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살고싶은 곳 - 정자에서 흐르는 계곡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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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1.07. 16:33조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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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에서 흐르는 계곡을 바라보며
대부분 누정은 배산임수의 위치에 짓는데, 옛사람들은 네 가지 조건을 보았다. 그 첫째가 경관이 좋은 산이나 축대 또는 언덕에 위치하여 산을 등지고 앞을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삼척의 죽서루, 간성의 만경루(萬景樓)와 같이 산 정상이나 절벽에 지은 정자가 대표적이다.
둘째로 냇가나 강가 또는 호수나 바다 가까운 곳에 세웠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과 언덕 아래에는 강이나 시냇물이 흐르므로 산에 세워진 누정은 대개가 물가에 접해 있다. 담양의 송강정, 취가정 등은 광주천(자미탄)변에 세워져 있고 화림동(花林洞) 계곡에 있는 군자정, 동호정(東湖亭), 광풍루(光風樓) 등은 맑게 흐르는 계곡을 바라보며 지은 정자이다. 또한 경복궁의 경회루와 남원의 광한루 그리고 함흥의 칠보정(七寶亭)은 연못 가운데 세운 정자로서 이름이 높다.
경복궁 경회루
경복궁 경회루는 연못 가운데 세운 정자로서 이름이 높다. 이곳에서 기불독경이나 기우제를 행하였으며 여러 경사스러운 회연이 자주 있었다.
한편 관동지방에는 동해바다의 빼어난 풍광을 배경으로 한 이름난 누정들이 줄지어 있는데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평해의 월송정(越松亭), 고성의 청간정(淸澗亭),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등은 모두 바다에 인접한 정자이다. 조선 중종 때의 반정공신 채수(蔡壽)는 “우리나라를 봉래방장(蓬萊方丈)과 같은 산수 좋은 신선의 고장이라 하는데 그중에서 관동이 제일이며 그곳의 수많은 정자들 중 망양정이 그 으뜸이다”라고 꼽았다. 망양정은 그 이름처럼 바다를 바라보기가 가장 좋은 지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왕궁의 후원이나 민간의 정원(원림)에도 많은 누정을 세웠다. 창덕궁의 후원인 비원에는 ‘누’나 ‘당’을 제외하고도 애련정, 능허정, 태극정, 소요정, 관람정, 존덕정, 부용정 등이 열일곱 개에 이르렀다. 또한 창경궁에는 정전인 명정전(明正殿) 서쪽 널찍한 마당 북쪽에 함인정(涵仁亭)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은 『궁궐지(宮闕志)』에 의하면 임금이 과거에 급제한 선비들을 접견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 밖에 종로구 신영동에 있는 세검정(洗劍亭)은 나라의 정자로 역대의 모든 임금이 총융청에 관병(觀兵)을 하기 위해 행차했을 때 쉬어 가던 정자이다.
창경궁 매화
창경궁 옥천교에 만발한 매화. 오늘날 봄이 되면 고궁의 후원에 핀 봄꽃을 감상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안견으로 하여금 자기 꿈속 풍경을 그리도록 하여 「몽유도원도」의 소재를 제공했던 안평대군은 세검정 부근에 무이정사를 지어 놓고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모아 시, 그림, 거문고를 즐겼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도 젊은 시절 세검정을 답사한 뒤 「유세검정기(遊洗劍亭記)」를 남겼다.
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오직 소낙비에 폭포를 볼 때뿐이다. 그러나 막 비가 내릴 때는 사람들이 옷을 적셔가면서까지 말에 안장을 얹고 성문 밖으로 나서기를 내켜하지는 않았으며, 비가 개고 나면 산골 물도 금세 수그러들고 만다. 이 때문에 정자가 저편 푸른 숲 사이에 있는데도 성중(城中)의 사대부 중에는 능히 이 정자의 풍광을 다 맛본 자가 드물다.
또한 경복궁의 후원에는 향원정이 있다. 건천궁 남쪽에 연못을 판 다음, 인공의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의 정자를 세운 것으로 주변의 경관과 맞물려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경복궁 근정전
경복궁이 조선왕조의 으뜸 궁궐인 만큼, 이곳에 세워진 경회루와 향원정은 우리나라 누정 중에서도 빼어난 경치를 자아낸다.
궁실 외에 민간의 원림에도 정자를 지었다. 양산보가 지은 담양의 소쇄원에는 제월당과 광풍각 등이 있고, 윤선도가 조성한 완도 보길도의 부용동(芙蓉洞)에는 세연정, 호광루, 회수당, 정성당 등 열두 개의 정자가 있다. 그 두 곳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간 정원이다.
그 외에 지금까지도 고풍스레 면면히 남아 있는 별당이나 사랑채를 지은 사대부들도 많다. 이내번이 강릉에 지은 선교장의 부속건물 활래정(活來亭)은 마을의 풍경과 전원을 바라보게 지은 정자이다. 그리고 전남 구례군 토지면에는 남한의 3대 길지라는 ‘금환락지형(金環落地形)’에 지은 운조루(雲鳥樓)가 있으며 송시열이 말년을 보낸 대전에는 남간정사(南澗精舍)의 기국정(杞菊亭)이 있다. 또한 경주에는 이언적이 은거했던 독락당(獨樂堂)의 계정(溪亭)이 있다. 독락당과 계정은 선비의 살림집과 정자가 한 공간 속에 자리 잡은 경우로, 집 주위를 흐르는 계곡의 맑은 물과 넓은 암반을 그대로 건축에 끌어들여, 사랑채 담장에 계곡을 내다볼 수 있는 살창을 내었다. 특히 계정은 암반에 기대어 서서 계곡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이다.
안동시 길안면에는 빼어난 자연경관 속에 자리 잡은 만휴정(晩休亭)이 있다. 만휴정은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계곡에 위치하는데, 두 단으로 떨어지는 폭포 위에 조촐하게 지은 3칸 정자로, 그곳에 앉아 있으면 세상사를 잊어버릴 정도이다. 폭포 아래의 깊은 소(沼)는 금강산의 상팔담 중의 하나인 듯 푸르고 아름답다. 이 정자를 지은 김계행(金係行)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인근에는 그의 덕망을 추모하여 지은 묵계서원(黙溪書院)이 있다.
마지막 넷째 조건으로는, 변방 또는 각 지역의 성터에 누정이 많이 건립된 것을 들 수 있다. 오랑캐를 평정하기 위해 함경도 삼수의 경치 좋은 곳에 지었다는 진융루(鎭戎樓)와, 수원 화성의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 대표적이다. 수원성의 동북각루(東北角樓)인 방화수류정은 화홍문에서 성벽을 따라 1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건물로, 기능에 적합한 평면과 다양한 지붕의 조형 때문에 창덕궁의 비원 부용지 남쪽에 세워진 부용정과 함께 정자문화의 백미로 꼽힌다.
부석사 안양루 © 이종원
누정은 대부분 배산임수의 위치에 지었다. 산을 등지고 앞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나, 냇가나 강가 또는 호수나 바다 가까운 곳에 이름난 정자가 많다.
또한 주요 고을마다 문루를 두었는데, 객사의 부속이나 성문의 한 형태로 지은 그 누각들은 높은 지형에 위치해 있다. 고창 무장읍성의 진무루(鎭武樓)와 해미읍성의 진남루(鎭南樓)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지방 도시의 경우, 광범위하게 조성된 객관(客館) 주변에 누정들이 지어졌는데 『동문선』에 의하면 강릉부의 경포대, 상주의 풍영정, 함평군의 함벽루, 울진의 위운정, 청안군의 회고정, 전주의 관풍루, 광주의 청풍정, 남양부의 망해루 등이 그것들이다.
왕궁의 후원이나 민간의 정원(원림)에도 많은 누정을 세웠다. 창덕궁의 후원인 비원에는 ‘누’나 ‘당’을 제외하고도 애련정, 능허정, 태극정, 소요정 등 열일곱 개에 이르렀다. 또한 창경궁에는 정전인 명정전 서쪽 널찍한 마당 북쪽에 함인정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은 『궁궐지』에 의하면 임금이 과거에 급제한 선비들을 접견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 밖에 세검정은 역대의 모든 임금이 총융청에 관병을 하기 위해 행차했을 때 쉬어 가던 정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자에서 흐르는 계곡을 바라보며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1 : 살고 싶은 곳, 2012. 10. 5., 신정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