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통신 제국 월드컴 (MCI 로 개명) 의 회장 겸 CEO 였던 버나드 에버스를 몰락시킨 것은 검찰이 아니라 그의 심복 이었다.검찰은 버나드의 회계부정을 2년 가까이 파헤쳤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잡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버나드가 가장 아꼈던 스코트 설리반 전 CFO (최고재무책임자) 의 자백을 받아냄으로써 버나드를 기소할 수 있었다.
통신 제국의황제가 어떻게 회계 부정을 꾸미고 왜 가장 아꼈던 심복으로부터 등에 칼을 맞아 고꾸라지는 가를 보면 미국 재계의 한 단면이 드러난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회계 부정 사건
가입자만 2천만명, 직원만 해도 무려 5만4천명에 달했던 월드컴은 IT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던 2000년 9월 실적이 나빠지자 투자자들을 속이기로 공모한다. 공모의 주역이 바로 당시회장이었던 버나드와 CFO 였던 설리반이었다. 이들은 우선 네트워크 사용댓가로 지불하는 라인 코스트라는 비용을 발생한 당해 비용으로 잡지 않고 이연시키는 수법을 동원한다. 재무구조를 위장하기 위한 기교 였다.
버나드는 비용을 줄이는데 그치지 않고 수익도 인위적으로 부풀렸다.이들은 ‘Close-the-Gap’이라는 절차를 활용, 2001년 3분기 수익증가율을 실제 6%의 배인 12%로 부풀려 놓았다. 이런 수법들을 통해 미국 회계 스캔들 사상 규모가 가장 큰 1백10억달러의 회계부정을 저지른 것이다.
-나는 결백하다
사상 최대의 회계부정을 파헤치기 위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것은 2002년 6월 25일 . 버나드는 그 때 부터 줄 곧 혐의를 부정해왔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잡아뗐다.회계 장부 덫칠이 워낙 정교한데다 회계 처리라는게 보는 관점에서 따라 해석이 달라질 소지가 있는 만큼 검찰은 결정적인 단서를 잡지 못하고 쩔쩔 맸다.
검찰이 궁지에 몰린 것은 버나드의 위장 수법이 워낙 치말했기 때문이다. 버나드는 회계 혐의에 자신이 결부돼 있다는 것을 드러낼 만한 어떤 서류도 남기지 않았다. 버나드는 E 메일 대화가 폭로되면서 거대 부정이 들통나는 것을 미리 알아 채기라도 한듯 E 메일을 이용하지 않았다.웬만한 지시는 비서를 시켰다. 한 발 더 나아가 회사 정책에 관한 대화 조차도 서류로 남기지 못하도록 단도리를 쳤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CEO의 치밀함
철저한 위장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성공 신화의 주역 답게 주도 면밀했다. 그는 고등학교 농구팀 코치였었다.그러다가 미시시피주의 몇 몇 모텔에 장거리 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통신업종에 뛰어들었다. 당시 서비스 규모는 보잘 것 없었지만 관련 기업 인수를 거듭하는 수완을 발휘해 오늘날의 통신 제국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그는 회사 돈을 쌈지돈 처럼 썼다. 버나드는 자신의 회사에서 무려 4억달러 (4천8백억원) 를 빌렸다. 그 돈까지 포함해 개인적으로 끌어다 쓴 빚이 13억달러를 넘는다. 회계부정이 적발되기 직전 그같은 파렴치한 행위가 드러나 CEO에서 柰?났다.
버나드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법정에서 사실로 확인되면 그는 양의 탈을 쓴 이리라는 비난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회사에서 이사회를 주재할때도 기도부터 하고 시작했을 정도다. CEO에서 柰屛?후에도 교회에서 애들을 가르쳐 왔다.
-심복의 칼에 맞다
버나드가 브루투스로 변한 설리반을 만난 것은 통신 제국의 꿈을 키워가던 1992년 이었다. 당시 설리반은 플로리다주의 작은 전화에서 일하고 있었다.버나드가 그 회사를 인수하면서 설리반의 재무능력에 주목, 오른 팔로 삼은 것이다. 설리반은 월드컴의 눈부신 성장과 함께 90년대 가장 주목받은 CFO로서 우뚝 섰다.
버나드와 함께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던 설리반은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후 18개월 동안 쓴 변호사 비용만 해도 무려 1천4백만달러 (1백68억원) 에 달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 검찰의 칼날을 쉽게 벗어나기 어려웠다.혐의대로 기소될 경우 1백65년 형을 살아야 할 판이었다.
42살의 젊은 설리반의 눈에 딸이 아른거렸다. 갓난쟁이 딸이 재롱떠는 것을 제대로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환이 몰려왔다.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아내 생각도 머리를 무겁게 만들었다. 당뇨병이 심해진 아내는 가끔 혼수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가족 생각이 검찰의 추궁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변호사의 자문도 받지 않고 검찰에 속죄하기로 결정했다.그 속죄의 고리가 바로 버나드 였다.
자신과 버나드가 공모해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고 시인하면 자신의 형량은 25년 정도로 줄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감옥 생활을 줄이기 위해 자신과 버나드가 2000년 9월 회계 장부를 어떻게 조작했는지를 불었고 그의 자백이 무죄를 주장하던 버나드를 붙잡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 것이다.
-공모자가 귀뜸하면 감형
미국에서 대형 사건의 수사 과정을 지켜보면 공범의 비행을 고자질한 범인이 죄를 감혐받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벌금도 대폭 준다. 검찰 입장에서 본다면 범인을 다 잡는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형평성의 잣대로 본다면 썩 이해하기 어려운 법 집행이다. 설리반도 그런 절차를 활용해 버나드를 물고 들어가면서 자신의 죄를 감형받게 된 것이다.
의료회사인 헬스사우스의 회계부정을 수사하던 검찰이 라차드 스크루시 회장을 기소할 수 있었던 것도 헬스사우스의 CFO가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왜 CFO인가
많은 회계 부정 사건의 한 복판에 반드시 CFO가 연루돼 있다. 그들은 CEO와 결탁해 회계 부정을 주도하는가 하면 범행을 부인하는 CEO의 죄상을 폭로하는 주역이 되기도 한다. 왜 CFO가 사건의 한 복판에 서게 되는가.
그런 질문에 전문가들은 세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 기업의 재무를 책임지고 있는 경영진으로서 늘 실적 향상의 중압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듀크 대학의 존 그램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4백명의 CFO 중 80%가 좀 더 많은 수익을 내도록 강요당하면서 기업의 실제 경제적 가치를 위장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재무책임자이지만 실제로 회계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CFO로서 회계사보다는 경영능력이 있는 경영학석사(MBA) 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MBA도 회계 공부를 하지만 회계사보다는 회계 전문성이 떨어진다. 그런 비 전문성 때문에 감히 회계 부정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시카고 경영대학원의 로만 웨일 회계학 교수는 “MBA들이 금융공학을 공부하지만 그것은 회계가 아니다”며 “회계를 모르는 CFO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회계부정을 저지른 아델피아의 CFO 티모시 리가스나 엔론의 CFO 앤드류 파스토우도 회계사가 아닌 MBA 였다.
세번째는 CEO들이 회사내 중요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면서 CFO 하고만 비밀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이다.CEO가 사기 행각이 적발되지 않도록 기업내 정보 교류를 차단하지만 CFO에게는 힌트를 줄 수 밖에 없으며 그로인해 기업 스캔들이 발생하면 으레 CFO가 연루된다는 것이다.
월드컴의 전 CEO 버나드는 3월3일 뉴욕에서 연방수사국(FBI) 요원에 의해 팔목에 수갑이 채인채 끌려갔다.그는 부인과 공동 소유한 집 까지 잡히고 1천만 달러의 보석금을 낸 후 일단 풀려났지만 감옥행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그가 아무리 범행을 부인해도 범행을 공모했던 심복의 자백이 명백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