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李東鎭(1924 ~ 1946)】「1942년 한국광복군 제3지대, 지하공작 등 항일활동 전개 」
1924년 2월 15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단촌면(丹村面) 병방동(兵房洞)에서 태어났다.
1942년 징모 제6분처에 입대하여 교육 수료 이후 적후방에서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40년 중국 충칭(重慶)에서 창설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은 총사령부와 지대, 징모처 등의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42년에 들어서 새롭게 각 지대를 통합 또는 조정하기도 하였다. 한편 임시정부 군무부는 광복군의 병력 모집을 위해 각 지에 모병기구인 징모분처를 5개 설치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일본군 점령 지역과 가까운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한 징모 제6분처였다. 1942년 8월 장조민(張朝民)과 같이 산동유격대(山東遊擊隊)에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다 푸양 린취안(臨泉)에서 징모 제6분처에 입대하였다. 1944년 한국광복군훈련반(韓國光復軍訓練班, 한광반)을 수료하였다. 한광반은 징모 제6분처 주임 김학규(金學奎)가 새로 입대한 징모 제6분처 대원의 교육훈련을 위해 중국군 제10전구 사령관 탕언보(湯恩伯)와 교섭 후 린취안(臨泉)의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제10분교 내에 설치하였다.
징모 제6분처는 김학규 주임 체제 하에 쉬저우(徐州)·구이더(歸德)·난징(南京)·칭다오(靑島) 등에 공작원을 파견해 초모활동과 대일공작을 전개하였다. 활발한 초모활동의 결과 징모 제6분처의 인원이 크게 증가하였고, 광복군 총사령부는 징모 제6분처를 제3지대로 개편하고자 하였다. 이에 김학규가 초대 지대장에 임명되었으며, 1945년 3월 광복군 제3지대로 편제되고 그 해 6월에 지대 성립식을 가졌다.
광복군 제3지대는 미국 전략첩보기구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와도 합작하여 훈련을 실시하는 등 초모·선전·첩보·훈련 등의 영역에서 광복 때까지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부터 적 후방에서 지하공작 활동하던 도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