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2일 수요일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버이께 효도해야
많은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면서부터 이기적인 사고가 많아지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이나 어떤 일이나 말에서 배려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배려(配慮)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입니다. 나는 오래 동안 학교에 근무했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에 근무한지 30년이 넘었으니 학생들과 함께 한 세월이 내 인생에서 절반을 차지합니다.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이 무상함을 느끼기도 하고, 부모로 인하여 가정교육이 잘못이라고 많이 꼬집기도 하고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잘되고 세상이 바뀐다고 염려하고 참교육을 위해서 참으로 할 일이 많다고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교육에 기여한 것도 없이 그냥 세월만 흘러갔다는 것을 요즘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내 제자들이 지금 잘 살고 있고, 내 가르침에 따라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강단에서나 교육현장에서 결국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지식의 전달자밖에 되지 못했음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양성하시고, 많은 가르치심을 주시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에 상상할 수 없는 큰 가르침을 주셨고 부르심 받은 제자들인 주교님과 성직자들을 통해서 나에게 옳고 바른 신앙인의 삶을 인도해 주셨음에도 나는 그 가르치심을 따라 살지 못하고 결국은 내 뜻대로 세상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명심보감의 효행편에
‘효어친 자역효지 신기불효 자하효언 (孝於親 子亦孝之 身旣不孝 子何孝焉)’
<내가 어버이께 효도하여야, 내 자식도 또한 나에게 효도한다. 내가 어버이께 효도하지 않는데, 내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하랴?>하는 말입니다. 물론 옛날이나 지금도 아무도 자식에게 효도를 바라는 부모는 없지만 효성스런 자식은 부모들의 기대입니다. 내가 제자들을 잘못 가르쳐서 제자들이 잘못 산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렇게 산 것이 나의 잘못이지 제자들의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부모님에게 효성스럽지 못했는데 자식들에게 효성을 기대하는 것은 나의 과분한 욕심입니다. 신앙생활도 부모의 신앙을 보고 자녀들의 신앙도 성숙합니다. 부모가 기도도 하지 않고 미사참례도 하지 않으면서 아이들만 성당에 다니라고 한다면 깊은 신앙이 싹트지 않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요즘 세상이 급속히 변하면서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는 제자가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서 충고나 가르침을 줄 때 아이들을 꾸짖을 때도 많이 망설여집니다. 내가 과연 옳은 일을 하고 있는지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부모님들이 매를 들고 학교를 찾아와 “제 자식이 버릇이 없으니 선생님께서 사람을 만들어 주십시오. 매를 더 가지고 올 테니 때려서라도 사람을 만들어 주세요.” 하고 부모들의 열성으로 그래도 의기양양 하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에게 충고하려해도 겁이 나는 것은 첫째는 아이들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 하는데 문제가 있고 둘째는 성적에만 매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자들은 흔히 말합니다. 아이들의 성적표에는 잘못한다는 말을 써서는 안 된다고 해서 항상 “이 아이는 무슨 일을 잘합니다. 놀이를 잘합니다.” 그렇게 써서 자긍심을 심어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아이들이 잘못한 것을 야단이라도 칠라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야 무슨 교육이 되겠습니까? 오늘 예수님은 충고와 화해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데 '충언역이'(忠言逆耳)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이지요. 내게 잘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올바르게 충고할 수 있는 것도 큰 용기입니다.
세상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고 세상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겠다는 말은 참으로 어려운 말입니다. 우리의 죄는 세상에서 용서하고 풀어야 합니다. 서로 잘못한 것도 모두 용서하고 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응어리 진 삶은 하루라도 간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연은 세상에서 단단하게 매어져 있어야 합니다. 매고 푸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맺어야 할 것은 맺고 풀어야 할 것은 풀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사귐과 섬김은 아주 강하게 매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단단한 밧줄로 아주 견고하게 매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가득한 응어리는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모아 기도하면 들어주시며 공동체 안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모아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주님은 그 공동체의 기도를 받아주신다고 다시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공동체의 중심은 주님이시고 연결고리 또한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서로 끈끈한 정(情 : 사랑)으로 뭉쳐 있으면 하늘에서도 그 정 안에서 주님도 머무르신다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