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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아톰이 [alswjdzi@hanmail.net]
* 제목 : ◎꼬맹이의 달콤한 유혹
* 편수 : 48편
* 팬카페 : 無
* 연재게시판 : [쑥쑥연재☆]
* 출처 : 인터넷소설넷쮸 [http://cafe.daum.net/spem]
※불펌(스크랩), 도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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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의 달콤한 유혹
11. #두근두근.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꽃미남 그룹, 크로커스와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한결씨, 한규씨 안녕하세
요!"
"네, 안녕하세요."
"네."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는 한규와, 짧고 간결하게 대답하는 한결. 한결이 무뚝뚝하다는 사실은 연예계 쪽에
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리포터는 자연스레 질문으로 넘어갔다.
"와, 요새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계신데, 소감이 어떠세요?"
"그냥 팬 여러분들께 감사드릴 뿐이죠, 뭐."
"방송멘트 말구요~"
"하하, 더 이상은 노코멘트 해 두겠습니다."
한규의 대답에 큰 소리로 웃는 카메라 감독과 리포터. 한규와 리포터는 한결은 신경도 안 쓴다는 듯, 한참
동안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한결은 처음엔 기분이 상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그게 더 편하다는 걸
알고는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 한결을 발견한 리포터가 뒤늦게 질문을 던졌다.
"한결씨! 한결씨는 요새 영화도 찍으셨던데, 어떠셨나요?"
"…음, 그냥 처음에 섭외 들어와서 좀 놀랐었어요. 하지만, 저를 믿고 맡겨주신 만큼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군요! 한결씨가 찍은 영화 아직 개봉하지도 않았는데, 호응이 굉장해요!"
"하하, 그냥… 감사드릴 뿐이죠."
"개봉은 언제 하나요?"
"12월 30일날 개봉해요. 많이 보러 와주세요~"
예상보다 성의 있는 한결의 답변에 신이 나서 질문을 마구 던지는 리포터. 한규는 그런 한결을 이상하게 쳐
다봤다.
저 자식이 왠일이래….
한결을 보며 픽, 웃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한규였다.
※ temptations ※
"가희야."
"응?"
"우리 이번 주말에 데이트할까?"
"…뭐?"
"데이트!"
주먹쥔 두 손을 양 볼에 갖다대며 앙증맞은 표정을 지어내는 은설. 가희는 그런 은설을 멍하니 쳐다보았
다. 가희의 옆에 있던 향아는 픽, 웃으며 가희의 어깨를 손으로 톡톡, 치고는 먼저 강의실을 나갔다. 은설
과 가희만 남겨진 강의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둘을 밝게 비추었다.
"데이트라니?"
"그냥. 영화 보고, 같이 놀고, 추억 만들고!"
"에이, 그런건 사귀는 사람끼리 하는거지."
"에이, 그런게 어딨어! 나 그날 계획표 벌써 다 짜 놨는데?"
은설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짓는 가희.
언제 그런 걸 다 해 놨대….
가희는 결국 웃으며,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했다. 가희의 대답에 신이 난 은설은 주말에 보자며 폴짝폴
짝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 temptations ※
"언니!"
"어, 왜?"
"언니 나 오늘 코디 좀 해 줘!"
"코…디?"
"응! 나 오늘 중요한 약속 있어서 이쁘게 하고 가야돼!"
가은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가은을 끌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가희. 가은은 결국 가희를 도와주기로 하
고, 가희의 옷장을 열어 옷을 살펴봤다. 한참동안이나 옷을 살펴보던 가은은 허탈한 표정으로 가희를 올
려다보며 말했다.
"너 옷이 이게 다야?"
"응."
"나참… 이런 옷들로 어떻게 살았냐?"
"왜!"
"니 옷 중에서 이쁜 옷이라곤, 그 얇은 남방하고 여름용 청치마밖에 없는데…. 그걸 입자니 너무 춥고…."
"…어떡하지?"
"그냥 언니 옷 빌려줄게. 니 옷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가은은 먼저 자신의 방으로 향했고, 가희 역시 가은의 뒤를 따라 가은의 방으로 갔다. 가은이 옷장을 열자,
빽빽히 들어찬 여러 종류의 옷들이 가희의 눈 앞에 보였다. 가희는 가은이 옷이 많은 건 알았지만, 이렇게 많
은 줄은 몰랐기 때문에, 놀란 표정으로 옷을 뒤적거리는 가은을 쳐다보았다. 가희의 시선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동안 옷을 고르던 가은은, 한 벌의 옷을 꺼내들어 가희의 앞에 보여줬다. 가은이 꺼낸 옷을 보던 가
희의 입이 떡 벌어졌다. 털 달린 모자가 달려있는 검은색의 얇은 코트와, 검은색 겨울용 미니스커트, 마지
막으로 새하얀 스웨터까지.
"왜? 이상해?"
"아니! 짱 이뻐! 근데…."
"근데?"
"나한테 어울릴까?"
"어울려, 걱정마! 얼른 입고 나와봐. 언니가 부츠하고 가방도 빌려줄테니까."
가은의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자신의 방으로 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가은의 방으로 온 가희. 가은
은 생각보다 더욱 잘 어울리는 가희의 모습에 밝게 미소짓고는, 약간 큰 사이즈의 갈색 가방을 가희에게 내
밀었다. 가희는 헤헤, 웃고는 가방을 받아들었다. 가희는 기분이 좋은듯 한 바퀴 빙 돌았고, 가은은 박수
를 보내줬다.
"와, 대따 잘 어울리는데."
"히히, 땡큐!"
"근데 도대체 어디 가는데 그래?"
"어디 갈 것 같애?"
"내가 어떻게 알아."
"남자 만나러 간다~"
"남자?!"
가희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가은. 가희는 그런 가은의 물음을 싸그리 무시한 채, 가은의
방에서 나와 현관으로 향했다. 가희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나오는 가은.
"왜 쫓아와."
"남자 누구?"
"늦었어. 갔다와서 말해줄게."
"쓰읍! 얼른 말해!"
"갔다 와서. 엄마, 갔다올게!"
방에 있는 엄마에게 큰 소리로 인사하고는, 가은의 은색 부츠를 후다닥 신고는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온 가
희. 밖에는 오늘 가희의 모습을 축하해주는 듯,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눈을 보자 더욱 기분이 좋아
진 가희는 문을 빼꼼히 열고 가희를 쳐다보고 있는 가은에게 손을 살짝 흔들어주고, 서둘러 엘리베이터
에 올랐다.
오늘 왠지… 재미있을 것 같은데?
잠시 후, 만나게 될 은설 생각을 하며 밝게 웃는 가희였다.
◎꼬맹이의 달콤한 유혹
12. #좋았던 기분을 망치게 한….
"가희야, 여기야!"
영화관 앞에서 은설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가희는, 저멀리서 손을 흔드는 은설을 찾고는 밝게 미소지
으며 은설에게 가볍게 달려갔다. 진청바지에 남방, 그 위에 재킷을 걸친 은설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볼 정도로 멋있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에 가희가 한 번 몸을 움츠리며 은설을 보며 웃자, 은설은 자
신의 목에 있던 목도리를 풀러 가희에게 둘러주었다.
"아니야, 너가 해!"
"됐어. 원래 남자가 이렇게 해 주는거야."
"풉…."
"그나저나 오늘 이쁜데?"
"흠, 신경 좀 썼지."
"하하."
"왜 웃어!"
가희의 대답에 자신의 허리에 손을 짚으며 밝게 웃는 은설. 가희는 은설이 웃는 이유를 몰라,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가희의 물음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답하는 은설.
"아냐, 늦었다. 얼른 들어가자!"
"칫, 말 돌리긴."
은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가희는 은설에 대해 궁시렁거리며 은설을 따라 들어갔다. 먼저 앞서간 은
설을 따라잡기 위해 은설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가는 가희. 역시나, 은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어가
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봤다. 누군가가 은설을 본다는 게 기분이 나빴는지, 가희는 서둘러
은설의 옆으로 가, 은설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웠다. 놀란 표정으로 가희를 보는 은설.
"이 정도는 해야지."
"픽…. 이보세요, 아가씨."
"왜요, 아저씨."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날 얼마나 두근거리게 하는지 아세요?"
"…어?"
"에휴, 못 들었음 말구."
은설은 한숨을 푹, 내쉬며 가희의 팔을 빼내 자신의 손과 가희의 손을 맞잡았다. 따뜻한 은설의 손이 자
신의 손에 닿자, 따뜻한 기운을 느끼며 희미하게 웃는 가희. 은설은 팝콘과 콜라를 사고는, 계단을 몇 층
올라 14번 상영관 앞에 멈춰섰다. 주머니에서 두 장의 표를 꺼내든 은설은 상영관 앞에 서 있는 직원에
게 내밀었다. 직원은 표를 받아들고는 은설과 가희를 입장시켰다.
"근데 우리 무슨 영화 보는거야?"
"이번에 새로 개봉한건데, 로맨스 영화야."
"와, 나 로맨스 좋아하는데!"
"이거 표 구하기 힘든거야. 시사회 표거든."
"진짜?!"
"응, 진짜."
"와, 유은설~ 꽤 매너있는데?"
"내가 한 매너 하지."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상영관 안에 들어선 가희와 은설. 둘은 표를 보며 좌석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자리
를 찾은 은설이 가희의 손을 잡고 앞쪽 자리로 이끌어 앉았다. 자리에 앉은 가희는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
놓고는 팝콘을 한 두개 꺼내 먹었다. 스크린 앞에는 카메라들이 여러 개 늘어서 있었다.
"은설아."
"응?"
"이거 꽤 유명한 영화인가봐? 좌석이 꽉 찼네?"
"유명하다기보단, 출연한 배우 중 한 명이 꽤 인기 있는 사람이거든."
"오, 누군데?"
가희가 질문을 던진 순간,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앞으로 시선을 돌리는 은
설과 가희. 앞에 있는 문을 통해 배우들이 하나 둘 들어섰다. 총 5명의 배우들이 입장하고, 그들을 차례차
례 살펴보던 가희가 누군가를 보고는 경악했다.
"저기 보여? 정한결이라고, 가수 크로커스 멤버잖아. 저 사람이 출연해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거야."
"……."
"가희야?"
"…정한결."
"응, 정한결."
한결을 보고 기분이 상한 가희는 상영관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자신을 위해 준비한 은설의 성의를 생각
해서 자리에 차분히 앉아있었다. 배우들이 마이크를 돌려가며, 소감을 말했고, 그 때마다 카메라 플래쉬가
바쁘게 터졌다. 어느덧, 한결의 차례가 오고 한결은 마이크를 잡고는 극장 안을 두리번거렸다. 두리번거리
던 한결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머무르고, 가희는 자신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한결과 눈이 마주쳤다. 한결
은 가희를 보며 픽, 웃더니 마이크를 대고는 말했다.
"안녕하세요, 정한결입니다. 처음으로 찍어보는 영화라 대게 떨리고 긴장되는데요, 오늘 아주 특별한 분이
와 주셔서 너무 기쁘네요. 여튼 영화 즐겁게 보고 가세요."
한결의 소감이 끝나고 조명이 하나 둘 꺼지며 영화가 시작되었다.
저 새끼 저거 나 들으라고 한 말 아니야?
한결의 말을 듣고 기분이 꽤나 상한 가희가 자신의 앞쪽에 앉은 한결의 뒤통수를 있는 힘껏 째려보았다. 그
런 가희를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은설이 가희를 툭툭 치며 조용히 물었다.
"왜 그래?"
"아, 아니야. 영화 보자."
"응."
가희의 대답에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리는 은설. 가희 역시 한결의 뒤통수를 다시 한 번 보고는 푹, 한
숨을 내쉬며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구 덕분에 데이트 망치게 생겼네….
속으로 기분이 상한 걸 모두 한결 탓으로 돌리며, 팝콘을 신경질적으로 먹는 가희였다.
◎꼬맹이의 달콤한 유혹
13. #행복한 그들과 질투할 수밖에 없는 그.
"재미없었어?"
"응? 아냐아냐, 짱 재미있었어!"
"에이, 거짓말."
"진짜야!"
"체, 실컷 자 놓고선…."
은설이 삐진 듯 고개를 획 돌리며 말하자, 머쓱한 듯 웃으며 은설의 옆에 딱 붙어 은설의 화를 풀어주려는 가
희. 은설은 계속해서 삐진 척을 하며 상영관을 나와 무작정 걸었다. 가희는 그런 은설의 옆에 붙어 있는 애교
없는 애교 모두 총동원했지만, 은설은 쉽게 마음을 풀지 않았다. 자신의 애교가 먹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
지 않았는지 잠깐동안 놀란 표정을 짓던 가희는 다시 미소 짓고, 은설의 옆으로 가 조용히 속삭였다.
"너 자꾸 삐진 척하면 나 집에 간다?"
"뭐?! 너 지금 나 협박해?"
"푸하하. 역시 단순하다니까, 유은설."
"……."
"또 말 안 하네…. 집에 가야겠다."
"치… 알았어."
가희가 은설이 듣지 못하게 풉, 비웃자 자신보다 키가 작은 가희를 힘껏 째려보는 은설이었다. 가희는 그런
은설을 한 번 보더니 뒷걸음질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이구, 무서워라."
"하하."
"치, 이제서야 웃냐. 이 삐돌아."
"삐돌이? 하하, 나 참…."
가희와 은설은 여러 얘기를 하며, 영화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어두운 상영관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와서인
지, 살짝 눈이 부셨다. 왼쪽 손을 들어 햇빛을 가리는 가희. 아까보다 바람도 덜 불고, 해도 쨍쨍한 날씨 덕에
가희는 목도리를 풀러 다시 은설에게 건네줬다. 은설은 싱긋 미소 짓고는 가희의 손에 들린 목도리를 받아들
어 자신의 목에 헐렁하게 둘러댔다. 가희와 은설은 횡단보도 앞에 멈춰섰다.
"은설아, 이제 뭐할거야?"
"밥 먹어야지."
"어디서 먹게?"
"음… 길 건너편에 있는 초밥집 갈까?"
"그래! 나 초밥 대따 좋아해!"
가희가 박수까지 치며 말하자, 은설은 밝게 웃었다.
※ temptation ※
탁. 한결이 거칠게 문을 닫으며 차 안으로 들어섰다. 한결이 올라타자, 책을 읽고 있던 한규와 문자를 하
고 있던 가은의 시선이 짜증스러운 표정의 한결에게로 돌아갔다. 한결이 올라타자마자,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시동을 걸며 말하는 가은.
"시사회 잘 했어?"
"어, 뭐 그런대로."
"근데 표정이 왜 그래?"
"……."
"어? 왜 대답을 안 해?"
"누나 동생 왔더라."
"에? 내 동생이? 시사회에 왔다고?"
"어, 어떤 남자랑 왔던데."
한결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놀란 표정을 짓는 가은. 운전대를 잡고 출발하던 가은이 뭔가 알았다는
듯이 아, 라는 탄성을 자아냈다.
"오늘 가희 중요한 약속 있다던데. 남자친구 만나러 간 거였구나~"
"……."
"아침에 무슨 난리를 치더니 다 그럴 일이 있었네~ 근데 이 기집애가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남친를 사귀어?
죽었어, 집에 오기만 해 봐."
한참동안 혼잣말을 하던 가은이 신호에 걸려 차를 멈추고는 한결을 향해 물었다.
"근데 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
"봤어."
"오호, 가희 남자친구 잘 생겼든?"
"……."
"흠, 말 안 하는거 보니까 좀 생겼나보네. 근데…."
"뭐."
"너 짜증난 이유가 가희 때문이야?"
"……."
기분 나쁘잖아. 그 여자가 다른 놈이랑 있는 거. 차마 이 말을 내뱉지 못하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한결이었다.
※ temptation ※
"와, 눈 온다!"
초밥을 두둑히 먹고 밖으로 나온 가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뒤늦게 따라나온 은설 역시 눈이 오
는게 좋았는지 밝게 미소 지었다. 눈이 함박눈이어서인지, 그들이 밥을 먹는 동안 눈이 꽤나 쌓인 듯 했다.
한참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던 가희가 고개를 돌려 밝은 표정의 은설을 쳐다봤다. 가희는 땅에 조금 쌓여있
던 눈을 모아 손으로 꾹꾹 다지고서는 은설에게 힘껏 던졌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은설의 재킷에서 눈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너… 죽었어."
재킷을 내려다보던 은설이 땅에 있던 눈을 한 바가지 모아서는 도망치는 가희의 뒤에 맞췄다. 역시나 들려
오는 퍽 소리와 함께 꺄, 소리를 지르는 가희. 은설은 등을 털기 위해 폴짝대는 가희를 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가희는 은설을 보며 씩씩거리더니 은설에게로 다가갔다. 은설의 바로 옆까지 도착한 가희는 은설의 팔을
잡고 나무 근처로 걸어갔다.
"여긴 왜?"
은설의 말이 끝나자마자, 후두둑 소리와 함께 엄청난 양의 눈이 은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미 나무에게
서 멀리 떨어져있던 가희가 은설을 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푸하하, 유은설 머리 좀 보래요~ 백발 노인이네! 야, 나처럼 머리를 써야지~"
혼자 좋아서 깔깔대는 가희를 보며 허탈한 웃음을 내뱉는 은설이었다.
◎꼬맹이의 달콤한 유혹
14. #기다리고 기다렸던 일이 다가온….
"춥다, 그치?"
"응."
"어디 몸 녹일 데 없나?"
눈을 온 몸에 흠뻑 묻히고는 따뜻한 곳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은설. 가희는 은설의 어깨 위에 쌓여
있는 눈을 가볍게 털어냈다. 가희의 손짓에 움찔하던 은설은 이내 가희와 눈을 마주치며 밝게 웃었다. 한참을
돌아 다니던 그들은 한 카페 안에 들어섰다. 따뜻한 공기가 그들의 몸을 감싸고, 가희의 발그레한 볼이 서서히
가라앉아갔다. 그들은 창가쪽 자리에 앉아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와, 따뜻하다."
"그러게, 밖에 봐. 눈 진짜 많이 온다."
"이가희, 너 눈싸움 좀 하더라?"
"풉, 날 가볍게 보면 안 돼죠."
"그러게. 가볍게 봤다가 혼쭐 났네."
둘은 따뜻한 커피를 호호 불어 마시며, 창 밖 경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동안 카페 안에
있던 그들은 시간이 한참동안 흘러간 것을 확인하고는 카페를 다시 나섰다. 다시 한 번 차가운 바람과 눈이 둘
의 몸을 휘감았다. 코트에 주머니가 없던 가희는 차갑게 얼어붙은 손을 어디다 둬야 할지 고민했다. 그 때, 은
설이 가희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은설의 따뜻한 체온이 가희의 손에 맞닿고, 가
희는 놀란 표정으로 은설을 올려다 보았다.
"손 시렵잖아."
은설의 다정한 목소리에 가희는 살짝 미소 지으며, 은설의 손을 꽉 잡았다. 은설은 걸음을 옮겨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어느새, 해는 저물어 어둠이 찾아와 그들을 덮쳤다. 공원은 어둠에 의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근처
엔 나무 몇 그루가 띄엄띄엄 있었고, 중앙엔 여러 벤치들과 분수대가 위치했다. 하지만, 추운 날씨 때문인지 분
수대에서는 시원한 물줄기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여긴 왜?"
가희가 은설에게 묻자, 은설은 가희의 손을 주머니에서 빼내더니, 가희의 눈을 뚫어지라 응시했다. 가희 역시 은
설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 한참동안 그렇게 있자, 다시 추위가 느껴졌다.
"은설아, 나 추운데…."
가희의 말에 은설은 천천히 가희를 자신의 품 안에 가두었다. 놀란 가희의 두 눈은 동그랗게 떠져 있었다.
은설의 품 안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따뜻한 품 안에 한참동안 있던 가희는, 살짝 몸을 움직였고, 은설은 천천
히 가희를 품에서 빼내었다.
"뭐… 뭐야, 갑자… 웁!"
가희가 말을 채 끝내기 전에 은설이 가희의 입술을 덮쳤다. 은설의 따뜻한 혀가 가희의 혀와 엉켜붙어 야
릇한 느낌을 들게 했다. 쪽, 둘의 입술이 떨어졌다, 다시 붙었다. 은설의 혀가 가희의 잇몸과 고른 치아를 훑
고 지나가자, 가희는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한결과 했던 키스보다도 더욱 강렬하고 짜릿했다. 한참동안의
키스로 인해 가희의 숨이 점점 거칠어질 때 즈음, 은설이 가희를 놓아주었다. 가희는 얼굴이 점점 붉게 달아
오르는 것을 느꼈고, 은설은 그런 가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희야."
"…응…."
"나랑…"
"……."
"사귀자…."
은설의 말이 끝나자마자, 공원에 있던 여러 그루의 나무가 갑자기 환하게 빛났다.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나무들이 그들의 주위를 밝게 빛냈다. 가희는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고, 은설은
그런 가희를 물끄러미 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한참동안 주변을 둘러보던 가희가, 천천히 은설에게로 시선
을 돌렸다.
"난…."
"……."
"…거절하지 않을게…."
가희의 말에 급격하게 밟아지는 은설의 표정. 주위에 빛을 받아 더욱 아름다워보이는 은설의 미소는 가희의
심장을 여러 번 뛰게 하였다. 은설은 가희를 품에 꼭 안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둘만의 비밀 이야기처럼….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해 줄게…. 고마워, 가희야…."
※ temptation ※
"뭐? 그니깐, 오늘 같은 학교 남자한테 고백을 받아서 너는 오케이 했다, 이거야?"
"응!"
"게다가 키스까지 하고?!"
"그래!"
"와… 그렇게 오늘 멋을 내고 가더니! 결국 남자 하나 건졌구나!"
"히히."
"부럽다, 야."
은설에게서 받은 고백 이야기를 가은에게 털어놓고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헤헤, 웃는 가희. 가은은 그런 가희를
보며 풋, 웃음 짓다가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아, 맞다."
"응?"
"너 오늘 한결이가 찍은 영화 시사회 갔어?"
"어? 응, 갔는데 언니가 어떻게 알았어?"
"한결이가 말해줬어. 그나저나 한결이 말이야…."
"응."
"너가 어떤 남자랑 있는 거 보고 질투한 것 같더라?"
가은의 말에 먹던 물을 푸, 내뱉는 가희.
지금 언니가 뭐라고 한 거지?
입에 묻은 물을 소매로 닦아내며 놀란 표정으로 가은을 보는 가희.
"뭘 그렇게 놀라."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오늘 너랑 어떤 남자랑 시사회에 왔다는 거 말하면서 인상을 팍 쓰던데?"
"질투는 무슨. 나 봐서 재수 털렸다고 생각해서 그럴껄?"
"아, 그런가?"
"그래! 무슨 질투야, 질투는."
"하하…"
가희의 타박에 멋쩍게 웃는 가은. 가희는 그런 가은을 가재미눈으로 한 번 쳐다보고는 현관문 쪽으로 가, 걸
레를 들고 다시 돌아와 물 묻은 바닥을 걸레로 닦아냈다.
'너랑 어떤 남자랑 시사회에 왔다는 거 말하면서 인상 팍 쓰던데?'
바닥을 닦는 가희의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가은의 말.
에이… 질투겠어, 설마. 그렇게 나 괴롭히는데.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그 생각을 떨쳐버리고는 다시 은설과 했던 키스를 떠올리며 황홀해하는 가희였다.
◎꼬맹이의 달콤한 유혹
15. #이쪽의 인연, 저쪽의 인연.
"한결아~"
"……."
"나 너가 찍은 영화 봤어! 재미있더라!"
"……."
"한결아?"
"……."
"정한결!"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은비의 물음에 놀란 표정을 지우고 다시 눈을 감는 한결. 언제 차에는 올라탔는지, 볼이 발그레한 은비가 자
신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자, 짜증이 치솟은 한결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좀 가!"
"…한결…아."
"좀 가라고. 옆에서 시끄럽게 하지 말고."
"…오늘… 기분이 안 좋은가보네…. 내일 다시 보자…."
힘없이 인사를 하고는, 한결의 개인차에서 내려 고개를 푹 숙이고 달려가는 은비. 한결은 바람에 휘날리는 은
비의 머리카락을 보며, 또 한 번 가희의 긴 생머리를 떠올렸다.
정한결, 미쳤군.
자신을 미쳤다고 생각하며 유리창에 살짝 머리를 박는 한결.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콩콩 박아도, 가희의 생각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가희의 옆에 있던 남자가 누구일지 곰곰히 생각하는 한결.
"남자…친구…?"
하, 아닐거야.
애써 아니라고 자신에게 확인시키며 가희에 대한 생각을 애써 지워내는 한결이었다.
※ temptation ※
-"네 이년, 기어코 유은설을 낚아 챘구나!"
"낚아채긴! 그 쪽에서 자꾸 들이대는 데 어떻게 하겠니."
-"기집애. 여자가 좀 튕기는 맛이 있어야지. 고백했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그걸 받아주냐?"
"사랑에 그런 게 무슨 상관이 있어!"
-"어머, 얘 봐라. 사랑이랜다. 사귄 지 하루밖에 안 된 것들이 옘병들을 떠네."
"흥! 너 자꾸 그렇게 나올거면, 전화 끊어!"
탁, 다소 신경질적으로 폴더를 닫고는 침대에 벌러덩 눕는 가희. 두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던 가희가 이내 벌
떡 일어났다.
향아 말대로… 너무 쉽게 받아줬나?
향아의 말을 떠올리며 뒤늦게 고민하는 가희.
에이, 벌써 사귀는데 그런 게 뭔 상관이야.
하지만, 간단하게 결정 지어버리고는 침대에 다시 눕는 가희였다. 다시 두 눈을 감은 가희의 머릿 속에 밝게 미
소 짓는 은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은설이 천천히 가희에게로 다가오고, 가희 역시 은설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이제 둘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지고, 입술이 막 닿으려는 순간.
"가희야!"
요란스럽게 방문이 열리며, 츄리닝 차림에 가은이 들어섰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가은을 있는 힘껏 째려보
는 가희. 가은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더니 박수를 짝, 치며 말했다.
"아, 맞다. 노크! 노크를 안 했군!"
"씨…."
"미안미안~"
가은이 헤헤, 멋쩍게 웃으며 사과를 건네고, 가희는 대충 사과를 받아냈다.
"그나저나 왜?"
"아, 너 내일 약속 없지?"
"응."
가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밝은 표정을 짓는 가은.
"다행이다! 내일 저녁에 시간 좀 내."
"또 왜?"
"한규가 너 보고 싶댄다."
"한규? 유한규씨?"
"응. 내일 만나쟀어. 한결이도 만날꺼야. 여튼 내일 나랑 같이 가는거다?"
"아…."
가희가 채 말을 하기도 전에, 재빨리 방을 빠져나가는 가은.
뭐야, 다 자기 마음이야. 약속 있다고 할 걸….
약속 없다고 말했던 걸 뒤늦게 후회하며 침대에 힘없이 눕는 가희였다.
※ temptation ※
"가자."
"꼭… 가야돼?"
"야, 그걸 말이라고 하냐? 한규가 너 얼마나 보고 싶어하는데."
"아… 배가 좀 아픈 것 같기도 한 것 같아서…."
"지랄."
가희의 말에 무덤덤히 욕을 내뱉으며, 차에 올라타는 가은. 가희 역시 한숨을 푹, 내뱉고는 가은의 옆자리에
올라탔다. 가은은 이내 시동을 걸더니, 빠르게 출발했다. 그렇게 10분여 정도 달렸을까. 딱 보기에도 비싸보
이는 한 레스토랑 앞에 멈춰서는 가은. 가은은 차키를 빼내고서 차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가희 역시 뒷자석
에 놓았던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와…."
"오늘은 한규랑 한결이가 쏘는거야. 마음 놓고 먹어."
"배 아프다니까…."
"떽!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하기만 해 봐…. 용돈 없앨 줄 알어."
"와, 치사의 초절정."
"따라 들어오기나 해."
가희에게 용돈을 없애버린다는 조건을 걸고는, 먼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가은. 가희는 한참동안
건물을 둘러보더니, 한숨을 내뱉고는 힘없이 문 안으로 들어섰다. 또 한 번 마주치게 될 한결을 떠올리면서.
◎꼬맹이의 달콤한 유혹
16. #무서운 그녀와, 알 수 없는 그.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한 웨이터가 두 번에 걸쳐 스테이크를 가지고 와서, 한 사람 앞에 한 접시씩 놓고는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와, 맛있겠다! 얼른 먹자, 운전했더니 배고파 죽겠다."
"그래봤자 몇 분이나 했다고."
"떽! 얼른 먹기나 해, 이가희."
"흥."
새침하게 가은을 쳐다보고는, 한 손엔 나이프를 다른 한 손엔 포크를 들고 먹을 준비를 하는 가희.
와, 맛있어보인다.
서둘러 고기를 쓱쓱 썰고는 입에 쏙 넣는 가희. 고기는 가희의 입 속에서 살살 녹는 것 같았다. 가은 역시 스
테이크를 맛 보고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와, 이 집 되게 맛있다. 입에서 살살 녹네."
"그치? 여기 내가 알아낸 데야. 여기는 연예인들만 오는데라, 선글라스 안 써도 된다~"
"그래그래. 좋겠네, 우리 한규~"
잠시 후, 가은이 좀 취해야겠다며 주문한 와인이 나왔다. 그들은 자신의 와인잔에 조금씩 와인을 따라서, 건배
를 하고는 조금씩 마셨다. 평소에 술을 많이 안 먹는 가희는 와인조차도 쓴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한참동안의
식사 후, 가은과 한규는 화장실을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은과 한규가 가고 나자, 썰렁함이 감도는 테
이블. 어색한 분위기는 딱 질색인 가희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려던 순간.
"정한결!"
레스토랑 입구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가희가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성난 표정
의 은비가 한 여자와 함께 그들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느덧 그들 앞에 선 은비가 한결과 가희를 번갈아
보더니 픽,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여자랑 밥 먹는거야?"
"보면 모르냐."
"하…. 정한결."
"어."
"고작 이깟 년이랑 밥 먹으려고 내 전화 다 씹은거야?"
"전화 했었냐, 몰랐다."
"하…."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성난 표정을 짓는 은비. 한참동안 한결을 노려보던 은비가 다시 가희 쪽으로 시선을 돌
렸다. 은비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오자, 고개를 푹 숙이는 가희.
"왜 고개 숙여. 너가 뭘 잘못했다고."
양 손에 들려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말하는 한결. 한결의 말에 가희와 은비의 시선이 한결에게로
쏠렸다.
맞아, 나 잘못한 거 없어. 왜 내가 고개를 숙여?
가희는 한결의 말에 힘입어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말했다.
"단 둘이 먹으러 온 거 아니에요."
"…뭐?"
"정한결씨, 유한규씨, 저, 그리고 저희 언니. 넷이 먹으러 온 거에요. 테이블에 접시 보면 몰라요?"
"뭐? 이 년이 돌았나."
"그리고 자꾸 년, 년 하시는데요. 저 이름 있거든요? 이가희라는 이름 있어요. 저 부르실거면, 이가희라고
불러주세요."
"야! 이 년이 진짜…. 너 죽고 싶어?!"
"이가희라고 했습니다."
가희의 말에 화가 치솟은 은비가 손을 들어 가희의 뺨을 내리치려는 순간, 한결이 먼저 은비의 뺨을 내리쳤다.
짝, 엄청난 마찰음이 레스토랑 안에 울리고, 은비의 고개는 오른쪽으로 휙 돌아가 있었다. 잠시 후, 은비가 고개
를 들며, 눈물을 머금고는 말했다.
"한결아…."
"너가 뭔데 이 여잘 때리려고 해."
"정한결! 너 이렇게 나오면 안 돼지! 안 되는거지!"
"나 먼저 간다."
가희의 팔을 잡고는 서둘러 레스토랑을 빠져나오는 한결. 가희는 한결이 이끄는 데로 말없이 따라갔다. 한결
은 건물 앞에 주차된 차에 가희를 태우고는 자신도 운전석에 올랐다. 또 한 번 어색함이 흐르고, 가희가 무슨
말이라도 꺼내려는 순간, 한결이 조용히 말했다.
"너 뭐야."
"…네?"
"너 뭔데 이래."
"……."
"너가 뭔데 이러냐고."
한결의 말을 조용히 듣는 가희. 화난 듯 하면서도, 다정한 어투랄까? 또다시 정적이 흐르고, 참다 못한 가희가
입을 열었다.
"저, 언니가 기다릴거에요. 가 볼게요."
가희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한결은 가희를 붙잡지 않았다. 가희 역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후, 이게 뭔 일이람.
방금 전에 있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가희였다.
◎꼬맹이의 달콤한 유혹
17. #조금은 보지 못할 상황…?
"…그래서 내가 뭐랬지. 막 엄청 웃긴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누나가…."
"……."
"…가희야? 듣고 있어?"
"…어? 아, 응…. 뭐라구?"
"에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냥…."
은설의 말에 대충 대답하고는 헤헤, 웃는 가희. 은설은 그런 가희가 귀엽다는 듯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가
희를 바라보았다. 한편, 가희는 어젯밤, 한결이 했던 말을 머리 속에서 되뇌이고 있었다.
'너 뭔데 이래.'
자신에게 따뜻한 어투로 되묻던 한결. 차 안의 어둠 때문에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아주 애
달픈 듯한 말투였다.
에휴,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랬겠지.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는 은설을 쳐다보는 가희.
자식, 귀여워 죽겠어.
"은설아."
"응?"
"우리… 놀자."
"음, 뭐하고 놀까?"
"놀이공원 갈까?"
"그래, 가자!"
흔쾌히 수락하고는, 가희의 손을 잡고 힘차게 걷는 은설. 가희는 그런 은설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귀여…워.
그렇게 생각한 가희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사람도 많은 거리에서 은설의 볼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갑작스러
운 가희의 스킨쉽에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희를 쳐다보는 은설.
"아… 저… 그니까, 그게…."
자신도 모르게 했던 행동인 터라, 우물쭈물거리며 말을 건네려는 가희. 그런 가희를 한참동안 말없이 보던 은
설이 조용히 가희를 안았다. 따뜻한 은설의 품에 안겨, 두 눈을 꼭 감는 가희.
이대로…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어….
※ temptation ※
"그만."
"하아… 왜?"
"그만해, 오빠."
"……."
은비가 오른손을 들어 제지하자, 아쉬운 듯 입술을 매만지며 은비에게서 살짝 떨어지는 지훈. 지훈이 떨어지
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 은비. 지훈은 그런 은비 옆에 다시 슬그머니 다가와 앉으며, 은비의 부
드러운 볼을 쓰다듬었다. 은비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무슨 일 있어?"
"아니."
"근데 왠 담배? 끊을거라며."
"…쿡…."
"에, 왜 웃어?"
"웃겨서."
"…뭐가?"
"오빠랑 나랑 이런 사이인거… 새엄마도 알아?"
지훈의 얼굴에 담배연기를 후, 내뱉으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내는 은비. 은비의 말에 지훈은 할 말을 잃은 듯,
은비의 볼에서 손을 떼냈다.
"아무리 피가 안 섞였다지만… 오빠랑 나랑 법적으로는 남매잖아."
"…그래."
"풉… 웃겨, 정말."
"……."
한참동안 둘 사이에 정적이 흐르고, 담배가 점점 줄어들어가자, 바닥으로 떨어트려 발로 비비는 은비. 고개를 푹
숙이고 말없이 있는 지훈을 새침하게 쳐다보는 은비. 은비는 손으로 지훈의 턱을 들어올려, 자신의 눈과 지훈의 눈
이 마주하게 했다.
"그래도…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뭐."
은비의 말에 다시 미소를 지으며, 은비의 입술에 강하게 자신의 입술을 갖다대는 지훈. 은비는 그런 지훈
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두 팔을 지훈의 목에 둘렀다.
안지훈… 너도 곧 쓸모가 있겠지.
입술로는 지훈을 어루만지고, 머리로는 지훈을 써먹을 궁리를 하는 은비였다.
◎꼬맹이의 달콤한 유혹
18. #은밀한 비밀은… 지킬 수 있는.
"한결아."
"어."
"가희씨말이야…."
"……."
"보면 볼수록 끌리는 것 같애, 그치?"
한규의 말에 창밖에 두었던 시선을 한규에게로 옮기며 차가운 표정을 지어내는 한결. 그런 한결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큰
소리로 웃어제끼는 한규. 한규의 웃음에 한결의 표정은 더더욱 굳어져갔다.
"푸하하."
"…그만 웃지?"
"하하, 하하…. 아, 미안미안. 너무 웃겨서…."
"…뭐가 웃긴데."
딱딱한 한결의 물음에, 웃음에 의해 흘러나온 눈물을 닦으며 대답하는 은설.
"예상했어. 니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고."
"그게 뭔 소리야."
"내 말에 너가 그렇게까지 반응했다는 건."
"……."
"너가 가희씨를 좋아한다는거야."
은설의 말에 한참동안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며 픽 헛웃음을 내뱉는 한결. 한규는 그런 한결을 멀뚱멀뚱 쳐다보
았다. 방금 전 한규처럼, 정신없게 웃어대는 한결. 잠시 후, 한결이 웃음을 꾹꾹 눌러참으며 말했다.
"내가 그 여자를?"
"그래."
"픽,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할 리가 있겠냐? 이쁘기를 하냐, 몸매가 좋냐, 애교가 있냐? 맨날 칠칠맞게 굴고, 행동은 둔하고…. 그
런 여자를 내가 미쳤다고 좋아하냐?"
"글쎄…. 가희씨를 대하는 니 태도는 마치 가희씨를 좋아하는 것 같았어. 뭐, 언제까지나 내 시점이었지만."
한규는 그 말을 끝으로, 음료수를 뽑아오겠다며 의자에서 일어나 휴게실 한쪽 구석에 있는 자판기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런 한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한결이 이내,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단 둘이 먹으러 온 거 아니에요.'
'정한결씨, 유한규씨, 저, 그리고 저희 언니. 넷이 먹으러 온 거에요. 테이블에 접시 보면 몰라요?'
'그리고 자꾸 년, 년 하시는데요. 저 이름 있거든요? 이가희라는 이름 있어요. 저 부르실거면, 이가희라고 불러주세요.'
몇 일 전, 가희가 은비를 향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웃음짓는 한결.
"당돌한 구석 하나는 마음에 들어."
※ temptation ※
"아, 맞다! 가희야, 너 그 날 무슨 일 있던거야?"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컵에 물을 따라마시던 가은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컵을 테이블 위에 쾅, 내려놓으며 물었다. 가은의
말에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돌리고 있던 가희가 가은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어?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왜 몇 일 전에 한결이랑 너랑 나랑 한규랑 저녁 먹으러 갔었잖아."
"응."
"그 때 너랑 한결이랑 갑자기 없어졌던데? 어디 갔던거야? 그 동안 물어봐야지, 해놓고 까먹고 있었네."
가은의 말에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 내쉬는 가희. 가은은 아예 물이 든 컵을 들고는 가희 옆에 털썩 앉았다. 어
떻게든 들어야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런 가은을 보던 가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리모컨으로 TV를 꺼 버렸다.
"음, 그니까…."
"빨리 좀 말해봐!"
"재촉하지마! 몇 일 전 일이라 좀 생각해 봐야 된단 말이야."
가은의 재촉에 신경질을 내던 가희가 몇 분동안 곰곰히 생각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음, 언니랑 유한규씨가 화장실을 갔잖아. 그러고나서 정한결씨랑 나랑 엄청 어색하게 그냥 묵묵히 먹고만 있었어."
"응."
"단 둘이 있으니까 너무 어색한거야. 그래서 내가 너무 어색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안은비인가? 아마 맞을꺼야, 여
튼 그 여자가 들어왔어."
"안은비? 비얀?!"
"비얀?"
가은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묻는 가희.
"응, 안은비 가수 활동할 때 비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 아, 여튼 계속 말해봐."
"응, 근데 그 여자가 나랑 정한결씨랑 단둘이 먹는 걸 보고 와서는 뭐라뭐라 욕을 하는거야."
"어머어머."
가희가 한 마디 할 때마다, 여러 추임새를 넣어 맞장구를 쳐 주는 가은. 가희는 그런 가은을 보며 한 번 웃고는 다시 말했다.
"그래서 계속 정한결씨랑 그 여자랑 다투다가, 그 여자가 괜히 나를 때리려고 하는데, 정한결씨가 막아줬어."
"진짜?! 한결이가?"
"응, 그래서 정한결씨가 그 여자 뺨을 한 대 후려치고는, 날 끌고 밖으로 나갔어."
"우와! 한결이 박력 짱이네."
"그래갖고…."
얘기를 끝맺음하려던 가희의 머리 속을 스치는 한결의 한 마디.
'너 뭔데 이래.'
그거까지 말해야하는 걸까…?
한참동안 고민하는 가희를 기다리다 못해 재촉하는 가은. 가희는 결국 말하지 않기로 하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래서 그냥, 정한결씨가 아무말도 안 하고 차에 타길래, 나도… 그냥 혼자 집에 왔어."
"에? 뭐야. 끝맺음이 좀 허전하다?"
"어? 하하… 뭐,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긴 해."
"흠, 그랬단 말이지."
가희의 대답에 턱에 손을 짚으며 고뇌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가은.
"결론은!"
갑작스럽게 가은이 소리치자, 놀라고 궁금한 표정으로 가은을 쳐다보는 가희.
"비얀한테 맞으려던 너를 한결이가 구해줬다는 거잖아. 간추린다면."
"음… 뭐 그렇게 되네?"
"전부터 이상했어."
"응? 뭐가?"
"한결이가 너한테 하는 행동이 이상했다구. 그 시사회 사건이나, 몇 일 전 그 저녁 먹을 때 사건이나…."
"언니! 시사회 일은…."
가희가 변명하기 위해 입을 열자, 가희의 말을 잘라버리는 가은.
"쉿. 여튼 잘 알았어. 언니는 방에 들어가서 생각을 좀 해 볼게."
가희의 어깨를 두어 번 치고는, 옆에 내려두었던 물컵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가은. 가희는 그런 가은을 보며 허탈
한 웃음을 짓더니, 쇼파로 올라가 양 다리를 뻗고 누웠다. 누워서 천장을 한참동안 바라보자, 천장에 나타나는 은설의 얼굴.
언제 봐도… 환상의 미소야.
가희와 눈을 마주치며 싱긋 미소 짓는 은설. 가희 역시 그런 은설을 보며 헤헤, 웃었다. 은설의 얼굴을 쓰다듬기 위해 천장을 향
해 손을 뻗는 가희. 그 순간, 은설의 얼굴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한결의 얼굴이 나타났다. 한결의 얼굴이 나타나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손을 재빨리 내려버리는 가희. 한결이 자신을 보며 웃자,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는 두 눈을 꼭 감고 옆으로 돌아누워 버
리는 가희.
정말… 저 인간이 여기 왜 나오는거야. 진짜 도움이 안 돼.
※ temptation ※
똑똑, 두 어번의 노크소리가 아늑한 방 안에 울려퍼졌다. 노크소리에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은비.
"들어와."
은비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열리며 밝은 표정의 지훈이 들어섰다. 은비가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었다.
"은비야, 나 왔어."
"응, 들어와서 앉아."
문을 살포시 닫고는 창문 쪽에 배치된 작은 쇼파에 다가가 앉는 지훈. 은비는 지훈의 맞은 편에 다가와 털썩 앉았다. 지훈이 긴
장해서 침을 꿀꺽 삼키는 걸로 보아, 은비가 지훈을 쥐락 펴락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지훈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던 은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빠, 부탁할 게 있어."
"부탁?"
"응."
부탁이라는 말에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 하는 지훈.
"무슨 부탁인데?"
"오빠 뒷조사 같은 거 잘 하잖아. 이가희라는 여자에 대해 뒷조사 좀 해 줘."
◎꼬맹이의 달콤한 유혹
19. #여러 상황의 변환. 그리고 얽힘.
"가희야."
"응?"
"너 연예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연예인? 뭐, 그냥. 그저그래. 근데 갑자기 왜?"
"언니가 연예인 소개 시켜줄까?"
"진짜?!"
가은의 말에 하던 게임을 꺼 버리며 큰소리로 되묻는 가희. 가은은 그런 가희를 보며 풋,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은의 끄덕
거림에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치는 가희.
"나야 좋지! 누구? 누구 소개시켜 줄건데?!"
"아, 맞다!"
"어?"
"너 남친 있지? 깜빡했다, 얘."
박수를 치며 얄밉게 말하는 가은을 보며, 은설을 떠올리고는 풀 죽은 듯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 가희. 가은은 가희의 어깨를 두
어번 툭툭 치고는 가희의 방을 빠져나갔다.
진짜 얄미워 죽겠어. 일부러 나 약올리려고 얘기한 걸거야.
속으로 가은을 있는대로 욕하며, 게임에 열중하는 가희. 그로부터 30분 후, 여전히 게임을 하고 있던 가희의 핸드폰이 요란스
럽게 진동소리를 내며 전화가 왔음을 알렸다. 가희는 전화 건 사람이 누군지 확인도 안 하고, 한 손으로 전화를 받아 어깨에 올
려 귀로 고정하고는 다시 게임을 하며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여보세요."
-"가희야~"
"누… 아, 은설이?!"
-"뭐하는데 난지도 모르는거야~ 나 삐진다?"
"헤헤, 나 게임하고 있었어!"
-"아, 우리 우등생 가희도 게임을 해?"
"나도 사람이거든?! 그나저나 어쩐 일이야?"
-"지금 너네 집 앞인데 잠깐 나올 수 있어?"
※ temptation ※
"다 알아봤어?"
"응, 그냥 평범한 여자던데?"
"알아온 거 쭉 읊어봐."
"알았어. 음음! 이름은 이가희, 나이는 스물한 살, 현재 서울대 재학중."
"서울대?"
"응, 공부 좀 하는거 같아."
"풋… 꼴에."
피던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져, 발로 비벼서 끄는 은비의 입에 비웃음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런 은비를 말없이 보던 지훈이 헛
기침을 하더니 읽던 내용을 다시 읽어갔다.
"현재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갑내기 남자친구가 있음."
"뭐? 남자친구가 있다구?"
"응, 얼굴 꽤 반반하던데? 사진도 구해왔는데 보여 줄까?"
"응, 줘 봐."
은비의 말에 옆에 놓아두었던 황색의 서류봉투를 뒤적걸여 사진 세 장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지훈. 은비가 그 사진을
집어들어 살펴보는 동안 지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하나는 이가희라는 여자의 남자친구인 유은설이라는 사람의 사진. 하나는 이가희라는 여자의 사진. 마지막 하나는 둘이 데이
트하던 모습 찍은거야."
"하… 임자도 있는게 누구한테 꼬리를 쳐?"
작게 속삭이듯 말하는 은비였던 터라, 다시 되묻는 지훈.
"어?"
"아니야. 이제 됐어. 나머지는 거기다가 놓고 나가봐."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을 가리키며 눈을 감아버리는 은비. 은비의 말에 힘없이 서류 봉투를 내려놓고는 방에서 나가는 지훈. 뭔
가를 기대했던 모양인데, 뜻대로 되지 않은 듯 했다. 달칵, 문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려퍼지고 은비는 천천히 눈을 떠 서류 봉
투를 물끄러미 보았다. 방금 보았던 사진 세 장을 머리에 되뇌이는 은비. 은설과 가희가 손을 잡고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과, 밝
은 표정의 가희의 사진, 마지막으로 특유의 달콤한 미소를 날리며 웃고 있던 은설의 사진.
하, 웃기는 년이네….
몇 일 전, 자신에게 겁없이 덤볐던 가희를 떠올리며 비웃음을 날리는 은비였다.
※ temptation ※
"Baby, Baby, Baby you. Come on, Come on, Come to me. 조금만 더 아찔하게, 조금만 더 도도하게. Baby, Baby,
Baby you. Come on, Come on, Come to me. 그렇게 더 다가와줘, 내곁으로 조금더. Come to me."
노래를 끝낸 은비가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무대에서 여유있게 내려왔다. 은비의 인기를 증명해주기라도 하듯이, 은비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우레와 같은 함성들. 그 뒤를 이어 진행자들의 목소리가 은비의 귀에 들려왔다.
"네! 비얀씨의 노래 잘 들었습니다! 약간 신비하면서도 묘한 느낌의 곡이죠?"
"네, 비얀씨의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비얀씨에게 매혹되는 것 같달까요?"
"하하, 이제 다음 순서를 소개해야죠?"
"네, 다음 순서는 요새 한참 인기를 몰고 있는 크로커스입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 아까 은비가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의 함성보다 더 큰 함성이 들려왔다. 은비 역시 진행자의 말을 귀기울
이고 있던 터라, 팬들의 함성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정한결 성격을 알고도 저렇게 난리를 쳐댈지….
한결의 차가운 모습을 떠올리며 괜시리 픽, 웃는 은비. 이제는 무대에서 꽤나 떨어진, 대기실에 도착한 터라 팬들의 함성소리도
작게 들려왔다. 저 멀리서 어렴풋이 들리는 댄스곡 반주. 은비 역시 대기실 쇼파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노래를 감상했다. 저음
이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의 한결과, 고음이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의 한규가 조화롭게 어울려 한 곡의 멋진 노래를 탄생시켰
다. 노래가 끝이 난 뒤에도 눈을 뜨지 않는 은비. 잠시 후, 대기실이 소란스러워지면서 한규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가 되서야,
천천히 눈을 뜨는 은비였다.
"누나! 저 한 번도 실수 안 했어요! 저 잘 했죠?!"
"응! 우리 한규 너무너무 잘했어! 우리 한결이도!"
"……."
코디누나의 칭찬에도 대답은 하지 않고, 살짝 미소만 짓는 한결. 은비는 그런 한결을 보며 역시나, 라고 생각하며 한결에게 다
가갔다. 한규와 대화를 나누던 한결의 시선이 은비에게로 옮겨지는 순간 굳어지는 한결의 표정. 몇 일전 일을 떠올리며 더욱더
차가운 표정을 지어내는 한결. 은비는 말없이 한결의 팔을 잡아 이끌어 건물 한 구석에 있는 비상구로 향했다.
※ temptation ※
"은설아!"
"가희야!"
은설의 전화가 끊나자마자 허겁지겁 옷을 입고 집 앞으로 달려나온 가희. 정말로 가희의 앞에 추위에 의해 붉어진 두 볼을 장갑
낀 손으로 문대고 있는 은설이 있었다. 가희는 놀라움 반 기쁨 반으로, 은설의 앞으로 달려갔다. 가희는 집 안에 있던터라 손이
따뜻했었다. 가희는 그 손으로 은설의 두 귀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왔으면 들어오지!"
"어떻게 그래."
"근데 어쩐 일로 온거야?"
"보고 싶어서."
"에?"
"내 사랑 이가희가 보고 싶어서 왔는데요~ 문제 있나요?"
"뭐? …풉. 그래, 문제 없어! 이상 무!"
은설과 가희는 서로를 바라보며 밝게 미소지었다.
◎꼬맹이의 달콤한 유혹
20. #다툼, 그리고 속상함.
"뭐하는거야."
"후…."
한결의 차가운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비상구 계단 한 쪽에 배치된 창문으로 바깥을 보며 한숨을 내뱉는 은비. 한결은 은비가
자신의 말을 무시하자, 기분이 나빴었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짜증이 난 한결이 말없이 비상구를 벗어나
려던 순간. 은비가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정한결. 너 정말 웃기는 놈이다?"
"뭔 개소리야."
"니 취향이 이렇게까지 독특한 줄 누가 알았겠어."
"무슨 소리냐고 묻잖아."
"얼굴이 이쁘든? 매력이 있든? 아님, 임자가 없든?"
"……."
"그 이가희라는 여자하고 맞는게 뭐가 있어? 못 생기고, 매력도 없고, 임자도 있는 여자가 뭐가 좋다는거야?"
은비의 말에 더욱더 굳어져가는 한결의 표정. 은비는 그 반응이 더욱 재미있다는 듯이 한결을 마음껏 비웃었다.
"하하, 나원 참. 어이가 없더라구. 고작 그딴 년이야? 니 수준 고작 그거니? 어? 대답 좀 해 봐, 정한결."
"안은비."
"어, 말해."
"죽고 싶어?"
"무슨… 소리야?"
"니가 뭔데 그 여자에 대해 조사해?"
다른 사람의 등골까지 오싹하게 만드는 한결의 차가운 어투. 하지만 은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하… 어이가 없어서 정말. 내가 조사 좀 해 보면 안돼? 그리고 그 여자… 내가 좀 만날 수도 있어."
"안은비!"
"너한테서 떨어지라고 충고 좀 해 줘야겠지? 안 그래? 그럼… 난 먼저 가 볼게. 천천히 와."
있는 대로 비꼬아 말하고는, 한결의 어깨를 일부러 툭 치고는 비상구 문을 열고 사라지는 은비. 은비가 나가고 난 후, 한참동안
가만히 서 있던 한결이 주먹을 움켜쥐고는 창문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시끄러운 소리가 한결 외에 아
무도 없는 비상계단에서 울려퍼졌다. 그 자세 그대로 멈춰서는 숨을 고르게 내쉬는 한결. 한결의 손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
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한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가만히 있다가 피 묻은 손을 힘없이 내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가 그 여자 건들이는 날… 어떻게 되는지 두고 봐, 안은비…."
※ temptation ※
"와, 방학이다!"
"아이구, 그렇게 좋아요, 우리 가희?"
"네! 좋아요, 우리 향아씨!"
헤벌레 웃으며 말하는 가희를 보며, 방금 전과는 다른 벌레 보는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향아.
"뭐래."
"아, 뭐야. 누가 먼저 이런 유치 대화 유도했는데!"
"난 그런 적 없다~"
뻔뻔하게 고개를 흔들고는, 치맛자락을 흩날리며 먼저 앞서 걷는 향아. 가희는 그런 향아의 뒷모습을 보며 칫,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내었다. 하지만, 이내 향아가 빨리 오라고 소리치자 향아의 강아지마냥 재빨리 달려가 향아 옆에 서는 가희.
"이가희는 이제 유은설 만나느라 정신 없겠네~"
"히히, 너도 남친 하나 만들어, 향아야!"
"남친 만드는 게 쉽냐, 이 둔탱아?"
"쳇!"
"나는 방학동안 방콕이나 해야겠다. 이제 하나뿐인 친구 이가희가 배신을 했으니…."
"에… 향아야~ 미안하게 왜 그러냐!"
장난스러운 향아의 말에 향아의 팔을 툭 치며 말하는 가희. 그런 가희를 한 번 본 향아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내며 바람에
흩날리는 웨이브진 머리를 뒤로 한 번 넘겨냈다.
"그나저나 유은설이랑 잘 돼가?"
"응, 뭐 그런대로!"
"진도는?"
"음… 아직…."
"고백한 날 이후로 한 번도?!"
"응, 왜?"
"얼른 나가야지, 아줌매야."
"난 느린 게 좋아~ 괜히 서둘렀다가 헤어지게 되면 어떡해."
가희가 느긋한 표정으로 말하자, 고개를 돌리며 혀를 끌끌 차는 향아였다.
※ temptation ※
"에? 뭘 가자고?"
"겨울여행!"
"아니, 그니깐. 겨울 여행을 누구랑 가자구?"
"한결이랑 한규랑 너랑 나랑 그리고 나머지 코디애들이나 뭐 등등."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태평하게 말하는 가은. 가희는 그런 가은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
"에이, 거길 내가 왜 가."
"한규가 너 데려오랬단 말이야!"
"…그 사람보고 나 좀 가만히 냅둬 달라고 부탁해줘, 응?"
정말 부탁한다는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아 가은에게 묻는 가희. 가은은 가희의 부탁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이 자신의 말
만 밀어붙였다.
"2박 3일인데~ 좀 한 번만 갔다오자, 응응?"
가은이 있는 애교 없는 애교 총 동원하며 부탁하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가희. 왜냐하면, 가희가 이번에 거절한
다면 가은은 또 다시 용돈으로 협박하며 치사하게 나올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희의 승낙에 가은은 박수를 치며 좋아라 했다. 가
희는 그런 가은을 한참동안 보다가 여행에 대해 궁금한 것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어디로 가?"
"강원도!"
"총 몇 명 정도 가?"
"너랑 나까지 열댓명?"
"몇 일 날 가?"
"다음주 일요일! 3일밖에 안 남았어."
"뭐?! 그렇게 빨리 간다구?!"
가은의 말에 벌떡 일어나며 큰 소리로 되묻는 가희. 가희의 외침에 깜짝 놀란 가은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가
희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방학이라 매일매일 은설을 볼 생각에 행복해했던 가희의 마음이 가은
의 말을 듣고 무너져내렸다.
내 사랑 은설이…. 이런….
애꿎은 바닥을 양 주먹으로 내리치며 뚱한 표정을 짓는 가희.
"체체체, 방학이라 은설이나 실컷 만나려고 했더니…."
"은설이? 니 남친?"
"그래!"
"맞다, 조만간 니 남친 언니한테 좀 소개시켜줘야지."
"내가 왜?!"
"언니가 동생의 남친 정도는 알아둬야지 않겠냐?"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가은을 보며 싫다는 표정을 역력히 들어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가희. 가은은 그런 가희의 머리를
한 번 톡, 치더니 거실 한 켠에 붙어있는 달력을 유심히 봤다.
"오늘이 1월 12일 금요일이니까, 내일 니 남자친구 집에 데려와라!"
"뭐?!"
"엄마한테도 너 남자친구 있는 거 말했어! 그랬더니 엄마도 언제 한 번 집에 초대하랬어."
"아… 저, 그게…."
"여튼 언니는 엄마한테 말해둔다~?"
가희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신의 방으로 쏙 들어가버리는 가은.
정말 미워죽겠어….
가은이 사라진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민을 하는 가희.
은설이한테 어떻게 말하지…? 부담 가질텐데….
은설에게 어떻게 말해야할지 걱정을 하며, 울상을 짓는 가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