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24일 프란치스코 로마 교황이 수요 일반 알현에서 러시아의 극우 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의 20대 딸 다리야 두기나의 죽음을 "전쟁의 광기에 희생당한 무고한 사람들 중의 하나로, 불쌍한 여인"이라고 애도했다. 구 소련권 국가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가톨릭 신도가 10%(12%)를 넘는 국가인 우크라이나에게 교황의 이날 발언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 안드리 유라쉬 주교황청 우크라이나 대사가 즉각 SNS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올렸고, 외신은 바티칸에 파견된 주교황청 대사가 교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다리야 두기나는 교황의 수요 일반 알현 전 주말인 20일 밤에 일제 토요타 SUV 차량을 몰고 모스크바 외곽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갑자기 차량이 폭발하면서 현장에서 사망했다.
수사 당국의 두기나 자동차 폭발 현장 조사/영상캡처
생전의 두기나(위)와 용의자 은신처로 추정된 곳/캡처
그로부터 7개월여가 지난 2일 밤 러시아의 유명 종군 블로거 브래들렌 타타르스키(본명 막심 포민)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카페에서 '팬 미팅'을 갖던 중 한 여성 팬(?)이 선물한 자신의 흉상(조각상)이 폭발하면서 사망했다. 유력한 용의자인 20대 여성 다리야 트레포바는 긴 머리를 자르는 등 변장하고 현장 근처 아파트에 숨어 있다가 잡혀 테러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그녀는 최대 20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약 7개월의 공백이 있지만, 두 폭발 사건은 누가 봐도 전문가의 소행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달리던 일제 SUV 차량이, 선물로 받은 조각상이 결정적인 순간에 폭발하는 것은 아무나 조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반테러위원회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 '테러 공격'으로 규정할 만하다.
특히 20대 여성 두기나가 탄 차량은 아버지 알렉산드르 두긴의 소유였다. 사건 당일 저녁에 열린 우익 인사들의 행사에 딸과 함께 참석한 아버지는 행사가 끝난 뒤 지인의 차량을 탄 천운(天運)으로 참화(慘禍)를 면했을 뿐이다. 알렉산드르 두긴이나 브래들랜 타타르스키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한 초강경파로 분류됐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에 따르면 사건 이튿날 체포된 다리야 트레포바가 비록 테러 혐의로 기소됐지만, 지금까지 나온 정보와 정황으로는 타타르스키에 대한 살해 계획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 근거는 현장을 찍은 영상이다.
조각상을 전달하고 뒤로 돌아서 나가는 트레포바(위, 얼굴)과 가까운 자리에 앉아 폭발 순간 얼굴을 감싸쥐는 모습/영상 캡처
그녀는 조각상을 타타르스키에게 전달하고 나가려다 자리를 권하는 바람에 주인공과 가까운 곳에 앉아 행사 진행을 지켜봤다. 만약 조각상 안에 폭발물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자리를 권하더라도 무슨 핑계를 대든 빠져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도피했을 것이다. 영상을 보면, 폭발 순간 그녀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녀는 체포된 뒤 폭발장치가 아니라 도청장치가 설치된 것으로 알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200g의 폭발물이 들어 있었다.
그녀가 사전에 알았든 몰랐든, 폭발물을 전달한 당사자가 잡혔으니, 그 배후를 캐는 것은 시간 문제다. 예상대로 러시아 FSB는 지난 13일 발표한 1차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카페 테러의 배후에는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있고, 트레포바에게 폭발물은 직접 제공한 사람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유리 데니소프(36, 1987년생)"라고 발표했다. 문제의 조각상 밑바닥에 설치된 '안전 장치'를 제거하면, 폭발물을 원격으로 폭파시킬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트레포바는 조각상을 박스에 넣어 건네기 전에 '안전 장치'를 제거한 것으로 추정됐다.
타타르스키에게 전달된 조각상(위)와 조각상을 박스에 넣는 순간 폭발했다/영상 캡처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트레포바는 FSB의 심문 과정에서 한 반정부 활동가(유리 데니소프)로부터 키예프(키이우)에 있는 한 매체의 편집자로 채용시켜준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녀가 처한 여건에서는 아주 솔깃한 제안이었다.
트레포바는 남편(드미트리 릴로프)와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후 반전 시위에 참가했다가 10일간 구류처분을 받는 전력이 있고, 남편은 작년 가을 부분 동원령이 발표되자, 해외로 떠난 상태였다. 그녀도 동원령 발령 당시, 엑소더스(대탈출)가 벌어진 그루지야(조지아)로 넘어 갔다가 돈이 떨어지는 바람에 6개월만에 러시아로 다시 돌아왔다.
솔깃한 제안 뒤에는 함정(?)이 있었다. 러시아 당국의 '프로파간다(선전 선동) 캠페인'에 맞서 싸울 의지가 있는 지를 시험하는 과정이었다. 우익 세력들의 구심점으로 알려진 모스크바의 '리스트바(Листва) 서점'에서 타타르스키를 만난 뒤 보고서를 내는 것이 첫번째, 모스크바에서 택시 운전자를 통해 선물(문제의 조각상)을 받는 게 두번째 시험이었다. 물론 그 과정은 모두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이뤄졌다. 리스트바 서점은 두기나 폭사 사건 조사 과정에서도 나온 바 있다.
두 가지 시험을 통과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그녀에게 내려진 마지막 미션은 타타르스키 팬미팅에 가서 조각상을 전달하라는 것. 동시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항공권을 구매하라고 했다.
트레포바 SNS 사진
도피하기 위해 머리를 자른 모습. FSB 체포 이후 사진
리스트바 서점을 방문한 트레포바. CCTV에 찍힌 모습/사진출처:스트라나.ua
FSB에 의해 배후 인물로 밝혀진 유리 데니소프가 등장하기 전까지, 현지 언론들은 그녀와 연락을 취한 사람을 로만 포프코프 전러시아볼쉐비키당 모스크바 지부 전 지부장으로 추정했다. 그는 지난 2020년 벨로루시에서 벌어진 민스크 반체제 가두 시위에 참가했다가 15일간 체포된 언론인 출신이었다. 키예프에 머물고 있는 그가 트레포바에게 편집자 일자리를 미끼로 그녀를 끌어들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포프코프는 이같은 추정 보도를 강력히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트레포바는 고등학교 재학(쉬콜라 10~11학년) 시절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도 재혼하는 바람에 홀로 남겨졌다.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종합대학 의학부에 입학했지만, 미술(조각)과 언론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웃소싱 패션 디자이너로, 또 빈티지 패견 매장의 관리자로 일하다 남편과 함께 반정부 성향의 야당에 가입했고 최근 몇년간 반정부 집회에도 열심히 참석했다. 그같은 행적과 경제적인 생활고, 언론에 대한 꿈 등이 그녀를 카페 폭발 사건으로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폭발 사고 직후 현장을 빠져나와 머리를 자르는 등 변장을 시도하고 당초 약속대로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날 준비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풀코보 공항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폭발사건 발생 3시간 후인 저녁 8시경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해 "자신은 이용당했다"며 울분을 토한 뒤 연락을 완전히 끊었다는 게 친구의 증언이다. 그녀는 이후 FSB에 체포된 것으로 짐작된다.
러시아 FSB:종군 블로거 타타르스키 폭사사건의 공범은 우크라이나인 유리 데니소프/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이 사건의 실체가 FSB가 발표한 그대로라고 믿기는 쉽지 않다. 트레포바는 '테러'에 이용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치더라도, 그녀에게 폭발물을 건넸다는 유리 데니소프가 진짜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나 (사보타주 주도) 특수부대와 연결돼 있을까? 아니면 러시아내 반체제 그룹, 혹은 우크라이나 과격 민족주의 세력의 지시를 받았을까?
FSB 중심의 러시아 반테러위원회는 사건 초기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반푸틴 야당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반부패재단'의 협력을 얻어 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트레포바가 참석한 반정부 시위는 나발니 지지자들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FSB가 그녀를 나발니, 반부패재단과 연결하는 이유다. 하지만, 나발니의 반부패재단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카페 폭발사건에 대한 연루를 적극 부인했다. 수감돼 있는 나발니는 애꿎은 피해자가 된 셈이다. 실제는 그는 이 사건으로 지난 7일 다시 징벌방(독방)에 들어갔다고 한다.
배후로 지목된 우크라이나 측은 이 사건을 러시아 내부의 세력 다툼으로 본다. 스트라나.ua에따르면 미하일 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은 사건 발생 직후 "항아리에 갖힌 거미는 서로 잡아 먹는다"며 "전쟁을 계기로 시작된 러시아 내부의 정치 투쟁이 이번 폭파사건으로 구체화했다"고 주장했다. 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테러 국가'로 낙인찍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같은 반응은 다리아 두기나 자동차 폭파 사건의 '학습효과'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서방 언론들은 두기나 폭사 배후에는 우크라이나의 일부 정부기관(정보기관?)이 개입된 것으로 미국 정보기관이 결론을 냈다고 보도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에서 보듯, 국제사회에도 부정적인 여론을 남겼다.
타타르스키의 영결식. 군악대(?)의 연주 속에 관이 옮겨지고 있다/현지 매체 타스통신 영상 캡처
미국의 전쟁연구소(ISW)도 우크라이나의 편을 들었다. 폭사한 타타르스키가 친 '와그너 그룹'의 성향을 갖고 러시아군 지휘부를 비판해 왔다는 게 한 이유다. 러시아 군부에 의해 제거되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이다. '팬 미팅'도 '와그너 그룹'의 수장 프리고진이 최근 수개월간 모스크바와 상트페레르부르크에서 진행해온 전쟁 토론 모임인 ‘사이버 Z 전선’의 일환으로 개최됐다. 장소도 프리고진이 소유한 카페였다. 프리고진도 참석한다는 얘기도 돌았다고 한다.
정작 프리고진은 우크라이이나 급진세력의 돌출 행동으로 보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이 사건에 개입했다고 보지 않는다"며 "일부 급진파 그룹이 주도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체포된 트레포바의 입에 의존해서는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규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꼭두각시'로 이용됐다면, 깊숙한 배후 인물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기나 자동차 폭발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뒤에나 전모가 밝혀질 것으로 추측된다.
푸틴 대통령은 사건 직후 타타르스키에게 '자신의 직업군에서 진짜 용기를 보여준' 공로로 '용맹훈장'을 추서했다. 타타르스키는 닷새 후인 8일 수많은 시민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모스크바의 트로예쿠로프스키 묘지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