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복의 약속이 시작되다
창 22: 15~24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아브라함 친척의 족보
20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21 그의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형제는 부스와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과
22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23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24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험이 끝이 났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요구 앞에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바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테스트가 끝이 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이 원하는 기준의 믿음이었습니다. 순종보다 더 확실한 믿음이 없고 순종보다 더 큰 믿음은 없습니다. 축복은 순종했을 때 주어집니다. 시험을 통과해야 진급할 수 있고 시험에 합격해야 대학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시험을 치루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에 따라서는 밤을 새는 일도 있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시험에 통과한 사람에게는 기쁨과 영광이 있습니다. 축복은 믿음의 시험에 합격하고 순종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여러분도 믿음의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랍고 아름다운 축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15~1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로부터 두 번 째로 나타납니다.
여호와의 사자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천사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기 위해 칼을 내리치려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천사는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처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삭을 죽이는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정도를 알아보는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주머니 속에 있는 돈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달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느냐, 자식이라도 포기할 수 있느냐’라고 질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믿음을 보았다 내가 네 믿음을 보았으므로 어린양을 준비했노라’그 어린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두 번 째, 15절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두 번 째 아브라함을 불러’라고 되어 있는데 천사가 나타난 이유는 축복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약속을 신뢰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16절과 17절에서 우리는 몇 가지를 배울 수 있는데 첫째는 천사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겠다’고 표현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바를 바꾸시지 않는 분입니다.
사람의 특징은 배신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을 지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한계가 있고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잘 지키고 싶어하지만 불완전한 존재요, 죄인이기 때문에 약속을 끝까지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보증하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가 한 말을 자신이 보증하겠다고 말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증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몇 천년이 지나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이름이 없고 더 능력있는 분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6장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이 말씀은 아브라함에게만 주는 복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주는 복인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를 복주고 복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하며’
이 약속은 내 이름을 걸고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이 약속의 내용은 17절에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내게 네게 복을 주겠는데 네 자녀를 번성케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위대한 순종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위대한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은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그 자녀의 자녀까지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하게 해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사실 처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너는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네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고 이름을 창대케 하고 가는 곳마다 복의 근원이 되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는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또 나타나셔서 ‘놀라지 말고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큰 방패와 상급이라’고 말씀하시며 아브라함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하늘의 별을 보여 주면서 ‘네가 이 하늘의 별을 셀 수 있을 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는 없었습니다.
백세가 될 무렵에 하나님은 또 한 번 나타나서 격려하며 위로합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라 내가 내 약속을 지킬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후에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이삭이 태어났고 이삭이 번제의 제물로 죽을 뻔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시 살려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이제 네 씨가 바다의 모래알 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하늘의 별은 약 3천개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없는 별들이 오히려 더 많아 아마도 별을 다 셀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수많은 별들처럼 자녀들을 번성케 하실 것이며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합니다. 하나님은 ‘내 이름으로 한 내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질것을 보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참된 복은 이것에 있지 않습니다. 건강하면 좋지만 건강이 복의 전부는 아닙니다. 부자가 되면 좋습니다. 가난한 것보다 좋지만 부자가 되는 것이 복의 전부는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좋지만 복의 전부는 아닙니다. 진정한 복은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고 자녀가 잘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자녀를 얻었습니다. 그 자녀는 엄청나게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 자녀 가운데 먼 훗날 메시아가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복은 물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전하는 것’이 참된 축복입니다. ‘네 씨 가운데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태어날 것’ 때문에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을 보면 최초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고 너는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메시아가 오면 그 원수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메시아가 오면 대적의 문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메시아가 오면 모든 저주가 끊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문들아 머리 들어라
저는 지난 주간에 오사카를 다녀왔습니다. 오사카의 한 비지니스맨이 3년 전에 예수님을 영접했고 그 아내가 예수님을 잘 믿는 한국인이었습니다. 그 분이 부인을 따라 한국을 잠깐 오게 되어 우리 교회에서 4부 예배를 드리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며 충격을 받고 환상을 보며 오사카에도 온누리교회와 같은 교회가 세워지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 오사카에 6층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약 3억엔정도의 돈을 우리교회에 기증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에게 3년 만에 1천명의 성도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오사카에 가게 되었습니다.
오사카에 도착해서 하루 밤을 지내고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오사카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면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기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날도 여전히 오사카의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가끔 한두사람이 지나가기는 했지만 거의 사람이 없었습니다. 약 30분 정도 후에 저는 제가 걷고 있는 길 건너편에 어떤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무언가 열심히 중얼거리며 대문을 만나면 그곳을 향해 손을 펼치고 절을 향해서도 손을 펴서 한참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김사무엘목사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놀라서 불렀더니 제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얼마후에야 저를 발견하고 길을 건너왔습니다. 김사무엘목사님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큐티를 하는데 시편 24편을 묵상하다가 성령이 임하여서 거리로 뛰어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그 시편 24편은 바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셀라)
그 말씀을 모두 외운 후에 오사카의 모든 문들이 열리는 환상을 보았답니다. 그래서 흥분이 되어 오사카를 걸어 다니며 문들을 향해 기도한 것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도, 건강한 것도, 성공하는 것도 축복이지만 영광의 왕인 메시아를 만나는 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그 씨가 대적의 문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고 만나 누리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믿게 된 것이 축복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예수를 믿게 될 것이고 민족이 예수를 믿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대적의 문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준 복이 바로 이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네 자녀로 말미암아 온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녀입니다.
왜냐하면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의 물줄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복이 역사할 줄 믿습니다.
저는 ‘나 만난 사람은 모두 복받을 지어다’ 라는 영적 자부심이 있습니다. 여러분 만난 사람이 모두 복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똑똑하고 잘나서가 아니라 여러분 안에 예수님과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축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고 기쁨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어 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개인이 바뀌었습니다. 역사가 바뀌고 민족이 바뀌고 가정이 바뀌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메시아가 온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복이기 때문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아브라함은 사환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에게 구입했던 그 우물가로 돌아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하나님이 지시한 모리아땅 한 산으로 갔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환에게 ‘내가 아이와 함께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논리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삭을 죽이러 가는 길이었는데 그 이삭을 다시 데리고 돌아온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믿음을 가지면 부활신앙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을 죽이러 가지만 이삭은 다시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죽어도 산다’는 부활신앙을 갖습니다. ‘나는 망하지 않고 이것이 끝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퍼도 웃을 수 있고, 절망가운데에서도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누구도 절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포기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19절에서 아브라함은 다시 돌아왔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이 일 후에 혹이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밀가가 그대의 동생 나홀에게서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그 후에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오래전에 헤어졌던 둘째 동생이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홀은 아브라함의 동생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 나홀, 하란이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셋째 아들 하란은 일찍 죽었는데 그 하란의 아들이 롯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셋째 동생의 아들 롯을 데리고 믿음의 여행을 떠납니다. 둘째 동생과는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둘째 동생이 밀가라는 여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 밀가는 바로 셋째 동생인 하란의 딸이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근친결혼을 할 때였습니다. 밀가가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을 여덟이나 낳았다는 것입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그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동생은 부스와 아람의 아비 그므엘과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나홀이 밀가와 결혼해서 아들 여덟을 낳았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런데 이 읽기도 복잡한 아이들의 이름을 성경은 모두 기록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23절에 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처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그 이유는 이 여덟명 중에 성경에서 관심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여덟 번 째 아들인 브두엘입니다. 브두엘에게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바로 그 딸인 리브가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특별한 ‘이삭’, 평범한 ‘리브가’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와 같은 삶을 산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더욱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축복을 전달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복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이삭은 혼자 복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 이삭에게는 아내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아내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 아내도 이삭과 동일한 축복을 전달할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리브가가 태어나게 된 경위를 성경은 자세히 추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복의 계획과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조금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삭은 기적적인 출생아였습니다. 이삭은 정상적인 출생의 방법으로라면 태어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1백세에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에 하나님의 특별한 도움으로 세상에 태어났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하나님이 그를 번제로 드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이삭을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칼로 내리치려할 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그를 죽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삭의 생존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기적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복의 자녀를 낳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나홀의 막내 아들 브두엘의 딸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보통 평범하게 있는 일입니다. 누구나 결혼하면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가 아이를 낳습니다. 극히 자연적인 출생입니다. 초자연적인 출생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삭은 초자연적인 출생과 생존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발견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초자연적인 삶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삶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출생은 초자연적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출생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했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고 아이를 잉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삶 전체는 인간과 동일한 모습을 가지고 말구유에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눈 먼자를 보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일으키셨지만 그의 삶의 대부분은 자연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고, 창녀와 죄인과 세리를 만나 주셨습니다.
배가 고플 때와 목마를 때가 있었고 ,피곤할 때가 있었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우리와 동일하게 고통을 경험하셨습니다. 우리와 동일하게 외로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두 가지 모습을 봅니다.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모습과
인간적이고 극히 자연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포함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항상 기적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 개인에게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초자연적인 일들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이성으로 해석할수 없고 경험으로 동의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적이 계속되지 않습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신령한 사람도 영적인 체험이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초자연적인 기적이 나타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은 자연적인 것이고 일상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속한 성도이지만 건강한 시민이 되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특별한 선택을 받았어도 오만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입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느끼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을 꼽으라면 나사로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서 시체가 부패했을 정도로 시간이 지난 후에 예수님이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그는 초자연적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영원히 살지 않았고 나이가 들어서 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 두가지를 포함한다는 사실을 이삭과 리브가를 통하여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를 통하여 배우는 것은 초자연적인 것이든 자연적인 것이든 하나님의 구원과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약속을 통하여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은 약속을 통해 이삭이 태어났고 약속을 통해 리브가가 태어나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룬다는 사실입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서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아니하시며 하나님은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시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통해 복을 주시며 당신의 말씀을 통해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분이 메시아입니다.
출처 : 하용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