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7일 묵상 본문 : 사무엘하 11장 1절 - 13절 - 땅의 것을 누리다 죽음으로 향하지 않고 하늘의 교제를 통한 기쁨으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4월의 한 달도 이제 3일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지도 벌써 4달이 지나는 것을 보며 빠른 시간의 흐름을 느낍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귓가에 맴돌지만 실제 삶은 빠르게 흐르는 시간뿐임을 고백합니다.
주와 함께 걸어가는 삶이 세월을 아끼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오늘도 주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길 소망하며 주의 인도하심을 간구합니다.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정결케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을 얻게 하옵소서.
주의 음성을 듣고 생명의 은혜를 누리며 주어진 믿음의 길을 걸아가게 하옵소서.
허무한 땅의 것에서 눈을 들어 주와 교제하는 기쁨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여 주시고 주 안에 거하여 참 된 것을 누리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인도하시고 세워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 그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2 저녁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6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7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8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9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10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1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12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13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본문 해설
암몬과의 전쟁이 잠시 휴전되었다가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전쟁이 다시 진행된다.
다윗은 요압과 부하들과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 암몬 자손을 쳐서 멸했으며 수도 랍바를 에워싸는 상황까지 진행되어 전쟁의 승리를 앞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이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었고 전쟁의 보고만 듣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윗이 저녁때에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았고 그 여인이 심히 아름다워 보였다.
다윗이 저녁에 침상에서 일어난 것은 해가 뜨거운 낮에 오침했다가 늦게 일어났기 때문으로 전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태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했으며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임을 알게 된다.
다윗은 그 여인을 데려오게 했으며 생리가 끝나고 종교적 제의로 부정함을 씻었음을 알고 더불어 동침함으로써 간음을 하게 되었고 밧세바는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밧세바 이 일로 임신하게 되었고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리게 된다.
이에 다윗은 자신으로 인한 밧세바의 임신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게 된다.
먼저 다윗은 요압에게 헷 사람 우리아를 소환했고 요압은 우리아를 다윗에게 보낸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에게 온 우리아에게 요압과 군대의 상황과 전쟁 상황에 대해 물은 후 우리아가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도록 명령하고 왕궁에서 나갈 때 왕의 음식물을 제공해 준다.
이는 우리아가 밧세바와 동침하게 만들어서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고 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다윗의 부하들과 함께 잠을 자게 된다.
이에 다윗은 자신이 호의를 베풀었음에도 우리아가 집으로 가지 않은 이유를 묻게 된다.
이에 우리아는 언약궤와 이스라엘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요압과 군사들이 밖에 진을 치고 있는 전쟁 상황에서 자신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아내와 같이 잠을 잘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은 이런 일을 하지 않기로 왕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이야기한다.
이에 다윗은 우리아에게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머물게 하고 다음날에는 전장으로 보낼 것을 약속함으로써 우리아는 그날 예루살렘에서 머물게 된다.
다윗은 우리아를 불러 함께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여 한 번 더 우리야가 집으로 가도록 한다.
그러나 우리아는 궁을 나간 후 집으로 가지 않고 다윗의 부하들과 함께 침상에 누움으로써 2번째 다윗의 계략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나의 묵상
다윗은 가는 곳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마음에 교만함이 슬며시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요압과 그의 군사들과 자신의 군사들이 함께 암몬과 전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궁에서 오침을 하고 저녁때가 되어서야 일어나는 게으름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이미 전쟁의 승리를 예감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출정을 안 해도 부하들이 승전보를 들고 올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며 그만큼 다윗의 마음이 교만함으로 가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육신적인 편안함과 삶의 부요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삶보다 교만하여 죄악을 행하고 하나님의 심판받을 자로 살게 된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를 조심하라고(고전10:12) 권면하면서 성도가 영적으로 늘 자신을 바르게 세우기 위한 수고를 멈추지 말아야 함을 제시한다.
그러나 다윗의 교만은 멈추지 않았으며 그 교만은 죄악을 행하는 곳으로 향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기회를 사단은 놓치지 않고 그가 왕궁의 옥상에서 거닐다가 목욕하고 있는 밧세바를 발견하게 만들고 그 마음에 그 여인을 불러 직접 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게 만든다.
그리고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다윗은 자신이 그 여인을 부를 수 있는 권력을 사용하여 그를 불렀고 자신의 지위와 힘으로 밧세바를 간음하게 된다.
자신의 교만함으로 인해 죄악을 행한 다윗은 간음의 죄에서 머물지 않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이는 일까지 진행하게 함으로써 그 마지막이 어떤 결말을 가져오는지를 보게 만든다.
사람은 육신의 눈으로 바라보며 욕심으로 행하게 될 때 그 마지막은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것임을 제시하면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선포한다.(약1:14,15)
사람이 땅의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모습은 지극히 본성적인 모습이요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지만 그 종착역은 갈등과 분열이며 죽음으로 귀결된다.
그 이유는 인생의 존재는 흙이며 흙으로 돌아가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는 것 같으나 생명 없는 존재이며 살아있는 것 같으나 죽음으로 가는 존재인 것이다.
다윗이 육신의 눈으로 밧세바를 바라본 결과는 죄악을 행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도는 땅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 하며 분열과 죽음의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과 소망을 바라보는 자가 될 때 비로써 분열과 죽음을 이기는 자가 된다.
바울은 이런 모습이 성도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복임을 알았기에 에베소 성도들이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간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7~19)
또한 골로새 성도들에게는 위의 것을 찾으라고 권면하면서 그 이유를 선명하게 제시한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3:1~5)
성도가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얻고 누리려는 태도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하늘의 것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연합될 때 얻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오직 복음을 통해 죄를 씻고 주와 교제할 때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성도가 복음으로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주와 교제함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성도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 될 때 하늘의 기쁨으로 사는 자가 된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힘쓸 때 세상의 것으로 만족하지 않게 되며 그때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정욕과 탐심을 버리는 힘을 얻게 된다.
다윗이 밧세바를 보고 음욕을 품으며 그를 범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그가 육신의 편안함으로 인해 하늘에 대한 소망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땅에서 얻고자 하는 것에 만족을 누리면 누릴수록 사람은 하늘의 소망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지혜의 왕 솔로몬은 잠언을 통해 자신이 구하는 2가지를 고백한다.
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30:7~9)
솔로몬의 간구는 인생의 연약함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인생이 추구하는 것이 땅에 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참 지혜요 능력이며 세상을 이기는 힘이 됨을 보여준다.
세상을 누리며 살아갈수록 성도는 세상을 구하고 세상의 가치로 사는 자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누리며 살아갈수록 성도는 하나님을 구하며 생명의 가치로 사는 자가 된다.
여전히 나의 삶에 세상을 구하고 세상의 가치로 살아가려는 모습이 너무나 많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며 살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다시 한 번 고백하게 하신다.
그 고백이 나의 삶과 교회 지체들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하나님의 생명을 얻고 누리는 삶으로 세워지는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다윗의 범죄는 그가 땅의 것으로 만족을 누리며 살아갔기 때문임을 발견합니다.
그의 마음에 하늘의 소망이 사라지고 땅의 영광과 욕심으로 가득했음을 봅니다.
저의 마음도 땅의 영광과 욕심으로 채우면 그 결과는 죄악과 죽임임을 고백합니다.
죽음의 삶으로 나아가지 않고 생명의 삶으로 나아가는 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음을 주관하여 주시고 하늘의 소망으로 사는 자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삶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기를 힘쓰게 하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옵소서.
세상은 갈수록 자기 만족을 위해 살도록 만들고 땅의 것을 누리며 즐기도록 유혹합니다.
세상의 유혹에서 이길 힘은 오직 주의 기쁨과 소망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에 있음을 고백하오니 날마다 생명의 교제를 통해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그런 삶으로 이끄시고 인도하신 주님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