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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불교 천태종 중창조 上月 圓覺 대조사
■ 대한불교 천태종 제2대 종정 대충 대종사
■ 대한불교 천태종 제3대 종정 도용 대선사
■ 20230329 WED 大韓佛敎 天台宗 牛眠山 觀門寺(우면산 관문사)
■ 대한불교천태종(大韓佛敎天台宗)
천태종대각불교/천태종대각불교포교원
시대 : 현대
위치 :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 132-1
설립 : 1967년 1월 24일
성격 : 불교종단
유형 : 단체
설립자 : 박상월
분야 : 종교·철학/불교
요약 : 우리나라 불교 29개 종단 중의 하나.
☞ 내용
1967년 1월 24일에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구인사(救仁寺)에서 박상월(朴上月)이 창종하였으며, 법화사상계에 속한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대각국사(大覺國師)를 종조(宗祖)로 삼았으며, 『법화경』을 근본경전으로 삼는다.
1945년 4월 20일 소백산에 구인사를 창건하였고, 1966년 8월 천태종 대각불교를 창립, 1967년 1월『불교재산관리법』에 의하여 천태종대각불교포교원으로 불교단체 등록을 하였다.
1969년 12월 대한불교천태종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현재의 종정(宗正)은 도용(道勇)이며, 총무원장은 춘광(春光)이다.
종지(宗旨)는 천태의 사상인 회삼귀일(會三歸一)·일심삼관(一心三觀)·원융불이(圓融不二)의 교리와 대각국사의 호국이념에 의한 불교관을 믿어 받들고, 참선과 염불로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 인격완성과 국민사상 통일, 사회정화에 공헌함을 목표로 삼는다.
종단기구는 종정 아래 총무원·감사원·종의회·원로원·참의원이 있고, 총무원 밑에 총무부·교무부·교육부·사회부·재무부·규정부·기획실을 두고 있으며, 상설기구로 재단법인 대한불교천태종·종전역경원·종책위원회·상벌위원회·고시위원회·학교법인 금강대학교가 있다.
신도회 조직으로는 전국중앙신도회와 그 아래 각 도·시·군 단위지부와 지회가 결성되어 있으며, 신흥종단 중 신도조직이 가장 조직적이며 방대하다.
교화사업으로는 1970년 1월『천태종약전』을 발간하였으며, 1971년『천태종성전』이 간행되었다.
최근 천태불교문화연구원을 설립하여 천태학연구 전문기관으로 육성중이며, 『천태학연구』라는 연구지를 발간하고 있다.
주요 행사로는 음력 4월 8일의 석탄절, 12월 8일의 성도절, 2월 15일의 열반절과 상월 초대 종정 열반기념행사 등이 있다. 포교사업으로 월별로 각 지방을 순회포교하며, 각 지부별로 신도회 자체의 정기법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주경야선(晝耕夜禪)을 수행신조로 삼아 모든 재원은 자체 임야를 개간하여 충당하며, 새마을사업과 사회공익사업에 앞장서고 있다. 2014년 현재 사찰 200여 개소, 신도수 170여만 명이다.
참고문헌
・ 『한국불교총람』(대한불교진흥원, 1998)
・ 『한국종교편람』(문화공보부, 1984)
⇨ 출처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1506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19930826(불기2537)(음0709) THU 11:00 대한불교 천태종 우면산 관문사 기공식
당시 2대 종정이었던 남대충 대종사가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참석한 기공식이었다.
■ 대한불교천태종(大韓佛敎天台宗)
■ 상월원각대조사 법어-대한불교 천태종 중창조
실상(實相)은 무상(無相)이고
묘법(妙法)은 무생(無生)이며
연화(蓮華)는 무염(無染)이다.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고
무생(無生)에 안주(安住)하여
무염(無染)으로 생활하면
그것이 곧 무상보리(無上菩提)요
무애해탈(無碍解脫)이며
무한생명(無限生命)의 자체구현(自體具現)이다.
일심(一心)이 상(常) 청정(淸淨)하면
처처(處處)에 연화(蓮華) 개(開)니라.
■ 觀門寺(관문사)
건립시기 : 1998년
성격 : 사찰
유형 : 유적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우면동 56, 서울특별시 서초구 바우뫼로7길 111
분야 : 종교·철학/불교
요약 : 서울특별시 서초구 우면산(牛眠山)에 있는 해방 이후에 창건된 대한불교천태종 소속 사찰.
☛ 역사적 변천
관문사(觀門寺)는 최근인 1988년에 대한불교천태종의 제2대 종정인 남대충 대종사가 현재의 우면동 부지를 매입하여 창건한 사찰이다. 1993년 7월에 사찰 이름을 관문사로 정하였고, 같은 해 10월 건물의 기공식을 가졌다.
5년간의 공사를 거쳐 1998년 10월 지하 4층, 지상 7층의 사찰 건물을 완공하고 낙성식 및 삼존불 봉안법요식을 가졌다.
2006년 9월에는 건물 내에 성보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성보박물관에서 소장했던 유물들은 2013년 8월에 단양에서 개관한 불교천태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상태이다.
☛ 내용
현대식으로 건축된 사찰 건물에는 종교 행사뿐만 아니라 문화와 학술행사를 치를 수 있는 공간이 복합되어 있다.
특히 제4~6층에 위치한 옥불보전은 각종 법회와 종단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고, 제7층의 대불보존에는 석가여래상, 관세음보살상, 대세지보살상, 상월조사 옥존상 등이 봉안되어 있어 예불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내에 있는 옥불대보탑은 높이 20.7m의 8각 10층 옥탑(玉塔)으로 2015년 10월에 조성한 것이다.
이 탑은 1962년 국보로 지정된 경천사지 10층석탑의 양식을 계승하여 제작하였다.
현재 관문사는 각종 법회와 불교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금강불교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합창단, 다도회, 거사회, 청년회 등 신도회 활동도 활발한 편이다.
☛ 출처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79213
■ 나의 하루
아침에 눈을 뜨면 지금도 살아 있음에 감사드리며
저녁 잠자리에 들 때면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 살게 해 주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19950101(음1201) SUN
德不孤
■ 國際(世界) 佛敎旗 와 WFB
國際(世界)佛敎旗(국제 불교기)는 불교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국제 불교기는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파랑, 노랑, 빨강, 흰색, 주황색으로 되어 있으며, 가장 오른쪽 열에는 5개색을 위에서 아래로 차례로 줄무늬로 되어 있다.
색은 각각 의미가 담겨있다.
불교기는 1950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세계 불교도 우의회(世界 佛敎徒 友誼會)'에서 만국공동의 불교기로 정식 승인되었으며, 현재 세계 불교국가의 불교단체에서 사용하고 있다.
원래 불교기는 1882년 영국인 불교도이면서 미국 국적을 가진 올코트(Colonel Henry Stell Olcott)대위가 창안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성도(成道)시에 성체에서 육종의 색광이 방출되는 것을 근거하여 일면육색기(一面六色旗) 를 설계하였다고 한다.
불교기의 5색의 가로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타내고 5색(청.황.적.백.주)의 세로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영원 불멸하다는 뜻을 상징 한다.
불교기에 사용한 색깔이 상징하고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청색 :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부처님의 법을 구하며 살아가는 힘을 의미하므로 정근과 지혜를 뜻한다.
- 황색 : 찬란한 부처님 몸의 빛과 같이 변하지 않는 마음을 의미하며 금강의 지혜를 뜻한다.
- 적색 : 대자대비한 법을 닦아 항상 쉬지 않고 수행에 힘쓰는 자비와 정진을 뜻한다.
- 백색 : 깨끗한 마음으로 온갖 악업과 번뇌를 없앤 청정의 지혜를 의미한다.
- 주황 : 수치스러움과 그릇된 길로의 꾀임에 잘 견디어 내는 인욕의 지혜를 뜻한다.
■ 세계불교도우의회(WFB: World Fellowship of Buddhists)
세계불교도우의회(WFB: World Fellowship of Buddhists)는 가장 크고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 불교 단체이다.
1950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27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설되었다.
본부는 태국에 있으며, 역대 회장은 모두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서 배출되는 등 상좌부불교(테라와다불교)가 가장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고 있지만, 모든 종파가 WFB에서 활동중이다.
미국,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와 유럽의 여러 나라 등 35개국에 지부가 설립되어 있다.
대한민국에는 1963년에 지부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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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불교도우의회의 역대 회장
현재 회장은 태국의 en:Phan Wannamethee이다.
1950년 - 1958년 : Dr. G.P. Malalasekera, 스리랑카
1958년 - 1961년 : Hon. U. Chan Htoon, 미얀마
1963년 - 1984년 : H.S.H. Princess Poon Pismai Diskul, 태국
1985년 - 1998년 : Prof. Sanya Dharmasakti, 태국
1999년 - 현재 : H.E. Phan Wannamethee, 태국
■ 국제 불교기(Flag of Buddhism-國際 佛敎旗)
■ 국제 불교기(Flag of Buddhism-國際 佛敎旗)
세계불교도우의회
█ 대한불교 천태종 총본산 소백산 구인사
■ 오늘 하루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하면 즐겁게 잘 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눈을 뜨는 매 순간마다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 내 생명을 잘 붙들고 있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버지 어머니가 무척이나 보고 싶다.
엄마가 해 주시는 집 밥이 먹고 싶다.
부모님이 날 낳아 길러주신 고향이 그립다.
20181212 WED
德不孤
■ 대한불교 천태종 우면산 觀門寺(Gwanmunsa)
서울특별시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대한불교 천태종의 사찰이다.
천태종 관문사 기공식
1993년 8월 26일에 진행된 관문사 기공식.
당시 2대 종정이었던 남대충 대종사가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참석한 기공식이었다.
1970년 천태종 중창조였던 상월원각대조사가 서울지부 신도회를 구성해 큰 천태사원을 세우라는 유지를 받들어 시작했다.
1988년 6월 1일, 당시 2대 종정이었던 남대충 대종사의 증명으로 서울 서초구 우면동 56번지 일대 1만 3,000여㎡(4,200평) 매입을 시작으로 불사에 착수했다.
1993년 5월에는 지상 7층 지하 4층, 연건평 2만 1,000여㎡(6,539평) 규모로 기본 설계가 완료됐고, 7월 10일 사찰명을 현재의 관문사로 명명해 당시 총무원장이었던 운덕 스님을 초대 주지로 임명하면서 불사에 진력하도록 했다.
이후 8월 26일에 기공식을 봉행해 건립에 착수했고, 1996년 11월 3일 법당 상량식을 거쳐 1997년 12월 31일에 불사를 마쳤다.
1998년 1월 18일, 옥불보전 입주식을 가진 뒤, 10월 11일에는 낙성식과 삼존불 봉안법회를 봉행하며 관문사를 전 세계에 알리게 된다.
땅 매입 당시 대충 대종사는 사찰 이름을 초우사(草牛寺)로 하명했으나, 감사원장이었던 춘광 스님은 당시 우면산의 지형을 보시고 초우사라고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기공식 이전에 현재의 관문사로 바꾸었다고 증언했다.
⇨ 출처 : https://namu.wiki/w/%EA%B4%80%EB%AC%B8%EC%82%AC
█ 대한불교 천태종 우면산 관문사 대불보전 삼존불(7층)
█ 용서와 화해
인간관계는
서로가 편하냐, 불편하냐의 판단과 결정에 따른 실천이다.
용서가 신(神)의 영역이라면 화해는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언제 인연(因緣)의 끝과 이별이 올지도 모르는데 굳이 서로 불편하게 살다 갈 필요가 있을까?
20230604 SUN 12:12
德不孤
■ 20230329 WED 大韓佛敎 天台宗 牛眠山 觀門寺(우면산 관문사)
■ 기적
있는 대로 보고 보이는 대로 주어지는 대로 살자.
기적(奇跡)은 아무 때나 일어나지 않고 누구에게나 함부로 주어지지도 않는다.
20190101 TUE
德不孤
█ 대한불교 천태종 우면산 관문사 옥불보전(4~6층)
█ 대한불교 천태종 불곡산 대광사 東洋 最大 彌勒大佛
■ 대한불교 천태종 중창조 상월원각대조사
속명은 박준동(朴準東)이라고 알려졌지만 최동순이 고증한 바에 따르면 박준각(朴準角)이다.
법명이 상월(上月), 법호가 원각(圓覺)이다.
불교계에서는 보통은 법호를 앞에, 법명을 뒤에 넣어 호칭하므로 '원각 상월'이어야 자연스럽지만, 천태종에서는 '상월 원각'이라고 부른다.
500년간 맥이 끊겨진 한국 천태종을 중창한다는 표어를 내걸고 3대지표인 애국불교ㆍ생활불교ㆍ대중불교를 전개해 중생의 구제를 실천하였고,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참선 수행을 하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의 종풍을 세웠음.
교리는 천태종의 법맥을 이었으나 주경야선 수행을 통하여 나 자신을 닦아가는 수행으로써의 역할을 더욱 중요시했다.
⇨ 출처 https://namu.moe/w/%EC%83%81%EC%9B%94%EC%9B%90%EA%B0%81%EB%8C%80%EC%A1%B0%EC%82%AC
■ 대한불교 천태종 우면산 觀門寺(Gwanmunsa)
서울특별시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대한불교 천태종의 사찰이다.
천태종 관문사 기공식
1993년 8월 26일에 진행된 관문사 기공식.
당시 2대 종정이었던 남대충 대종사가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참석한 기공식이었다.
1970년 천태종 중창조였던 상월원각대조사가 서울지부 신도회를 구성해 큰 천태사원을 세우라는 유지를 받들어 시작했다.
1988년 6월 1일, 당시 2대 종정이었던 남대충 대종사의 증명으로 서울 서초구 우면동 56번지 일대 1만 3,000여㎡(4,200평) 매입을 시작으로 불사에 착수했다.
1993년 5월에는 지상 7층 지하 4층, 연건평 2만 1,000여㎡(6,539평) 규모로 기본 설계가 완료됐고, 7월 10일 사찰명을 현재의 관문사로 명명해 당시 총무원장이었던 운덕 스님을 초대 주지로 임명하면서 불사에 진력하도록 했다.
이후 8월 26일에 기공식을 봉행해 건립에 착수했고, 1996년 11월 3일 법당 상량식을 거쳐 1997년 12월 31일에 불사를 마쳤다.
1998년 1월 18일, 옥불보전 입주식을 가진 뒤, 10월 11일에는 낙성식과 삼존불 봉안법회를 봉행하며 관문사를 전 세계에 알리게 된다.
땅 매입 당시 대충 대종사는 사찰 이름을 초우사(草牛寺)로 하명했으나, 감사원장이었던 춘광 스님은 당시 우면산의 지형을 보시고 초우사라고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기공식 이전에 현재의 관문사로 바꾸었다고 증언했다.
⇨ 출처 : https://namu.wiki/w/%EA%B4%80%EB%AC%B8%EC%82%AC
█ 대한불교 천태종 우면산 관문사 옥불보전(4~6층)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법화경
시대 : 조선
유형 : 문헌
분야 : 종교·철학/불교
요약 : 우리나라 천태종(天台宗)의 근본이 되는 불교 경전
7권 28품. ‘법화경’이라 약칭하기도 한다.
천태종(天台宗)의 근본 경전으로, 불교전문강원의 수의과(隨意科) 과목으로 채택되고 있다.
『화엄경(華嚴經)』과 함께 한국불교사상을 확립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 역사적 변천
『법화경』은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불교경전 가운데 가장 많이 간행된 경전이다.
이 『법화경』이 언제부터 유통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유사』 권3 대산오만진신조(臺山五萬眞身條)에 이 경의 이름이 보이고 있고, 의천(義天)의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 이에 대한 경흥(憬興)의 소(疏), 태현의 고적기(古迹記), 도륜(道倫)의 소, 원효(元曉)의 종요(宗要)와 방편품요간(方便品料簡), 의적(義寂)의 강목(綱目), 순경(順憬)의 요간(料簡) 등 신라인의 연구 주석서가 보이고 있다.
이로써 삼국시대부터 『법화경』이 널리 유통되어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는 금자원(金字院)·은자원(銀字院) 등 사경 전문기관이 설치되어 금·은으로 대장경을 필사하기도 하였는데, 초기부터 『법화경』에 대한 금니(金泥)·은니(銀泥)의 사경(寫經)도 성행하였다.
이 시대의 사경으로는 1275년(충렬왕 1)에 선린(禪隣)이 필사한 『법화경보문품( 法華經普門品)』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 『법화경』 간행에 대한 기록은 1020년(현종 11)에는 현종이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대반야경(大般若經)』과 함께 『법화경』을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에 김제 금산사에서 1083년에서 1097년 사이에 『법화현찬(法華玄贊)』 등을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백련사원묘국사중진탑비(白蓮寺圓妙國師中眞塔碑)에 국사가 『법화경』을 천만 번 염송한 뒤 『법화경강요(法華經綱要)』를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창 문수사(文殊寺)에서 간행한 『법화경』의 발문에 보면 1340년 요원(了圓)이 편찬한 『법화영험전(法華靈驗傳)』이 만의사(萬儀寺)에서 간행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고종 때는 고종 자신이 『법화경』을 숭상하였으며, 이규보(李奎報)는 『법화경』을 암송할 정도로 법화 공덕사상이 널리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간행본이 현재까지 전해 오는 것은 1236년에 정안에 의해서 간행한 것을 비롯하여 몇 종에 지나지 않지만, 『법화경』 간행은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는 배불숭유정책(排佛崇儒政策)으로 사찰경제가 많은 핍박을 받았으나, 불교경전의 간행은 사찰이 중심이 되어 끊임없이 계승되어 왔다. 조선시대의 『법화경』 간행은 경전 독송이나 교학 연구라기보다 경전신앙(經典信仰)에 의해 시주자들의 공덕을 위하여 간행된 경향이 짙다. 고려 때의 『법화경』 유통에 대한 공덕사상이 조선 초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금은자(金銀字)의 법화경사경(法華經寫經)이 여러 번 이루어졌다.
세조 때는 간경도감이라는 국가기관을 설치하여 불교경전을 간행하였는데, 이 때 『법화경』에 관한 것만도 3종이나 되었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판본을 살펴보면 정천익(鄭天益)의 시주로 1399년에 간행한 것을 비롯하여, 전국 각 사찰에서 간행한 것으로 간행 기록이 뚜렷한 것만도 117종이 전해 오고 있다.
이들 판본을 살펴보면 1행에 13자, 17자, 18자, 20자가 대부분이다.
이 중에서 20자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성달생(成達生)이 필사한 1405년(태종 5) 안심사(安心寺) 간행본과 1445년(세종 27) 성달생·임효인(任孝仁)·조절(曺楶) 등이 공동으로 필사하여 간행한 것, 세조 연간에 황진손(黃振孫)이 필사로 간행한 것을 번각(飜刻)한 것이 대부분이다.
☞ 내용
『묘법연화경』은 예로부터 모든 경전들 중의 왕으로 인정받았고, 초기 대승경전(大乘經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불경이다.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여러 민족에게 애호되었던 이 경은 기원 전후에 신앙심이 강하고 진보적인 사람들에 의해 서북 인도에서 최초로 소부(小部)의 것이 만들어졌고, 2차에 걸쳐 증보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종류의 한역본 중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8권이 가장 널리 보급, 유통되었다.
28품으로 된 이 경은 그 전체가 귀중한 가르침으로 되어 있어서 어느 한 품만을 특별히 다룰 만큼 우열을 논하기 어렵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제25품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이 관음신앙의 근거가 되어 특별히 존숭을 받아 왔고, 따로 『관음경(觀音經)』으로 편찬되어 많이 독송되었다.
또한 제11품 「견보탑품(見寶塔品)」은 보살 집단의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불탑숭배(佛塔崇拜)사상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다보탑과 석가탑 조성에 모체가 되기도 하였다.
제15품 「종지용출품(從地涌出品)」에서는 대지하(大地下)의 허공 속에 살고 있던 보살이 대지의 틈바구니에서 솟아오르듯이 나타나 허공에 서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학자들은 이 광경을 오랫동안 표면에 나타나지 못하였던 보살집단이 강력한 세력으로 출현하게 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허공에 선다는 표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입장에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전통적 교단에서 오직 역사적 인물인 석가모니불만을 숭배하는 피상적 견해를 탈피하여, 무량한 생명의 상징인 불(佛)을 보려는 보살들의 깊은 성찰의 결과를 선언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제16품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은 영원한 생명, 근원적인 생명으로서의 부처를 체증(體證)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보살들의 새롭고 깊은 불타관(佛陀觀)이 반영되어 있다.
부처는 언제나 이 사바세계에 머무르면서 중생을 교화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성불(成佛)하게 한다는 지극한 이상이 담겨 있고, 이것이 우리나라 법화신앙의 근거로 크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이 『법화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으로 평가되고 전승된 것은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이다.
삼승(三乘)이 결국은 일승(一乘)으로 귀일(歸一)한다는 이 사상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성문(聲聞)과 연각(緣覺)과 보살(菩薩)의 무리들에게 맞게끔 갖가지의 법(法)을 설하였지만, 그것이 모두 부처의 지견을 열어 보이고 깨달음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 시방불토(十方佛土)에는 오직 일불승(一佛乘)의 법만이 있음을 밝힘으로써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이 회삼귀일사상은 『화엄경』의 원융무애사상(圓融無碍思想)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꽃을 피워 한국불교의 전통을 회통적 귀일불교(會通的歸一佛敎)로 이끌었고, 한민족의 화사상(和思想)에도 큰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일부 학자들은 신라의 삼국통일이 이 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 회삼귀일사상은 제2품 「방편품(方便品)」, 제3품 「비유품(臂喩品)」, 제4품 「신해품(信解品)」, 제5품 「약초유품(藥草喩品)」, 제7품 「화성유품(化城喩品)」 등에서 높은 문학성을 지닌 불타는 집의 비유, 방탕한 자식의 비유, 초목의 비유, 주정뱅이의 비유 등을 통하여 그러한 입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 경의 유통을 위하여 간행된 판본은 불경 가운데서 가장 많은 횟수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경의 중요성과 함께 경전 간행의 영험에도 힘입은 바 크다.
현재 알려지고 있는 한국인 찬술 주석서는 다음과 같다
⇨ 출처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18856
█ 대한불교 천태종 우면산 관문사 법화대보탑
█ 대한불교 천태종 우면산 관문사 대불보전(7층)
█ 국보 234호 감지은니 묘법연화경
█ 과천시 용운암 마애승용군(磨崖僧容群)
█ CAMERA : SONY DSC-HX80(똑따기 사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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