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하린 방금 당신이 찢고 나간 장면 속에서 나는 엉망진창이에요 심각은 문과 문 사이의 관계 불륜은 문과 문 사이의 연계 미닫이를 좋아하나요 여닫이를 사랑하나요 어느 쪽 앞에 서야 더 비참해지지 않나요 그래요 각자의 상상대로 여기 아니면 저기 미리 엔딩을 정해놓으면 재미없어요 여분의 궁금증이 남아 있게 내버려 둬요 똑, 똑, 똑, 쇄골을 노크하면 쿵! 쿵! 쿵! 심장이 대답할지 모르니 헤어질 때마다 제스처가 필요해요 괜찮다는 듯 괜찮을 거라는 듯 돌아서는 순간 우린 각자 주인공이잖아요 헤어진 다음 애착은 금물이고 무표정 위에 무표정을 덧씌우는 일이 최선일 뿐인데 왜 난 열린 곳에서 갇힌 기분이 드는 걸까요 갇힌 곳에서 한 번 더 갇히는 고독이 되는 걸까요 ㅡ 계간 《시와소금》 2024년 여름호 -------------------------
* 하린 시인 1971년 전남 영광 출생.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 1998년 《광주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 2008년 《시인세계》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1초 동안의 긴 고백』 『기분의 탄생』. 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 시 창작 안내서 『시클』, 시 창작 제안서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등. 한국해양문학상 대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등. 현재 단국대 문예창작과 초빙교수
*********************************************************************************
사람살이는 늘 스스로가 주인공이고 싶은데 상황은 그렇게 놓아두질 않습니다 수시로 등장하는 인물이 마음의 문을 들락날락하는가 하면 문 밖을 스쳐 지나기도 합니다 출입구가 정해진 게 아니라서 같은 공간에 꽤 오랫동안 머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가끔 문이 아닌 곳을 찢고 나가는 경우도 있어서 갑작스레 이별을 맞이합니다 헤어질 때의 제스쳐는 사람마다 다릅니다만 결국 받아들이며 문을 정비하지요 여닫이든 미닫이든 회전문이든 애착하지 않고 무표정으로 목숨껏 살아가야 합니다 열린 곳에서 갇힌 듯 갇힌 곳에서 더 갇혀버린 듯 고독을 짓씹으며 살아야 합니다.
- 최상호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