쉬움이 많다.
어쨋든 도인촌에는 도인은 별로 보이지 않고 가게만 두어 개 보였다. 무작정 위로 올라가다보
니 도인처럼 보이는 어르신이 마루에 앉아 계서서 정안님이 사진을 찍어도 좋겠느냐고 여쭈었
더니 손사레를 치면서 안된다고 하셨다. 조금더 올라가니 천제궁(天帝宮)이란 건물이 보이고
앞에 중창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외국인 남녀가 보이기에 어느나라에서 왔느냐고 했더니 이태
리에서 왔단다. 조금 있으니 아까의 노인(청강 김덕준 어르신)이 도인처럼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지팡이를 짚고 오셨다. 어르신도 내일 모레면 구순이라고 하셨다. 이태리의 남녀도 어르신
의 사진을 찍고 싶어 했지만 거절하셨는데 방으로 들어와서 좋은 얘기 좀 듣고 가라고 하셔서
그들과 같이 들어 갔다.
어르신이 말씀하시는 내용은 대략 격암유록에 나오는 천하대운 소국회(天下大運小國回)를 주
로 얘기하며 유불선 이나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재림예수가 다 같은 존재인데 미륵이니 메시
아니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고 하며 얼핏 본 책자에는 "단군,기자(상나라 유민기자조선
의 왕) 다시 오니"라는 글도 보이고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국가가 된다는 얘기인데 우리도
잘 못 알아 듣는 얘기를 그들에게 통역을 해 줄려니 어려웠지만 대충 할아버지 말씀이 우리나
라가 세계에서 제일 가는 나라가 된다며 오른 쪽 엄지손가락을 세웠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알
아 듣는 눈치였다. 정안님도 번역은 많이 해 봤지만 우리니라 전통학문이나 사상을 통역하는
게 쉽지 않는 듯 했다. 난 짧은 영어로 애기를 하는데 자꾸 중국어가 튀어 나올려고 해서 난감
하기도 했었다. 다시한 번 나의 무식함에 탄식을 금치 못하겠다. 그들의 이름은 아멜리아와 대
천사인 가브리엘라였는데 울산에 있는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는 동료로써 우리나라에 온 것이
7개월 쯤 된다고 했다. 어르신께 부탁을 하여 그들이 그림이나 도표 등를 찍어도 좋다고 했더
니 한복을 입은 예수님등이 그려 진 그림과 남사고 원문 이란 책자의 표지등을 찍고 에밀리아
는 어르신의대나무 뿌리로 만든 지시봉(티칭스틱이라 통역하긴했지만)이 탐이 나서 하나 얻을
수 없겠느냐고 해서 성의로 만원을 드리고 말씀을 드렸더니 내게는 포덕문이란 책자를 주시
고 에밀리아에게 지시봉을 집에가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눈에는 별 것도 아닌 대나무뿌리로 만든 30여 센티미터의 지시봉을 받고 그렇게 좋아
하는 에밀리아를 보면서 문화란 참 다양하고 소중한 것이란 생각을 해 봤다. 그들과 작별하
고 대전터미널을 향하여 가는데 날은 어두워 지기 시작하고 비도 내리기 시작하여 걱정을
했는데 비는 잠시 후에 그치고 함양휴게소에 들러 저녁을 먹고 대전 터미널에 도착하여 인천
행 버스를 보니 10시는 매진이고 11시에나 있단다. 어쩔 수 없이 11시 차를 타고 갈 정안님
을 위해 스마트폰 내비에서 검색을 하니 9천 몇백원의 택시비가 나온다고 하니 야간 할증을
해도 만 몇천원이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 주고 재회를 기약하며 예산을 향해 길을 잡았다.
청강 김덕준 션생의 명함
이번 여행길에 하동이나 산청 등지의 가로수로 많이 심어져 있던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아름
다웠던 "떠나간 그대를 몾잊어," 또는 부귀를 상징한다는 배롱나무꽃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옛
사랑의 그림자들과 오버랩되어 오고 남명 조식선생이 졸업(?)하셨을지도 모르는 "남명초등학
교"도 기억에 남고, 임종은 목사님이 어느 책에서 읽었다는 미개인 마을에 시계를 들고 간 문
명인들의 얘기에 있는 것 처럼 요즈음 핸드폰, 차, 가게나 사무실의 벽, 등 시계는 수 없이 많
은데 정작 내가 생각하고 즐길 수 있는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시간은 없다. 라는 생각에 많은
공감을 얻었고, 스파게티나 파스타를 내어 놓을 거란 기대를 안고 찾아 갔던, 올리베따노 수도
원의 젊은 수도사들의 얼굴들이 솔직히 말하면, 머리를 깎은 수도사가 여러명이어서그런지 깍
두기 깨나 담궈 보았을 듯하거나 밴디트 스타일 인데도 "얼굴이 해 맑지 않느냐?"고 말씀하시
면서 재차 강조를 하시던 원장님의 말씀이 명언이고, 포용과 나눔의 선한 목자의 말씀이 아니
었나 생각 된다. 이제 낮은 자세로 일해야 하는 일상으로 돌아 왔다. 끝으로 다시 한 번 옷깃
을 여미며 물같이님의 천국으로의 여행을 기원하며 수고하신 모든 분들, 특히 애써 주신 대모
님과 여성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사진이 더 많았는데 50매 이내만 업로드가 된다고 해서 삭제를 많이 했슴. 다음에 기회가 되면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시골사람~더 정감있고 좋습니다 다시 아쉬람에 오심을 환영 합니다 .가슴 울리는 심상의 투명한 깊이있는 글이 가끔 생각났었습니다. ^^*
청학동에서 행복한 오후! 두분의 우정이 아름답습니다~
아쉬람의 꽃으로 영원히 피어 있을 들꽃님의 선플에 가슴속에 용기라는 꽃이 활짝 피는군요 감사합니다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가왔습니다. 아쉬람 벗님들과의 1박2일 남도명상여행이 꿈속을 거느는듯....
네 저 또한 반가운 마음 산처럼 크게 느꼈습니다 그 때의 해풍의 부드러움과 산차화의 훈향이 아직도 감성을 적시는 것같군요
아차! 밤 늦게 글을 올리다 보니 우리 카페의 안주인이라 할수 있는 소반님에 대한 언급이 없었군요. 죄송!
ㅎㅎ 전혀 못느꼈는데요.^~^ 전 괘안습니다...
네, 상세하고 감동적인 긴 여행담 잘 읽었습니다. 밤에 보이는 바다의 불빛 항은 저도 여수 방향의 광양만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저에게 '세계적인 석학'이라 하셨는데, 과찬도 유분수이십니다요^^ 하여간 재미있는 여행기 계속 더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동적이라는 말씀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해 보겠습니다 회장님은 분명 세계적인 석학이십니다 미래형이든 현재 진행형이든 말입니다 저같이 불초한 사람을 끌어 안아 주시는 것만으로도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늦은시간 잘 들어가셨는지요? 청학동은 다녀온지라 같이 못했습니다. 오붓한 시간 즐거워보입니다. 1박2일동안 여정에서 시골사람님 얘기를 많이 경청했고 거침없는 해박한 말솜씨에 거듭 놀라왔습니다. 소설도 다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돌아와서 잘 근무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해박은 당치 않고 아마도 세계적인 모델 혜박(박혜림)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거듭 수고하심에 박수와 찬사를 보냅니다
아이고~~살뜰하게도 올려주셨네요.^^
저도 스마트폰에 청학동 사진이 몇장 있는데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정안님의 댓글을 대하니 멋적은 마음 금할 수가 없군요 다음에는 스파게티나 파스타를 내어 놓는 수도원을 섭외하시길ᆢᆢ ᆢ
정감이 넘치는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예비 석학이신 장순욱님이 제 글을 읽어 주신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입니다 함께 숨쉬고 함께 웃었던 시간들 제 기억의 페이지에 저장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청학동 탐방이 白眉입니다. 잘 다녀오셨다니 다행이고 온종일 운전하시어 피로하셨을 텐데...
기운이 장사!! 잘 읽었습니다.
네 다솔사 수도원 다랭이마을 그리고 회장님의 고향마을방문 청학동, 이 마씨 오상 중에 청학동이 마량이라고 생각되어지고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청강선생을 만나 뵙거나 도인촌을 방문하는 행사를 가지는 것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저는 노동을 많이 해 봐서 웬만해서는 지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참석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길에서 길을 가고 이탈한 길에서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온 여정입니다. 이 무대의 주어진 역활에 충실한 님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이 길을 가다가 소나기를 만나 잠시 숲이 우거진 오솔길에 피해 있었는데 이명권이라는 이름의 해가 이 길 위에서 따뜻하고 빛나는 미소로 나를 오라 손짓을 하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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