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섶 이야기 / 엄원태 앞섶을 그럴듯하게 가다듬는 일이, 뒤태 단정한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세상에는 있다. 뒷모습 따윈 그들 사전에는 없다. 진실이란 그들에겐 위선과 일심동체이나 불이(不二)인 까닭이다. 매무새나 채비란 전진하는 그들로선 오로지 앞쪽에만 존재하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신념으로 증폭된 위선. 그건 그들의 단호한 앞가림에서 더 강화되며 진화한다. 예컨대 그 방향은 불가역의 영역이다. 내 파자마는 단추 안쪽 시접 단이 늘 접혀 형편없이 오그라들어 있다. 앞섶인데도 단추 안에 접혀 가려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반듯하게 펴려는 다림질 같은 수고를 하지는 않는다. 앞섶일지라도, 굳이 단추를 일일이 풀어헤치지만 않는다면, 그 형편없는 오그라듦은 끝내 가려져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간 가려져 있으면 그건 자연스레 잊힐 것이라는 걸, 앞섶의 어색한 안색은 짐짓 기대하면서 세상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ㅡ 계간 《가히》 2024년 여름호 -------------------------
* 엄원태 시인 1955년 대구 출생, 서울대 원예학과 졸업, 동 대학원 환경조경학과 졸업(농학박사) 시집 『침엽수림에서』 『소읍에 대한 보고』 『물방울 무덤』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등 1991년 대구시인협회상, 2007년 김달진문학상, 2013년 발견문학상, 2013년 백석문학상 등 수상 대구 가톨릭대학교 교수 정년 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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