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slim life, 용서란
“털어버리세요.”
지난 월요일인 2020년 12월 14일 오후 6시쯤 해서, 나와 30년 인연인 임창진 변호사님의 단골집인 흑석동 ‘물바우 회집’에서 역시 같은 세월의 인연인 이형복 사장과 어울려 저녁을 하던 중에, 임 변호사님 하시는 말씀이 그랬다.
3년 전으로 거슬러,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에서 나를 도와 일을 하던 총각 직원 하나가, 퇴직을 한 이후의 어느 날 심야의 시간에, 사무실로 몰래 숨어들어 인터넷 송금으로 돈을 빼내 간 사건에 대해, 형사 민사로 그 책임을 물을까 말까 하는 내 질문에 대한 답이 그랬다.
의외의 답이었다.
그 직원의 행위는 명백한 절도이며, 범행 중에 들켰을 경우 자칫 강도로 돌변할 수도 있는 위험한 범죄행위인데다가, 그 이전에 여러 차례 사무실 안에서 돈이 없어졌던 사건의 범인일 수도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직원이 우리 사무실에 근무하면서 인연이 된 주위 사람들에게 속임수로 적지 않은 금전적 피해를 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었는데, 그 사실까지 내 그 자리에서 다 털어놨었다.
그런대도 임 변호사님은 그렇게 내게 권한 것이다.
그 이유를 물어볼까 했다.
그러나 결국 안 물어봤다.
내 물음에 대한 임 변호사님의 답이 빤할 것 같아서였다.
내 짐작한 답은 대충 이랬다.
‘부인 착하시고, 두 아들 다 장가보냈고, 며느리 둘 모두 예쁘고 건강하고 명문대학교 출신이고, 그래서 손녀에 손자까지 얻고, 나이 일흔 넘도록 술 잘 마실 정도로 건강하고, 이제 본인 의지로 돈 버는 일까지 탁 털어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가요. 어찌 보면 그게 모두 세상에 진 빚입니다. 말하자면 빚져서 축복 받았다는 겁니다. 그런 빚을 털어낼 때는, 진 빚만 털어낼 것이 아니라, 받을 빚까지 털어내는 게 공평합니다. 물론 그 직원의 행위는 나쁩니다. 그러나 한참을 더 살아야 할 젊은이잖습니까. 더군다나 아직 장가도 못 간 총각이잖습니까. 그 젊은이의 인생 진로를 형벌로서 가로 막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서 축복받은 삶을 산 사람으로서의 처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조언하는 겁니다.’
현실에서 임 변호사님의 답이 만약 그러하다면, 내 응대가 궁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으니, 내 답은 이 한마디뿐이었다.
“알았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내 그리 답하면서, 문득 떠올린 성경 구절이 있었다.
그 구절, 곧 이랬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지난 주 화요일인 같은 달 8일 오전 11시 30분에, 우리 사무소에서 폐업예배들 드리게 되었는데, 이날 예배를 대한예수교장로회 우리 서울시민교회 담임이신 권호헌 목사님께서 주관해주셨다.
권 목사님은 이날 예배에서, 성경 구약 잠언 16장 1절로부터 9절까지의 구절을 인용하셔서, 법무사 업을 접고 새로이 계획해서 나아가는 나의 길을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실 것이라면서 축복기도까지 해주셨다.
그 성경 구절의 7절이 바로 그 구절이었다.
그 구절과 함께 생각은 또 이어졌다.
임 변호사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그 성경 구절에 맞는 것인가를 생각한 것이다.
나 스스로 묻고 답했다.
그 답, 곧 이랬다.
‘그렇다.’
내 양심의 답이었다.
내 그래서 그동안 몇 차례 전화 통화를 했던 그 직원의 아버님에게 문자 메시지 한 통 띄워 보냈다.
곧 이랬다.
‘문득 한 생각이 일었습니다. 아드님 일을 잊겠습니다. 단, 나중에 돈 벌어 갚으라고 해주세요.’
같은 달 16일 수요일인 바로 어제 오후 3시 3분의 일이었다.
내가 ‘slim life’라는 기치로, 재산과 일과 인연에 있어 내 삶의 규모를 얄팍하게 하기 시작한 것도 어언 2년 6개월이다.
그 초기인 2018년 6월 27일에는, 온라인에서의 내 글쓰기 공간인 Daum카페 ‘아침이슬 그리고 햇비’ 사랑방에, ‘My Life-slim life’라는 큰 제목을 붙여서 쓴 작은 글 한 편 한 편을 게시함으로써, 그때그때 내 ‘slim life’의 실행을 주위 두루 확인시켜주기도 했었다.
그렇게 쓴 글이 그동안 102편이다.
이제 며칠 뒤인 같은 달 22일 화요일이면, 11년 5개월 22일을 ‘작은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영위해온 법무사의 간판을 내린다.
‘slim life’의 완성이다.
그 마지막에 와서, 내 그동안 추구해왔던 용서의 의미를 다시 새긴다.
곧 이렇다.
‘용서란, 묻고 덮고 잊는 것이다.’
첫댓글 참 대단한 용서하셨네!
그때 그 이야기 들으면서 나는 형사처벌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참' 용서란 무엇인가?
아무나 이렇게 용서할 수 있는가?
나였면 용서 용서가 되었을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좀 멀리서 보면 코메디"라는 것이 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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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용서하신 데에 큰 박수를 보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