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시랑산(侍郞山)은 제천시 백운면과 봉양읍의 경계에 자리한 해발 691m의 산이다. 시랑산은 오랜 세월 겨레의 심금을
울린 애창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 의 무대인 박달재가 자리한 산이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님아."로 시작되
는 노랫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박달재가 천등산을 넘는 고개로 잘못 알고 있거니와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충주를 지나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이 넘던 고갯길 가운데 천등산을 넘던 고갯길은 '다릿재'요, 박달선비
와 금봉낭자의 애틋한 사랑 전설이 전하는 박달재는 분명 오늘 소개하는 시랑산을 넘는 산길이다. 실제로 천등산(807m)
을 넘는 고개는 다릿재이며,박달재는 다릿재에서 동쪽으로 약20km나 떨어진 시랑산을 넘고 있다.
산행 들머리는 제천시 백운면 모정1리 버스정류소이다.
정류소옆에 선 시랑산의 등산안내도를 살핀 후 산길을 따라 오른다. 웃자란 마른풀 줄기와 가시덩굴이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산길은 가을걷이를 끝낸 들판보다 더욱 쓸쓸하다. 발목이 푹푹 빠지는 지능선을 허덕허덕 오른다. 나뭇가지
사이로 흘러가는 완사천을 굽어보며 40여분 오르면 주능선에 올라선다. 남쪽의 애련리로 이어지는 주능선에는 아름
드리 소나무가 드문드문 길을 지킨다.
정수리에 올라서면 넓지않은 정수리에는 2000년 12월 28일 제천시에서 세운 오석으로 만든 정상석이 놓여 있다.
산림청의 헬기로 정상석을 옮긴 사연이며 애련리와 박달재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으며, 녹이 쓴 정상팻말도 나뭇가지
에 걸려 있었다. 눈꽃과 상고대가 곱게 피어난 정수리에서 북쪽으로 하산길을 이어간다.
조금 내려가면 쉬어가기에 적당한 널찍한 공터를 만나게 된다. 봄이나 가을이면 둘러앉아 간식을 권하며 산꾼들의
우정을 나누기에 안성맞춤인 명당이다. 조금 더 내려가면 바위지대를 만나게 된다. 눈이 쌓인 겨울에 미끄러지면 다
치기가 쉽상이니 조심조심 지나가야 한다. 조금 더 내려가면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가 마주서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일주문을 지나게 되고, 북쪽 산길을 계속 이어가면 정상을 출발한 지 50분이면 단군비석에 도달한다.
'국조단둔대황조성령(國祖檀君大皇祖聖靈), 삼선사령영사령(三仙四靈令司靈), 백운산성화신령(白雲山聖化神靈)
국사산왕산신지령(國祠山王山神之靈)' 이라고 쓰여진 세 개의 비석이 몇 그루의 노송 및 바위와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곳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그 유명한 박달재에 내려서게 된다. 기나긴 세월동안 충주와 제천을 잇는 국도로서 숱한
애환이 서린 박달재이건만 이제는 고개 밑으로 시원스런 터널이 뚫려 인적이 드문 쓸쓸한 고갯길이 되고 말았으니
격세지감을 절로 느끼게 된다. 드넓은 고개마루에는 박달재관광안내도와 박달재의 사연을 적은 몇 개의 비석, 서울
올림픽 성화봉송기념비 등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거니와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박달선비와 금봉낭자의
연인상이다.
세워진 비석과 안내도를 두루 살펴보면. 제천시에서 세운 안내도에는 김취려 장군이 걸안군을 무찌른 해가 1217년
(고종 4년)으로, 별초군이 몽고군을 격퇴한 해가 1258년(고종 45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의 옛땅으로 '밝뫼
고개' 라는 뜻의 고구려 말에서 유래한 이 고개. 800년 세월을 거슬러 오르면 이 고갯마루야말로 수천년의 겨레 삶
을 지켜낸, 강인한 민족혼을 유감없이 발휘한 빛나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조선중엽 장원의 부푼 꿈을 안고 한양으로 가던 경상도 젊은 선비 박달은 고개 아래 촌가에 하룻밤 유하려다 길손
을 맞이하는 그봉이의 순수하고 청초한 모습에 정신을 빼앗기고, 금봉도 박달의 준수하고 늠름한 모습에 잠을 못
이루고 달밤을 거닐다가 역시 금봉을 그리면서 서성이던 박달을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몇날을 머물며 금봉과 사랑을 속삭이던 박달은 과거에 급제한 후에 혼인을 하기로 언약하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나고 그날부터 금봉은 박달의 장원급제를 서낭신께 빌었으나 과거가 끝나고도 박달의 소식이 없자 크게 상심하여
고개를 오르내리며 박달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다가 한을 품고 삶을 거두고 말았다.
한양에 온 박달도 과거준비를 잊은 채 금봉이를 그리는 시만 읊다가 낙방을 한 후 금봉이를 보기가 두려워 차일피일
미루다 금봉의 장례 사흘 후 되돌아와 금봉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땅을 치며 목놓아 울다가 언뜻 고개를 오르는 금봉
의 환상을 보고 뒤쫓아 가서 와락 금봉을 끌어 안았으니 금봉의 모습은 사라지고 박달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고 말
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실제로 천등산(807m)을 넘는 고개는 다릿재이며,박달재는 다릿재에서 동쪽으로 약20km나 떨어진 시랑산을
넘고 있다. 시랑은 치악산맥 남대봉에서 서남쪽으로 가지를 쳐 내려온 능선이 구학산(970m)을 솟구친 후 지금의 박
달재에서 잠시 맥을 가라앉혔다가 마지막으로 솟구친 산봉우리가 바로 시랑산이다. 해발 453m인 박달재에 이르면
우선 분위기가 시끌벅적하다. 왜냐하면 고갯마루 휴게소에서 동쪽 고갯마루 끝에 이르면 널찍한 주차장이 있는 서원
휴게소가 맞이하는데 이곳이 시랑산의 출발기점이다. 박달재 정상에 있는 휴게소에 주차후 산행.
#산행코스
제천 백운면 모정1리 버스정류장 앞에 선 시랑산 등산 안내도 뒤로 밭둑길을 따라가면 왼쪽으로 농가를 끼고 등산
길이 시작된다. 시랑산 등산안내도 뒤 밭둑길을 따라 수렛길을 지나 동녘으로 이어진 지능선을 40분 오르면 주능선
에 올라선다. 이곳에서 정북녘(왼쪽)으로 꺾어 10분 가면 두 가지를 우람하게 벌린 왕소나무를 만나게 되고, 다시
20분이면 정수리에 도착된다.
하산길은 정북녘으로 열려있다.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인 공터를 지나, 10분이면 조심스런 바위지대를 통과하게 된다.
계속 북녘 능선을 이어가면 전신철탑과 철조망을 두른 작은 중계탑을 지나 단군비석에 도달한다(약 50분). 이곳에서
박달재 고갯마루까지는 약 13분이 소요된다.
*모정1리 버스정류장 - 동쪽 지능선 - 주능선 - 정상 - 박달재 ( 약 3시간 )
*서원휴게소 - 다군비석 - 정상 - 갈림길 - 모정리 정류장 (거리 6.5km,3시간 30분)
*서원휴게소 - 다군비석 - 정상 - 갈림길 - 원매령마을 (거리 4.7km,2시간 50분)
#들머리안내
*충주 방면에서 중부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충주에 도착, 38번 국도를 따라 제천방향으로 달리면 충주에서
40분 거리의 박달재 정상에 닿을 수 있고,중앙고속도로를 경유시는 제천I.C를 통과 충주방면, 봉양읍을
경유 박달재에 닿는다. [한국의 산천]
+++++++++++++++++++++++++++++++++++++++++++++++++++++++++++++++++++++++++++++++++++
#참고 사이트 : 시랑산 [제천시]
시랑산 [산림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