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한 삶, 배움에 관하여.
24.02.15 문예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해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랴.”
중학교 1학년 시절, 논어를 처음 읽게 되었을 때, 첫 페이지에 마중 나온 이 글을 보고 격한 공감을 했었다. ‘배움'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21살이 된 지금, 10대를 돌아보면 배움을 쉰 적이 없다. 난 항상 뭐든 배우고 싶은 사람이었고, 지금까지도 배우고 싶은 것만 가득 쌓여있다.
최근에 ‘소수책방'이라는 책방에 갔었다. 그곳에 책방 주인분이 월간 질문지를 하나 주셨는데, 그 질문지의 첫 질문이 이러했다.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지겨운 시간들과 외로운 시간들을 견뎌내야 할 것 같다. 지난한 과정의 사랑은 생각보다 크다.’ 라고 적어냈다.
‘배움'에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기초를 쌓는 작업이 필요하고, 기초를 쌓는 작업은 아주 지겹고, 느리고 답답하다. 그러나, 그렇게 기초를 다지고 나면,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새로운 것에 눈을 뜨게 되고, 새로운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나는 배움에는 지난함이 있다는 것을 중1 때 깨달았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빨리 깨달은 편일지도 모른다. 나는 초 4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었는데, 약 2년 동안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 것과 연습을 하는 것에 치를 떨 정도로 싫어했었다. 레슨 받으러 가거나 레슨 받고 집에 오면서 바이올린이 싫다고 차에서 울었던 적도 많았던 것 같다. 전공생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2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상대음감이 생기고, 맞는 음정이 무엇인지, 틀린 음정이 무엇인지, 활은 어떻게 그어야 하는지, 올바른 자세는 어떻게 취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자, 그때부터 확연히 바이올린을 좋아하게 되었다. 바이올린을 깊게 켜는 소리와 가볍게 켜는 소리의 차이를 알게 되고, 좋아하는 곡을 켤 수 있게 되고, 내가 긋는 활의 소리가 마음에 들게 되자 바이올린 켜는 것이 즐거워진 것이다. 그때 이후로, 배움에는 지난함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그리고 그것을 아는 힘은 생각보다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고등학생을 지나며 공부를 아예 포기하고 싶어질 때, 수학이란 과목이 정말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을 때, 수험생활에 있어서 이 공부가 정말 삶에 도움이 되나 싶어질 때, 그 모든 지난한 과정에 있어서 나를 견디게 해준 가장 큰 원동력은 ‘뭐라도 달라져 있겠지, 언젠간 즐길 수 있겠지' 하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되돌아보면, 그 지난한 과정 속 나의 성장이 눈에 선연히 보일 때, 나는 분명 기뻤고 즐거웠다.
중1이었던 시절, 나는 어떤 고전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전에 다녔던 독서모임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에 놀랐고,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는 그게 너무 어려웠다. 논어, 곰브리치 세계사, 윤동주 평전 등 깊이 있는 책을 읽고, 많은 양의 숙제를 해가고, 독후감을 써내고, 언니오빠들과 매주 토론을 했다. 나는 막내였기에 많은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런 토론을 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어쩌면 내 인생에 몇 번 하지 못할 귀한 경험이겠구나. 격정적인 토론, 그러나 누구도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있는 토론, 결론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언제나 열려있는 토론. 숙제로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임했다. 엄마의 힘들지 않느냐, 그만둘까, 하는 말에도 꿋꿋이 3년을 다녔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이미 바이올린의 경험으로 성장에는 인내와 끈질김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로 책을 읽는 폭이나, 책을 읽을 때의 깊이감 등이 달라졌던 것 같다. 원래 다니던 홈스쿨링 모임의 독서모임으로 돌아갔을 때, 그 고전모임에서의 토론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때의 토론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해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랴.”
아직 군자라기엔 한참 모자란 마음이지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배움을 즐겨할 수 있는 나 자신이나 내 삶에 대한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아직도 배우고 싶은 것은 산더미이고, 그중에 어떤 것을 통해 어떤 과정을 겪어 어떤 새로운 감각을 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험난한 과정들 속에 잔잔하고도 큰 기쁨들이 기대되는 마음이다. 어렸을 때는 나이 드는 것이 무섭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그 나이 듦 자체도 배움 같아 보인다. 그래서 10년, 20년 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얼마나 현명할지, 얼마나 명철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저 현재의 나는 일상의 지난함 속 단단히 기초를 쌓아가는 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