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두렁 예찬
민진홍
어제 우리 벼 베기를 끝냈다
한가한 오늘 습관처럼 들로 나간다
동네 형님이 새참을 시켰는지
막걸리와 계란 후라이를 내놓고 있다
막걸리 몇 잔이
다방 언니의 어설픈 웃음소리에 섞여
아련한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종로 거리에서
막걸리 술잔을 부딪치던 그 시절
공짜로 주는 양배추 사라다만 시켜놓고
주전자 찌그러질 때까지 마시며
하얀 고무신을
시대에 반항이라도 하듯 신고 다녔다
티파니에서 커피를 마시며
미팅으로 만난 학생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형형하며 머슴아 같이 쫓아다니던
그녀를 사랑했던 그 시절
한 모금 내뱉은 립스틱 묻은 담배 연기에
잘린 벼 포기만 덩그러니
[작가소개]
김포문인협회 부회장(수석부회장 역임), 김포예총 감사, 김포예총 예술인의 밤
김포시장상 수상(2014), 월간 『시사문단』시 등단, <빈여백> 동인, <통진문학>
회원, <풍경문학> 회원, <달詩>동인, 달詩시선 3집『꽃을 매장하다』(공저) 외 다수
[시향]
어느덧 수확의 계절입니다 빨강 체크무늬 남방에 멜빵청바지를 입었을 농부의 환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시인은 추수를 다 마쳤지만 습관처럼 논배미로 나가봅니다 동네 형님이 새참으로 내어 놓는 계란 프라이 안주와 막걸리 몇 잔에, 배달 온 다방 언니의 어설픈 웃음소리에, 옛 추억이 소환됩니다 시간이 흐르고 삼라만상이 다 변해도 우리들 맘 속 사랑만은 절대 늙지 않지요 더구나 추억은 참으로 불러내기 편한 술친구 같습니다 논두렁이든 수로 옆 정자 아래든, 아무 때나 격식 없이 불러내도 단박에 짠~ 나타나니까요 커피 한 잔 사지 않아도 눈 감으면 찾아오지요 공짜 안주에 양은 주전자가 찌그러질 때까지 마셔댔던, 종로의 목로주점과 티파니 커피와 사랑했던 그녀, 이 계절이면 누구에게나 그리워지는 장면일 것 같습니다
글 : 박정인(시인)
첫댓글 오늘도 논 한 바퀴 돌다 보니
논두렁에 때늦게 핀 제비꽃이 술 한잔 따라주며 씨익 웃는 다방언니처럼 반갑게 맞이하고 있네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불어도 논으로 나가는 농부의 이유가 다 있습니다. 어설픈 시를 좋게 평하시고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모자를 쓰고 트랙터를 모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소소한 경작의 즐거움이나 여려움을 시집으로 내신다면 얼마나 보람있을까요? 기대하며 기다려봐도 될까요? 막걸리와 계란 프라이도 배달되는 풍경이 너무 정겹습니다 진솔한 시 감사합니다 민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