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주도권 내려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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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산다는 건
우리를 무척이나 흥분시키는 모험이다.
내가 ‘모험’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쉽지만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상하이 코스타에서 ‘하나님의 음성 듣기’라는
강의를 진행하다가 질문을 받았다.
한 청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필요를 느끼며 늘 말씀을 들으려고
기도하지만 끝까지 기다려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결국 자신이 계획하던 방향으로
일을 처리하곤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내가 대답했다.
“혹시 응답이 없을 때 그저 움직이지 않고
데드라인을 넘기면서 기다려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다음에는 그렇게까지 기다려보세요.
그것이 신뢰입니다.”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결코 늦게 응답하지 않으시며 가장 좋은
타이밍을 알고 계심을 신뢰해야 한다.
미래의 계획을 내려놓는다는 건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게 아니다.
하나님과의 오랜 교제 가운데 그분의 성품을
이해하고 더욱 사랑하고 신뢰하면서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다.
물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수영을 배울 때에는
물에 몸을 맡겨야 뜰 수 있음을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에 몸을 맡겨도 안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물속에서 실수하며 물을 먹는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유학 시절, 내가 하나님께 미래를 맡길 수
있었던 건 그 이전부터 그분에 대한 신뢰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 서연이는 내 품에 안겨 있을 때
종종 장난삼아 몸을 뒤로 확 젖힌다.
떨어지지 않게 내가 팔로 자신을 받쳐주리라
확신하기에 그 놀이에 재미를 느낀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안기면 결코 똑같이
행동하지 않는다. 안고 있는 사람과 신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보며 믿음이란 하나님께 전적으로
몸을 맡기는 행위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도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 전적인 순종의 삶을 살았던 게 아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의 근거가 되는
아들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바치기로 결정한
순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과 그 사이에는 오랜
밀고 당김이 있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갖기 1년 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라고
말씀하셨다.
그때까지 아브라함은 비록 하나님이 자손을
번성케 하실 걸 신뢰하면서도 자기와 사라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들을 통해서일 거라는
부분은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종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는 부분적으로만 하나님을
신뢰했다.
이성적으로 신뢰가 가지 않는 부분은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려고 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 가운데 그는 여러 번 실수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도하셨다.
우리는 처음부터 큰 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작은 것을 내려놓는 단계적 훈련을 겪어야
비로소 큰 걸 내려놓을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이 광야에서 아브라함을
훈련시키신 방법이었다.
그는 실수하면서 하나님을 다시 깊이
알아가게 되었고, 결국 이삭을 바치라는
최후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용규, 내려놓음 (리커버 에디션)- 규장
출처: 사진을 좋아하는 부부 - 아굴라와 브리스가 원문보기 글쓴이: 아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