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거라사에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시니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하였습니다(40절). 예수님의 가르침도 놀라웠지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능력을 행하심을 더욱 보고 싶어 했고, 더구나 질병이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더욱 기다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오셨다는 것을 듣고 정말 기뻐했던 사람 중 한 명은 가버나움의 회당장(會堂長)인 야이로(Jairus)였습니다. 왜냐하면 야이로의 외동딸이 질병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42절). 그래서 야이로는 예수님이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예수님께 와서 자기 집에 와서 자기 딸을 고쳐 달라고 요청합니다(41절).
예수님이 질병과 귀신 들림을 비롯한 여러 고통의 문제 등을 해결하시는 전능자임을 아는 자들은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만나길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삶에서 온갖 문제들을 맞닥뜨리며 고통스러워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삶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심을 온전히 아는 자들은 예수님을 외면하며 살 수 없습니다. 언제든지 환영하고, 예수님께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향한 이런 간절함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고 해도 예수님을 전능하신 해결자로 온전히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께 나아오지도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린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 자들이 아닐 것입니다.
야이로의 요청에 따라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야이로처럼 간절함을 가진 한 여인이 또 있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血漏症, Bleeding, Hemorrhage)을 앓던 여인인데, 그 누구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며 고생하던 여인이었습니다(43절). 혈루증은 하혈(下血)이 그치지 않는 질병인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혈이 계속되는 것은 부정한 것으로 여겼기에 그러한 질병을 앓는 사람을 접촉하는 것을 부정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 여인도 예수님께 감히 나아와 고쳐 달라고 요청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는 것도 자신의 부정함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어서 예수님을 만지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 가라도 만지면 병이 나을 것이라 생각하여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댄 것입니다(44절). 그러자 이 여인을 괴롭게 하던 질병이 즉시 나았습니다(44절). 아마 이 여인은 자신의 하혈이 멈춘 것을 곧바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줄을 아시고,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는지 물으십니다(45절). 베드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 밀고 있는데, 한두 사람이 예수님께 손을 댔겠냐며, 많은 사람들이 손을 댔을 것이라는 투로 답을 합니다(45절). 그렇지만 예수님은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아셨기에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두려워하며 자기가 손을 대었다고 자백합니다(47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손을 댔겠지만, 이리저리 떠밀려 손을 댄 것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께 손을 댄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에워싼 사람들 중에는 질병을 앓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옷에라도 손을 대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댄 이 여인이 나음을 입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배에 함께 참석하고, 말씀을 함께 들었어도 어떤 사람은 놀라운 은혜와 변화를 경험하는데, 어떤 사람은 아무런 은혜나 변화도 경험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미 8장의 앞부분에서 네 가지 밭의 이유를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변화를 경험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지체하시는 동안 회당장의 집에서 야이로의 딸이 죽었으니 오지 않으셔도 된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49절). 49절에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라고 말하는 것은 회당장의 집에서 온 사람이 회당장인 야이로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미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을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와서 장례를 치르라는 소식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야이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어쩌면 예수님을 지체하게 만든 열두 해 혈루증 앓던 여인을 향한 원망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저 여자가 예수님을 지체하지 않게 했다면 예수님이 벌써 우리집에 가서 내 딸을 고쳐주었을 텐데…’라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지만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고 믿으면 그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시면서(50절), 그 집으로 가서 그 딸을 살려내십니다(54절, 55절). 이미 야이로의 딸은 죽었고, 사람들은 울며 통곡하면서 비통(悲痛)에 젖어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시며 울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52절).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태도에 비웃었습니다(53절). 이미 그 딸이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을 다시 살리셨고, 음식을 주어서 먹게 하였습니다. 그 부모는 너무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56절). 죽기 전에 와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이미 죽은 딸을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생명까지도 주관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매우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56절). 아직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가 이르지 않았기에 이 일이 확산되어 예수님께서 행하실 사역에 지장이 되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 이유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에도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그 부모만 함께 들어가도록 하였습니다(51절).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생명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주님이십니다. 중요한 건 이러한 우리가 간절한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기도라는 도구로 나아갈 수 있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은혜와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일상 속에서 주님께 더 우리의 마음을 두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삶의 여러 영역에서 전능하신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 우리 삶에서 주님의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옵소서.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