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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와 성화
글쓴이: 회복의교회 김민호 목사
이신칭의 교리를 언급할 때마다 고전적으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문제는 항상
‘성화’이다.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종교 개혁 당시‘이신칭의(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교리’는
로마카톨릭으로부터 신자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는 사악한 교리’라는 공격을 받게
하였다.
그러나 이런 적대자들의 비난은 비단 종교개혁 당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시대든지 이신칭의 교리에 대한 어설픈 이해와 무지(無知)는 적대자들로 하여금
동일한 공격을 받도록 하였다.
왜냐하면 개혁된 교인들이 이 교리에 대한 오해로 말미암아 도덕적 방종과 불경건의
기회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신칭의’라는 교리를 바르게 이해한다면 결코 이런 도덕적 방종과 아울러
칭의교리에 대한 비난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칭의는 성화를 선택의 대상으로 유보하게 만드는 교리가 아니라,
도리어 성화를 자동적으로 양산하도록 유도하는 교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성화와 관하여 두 가지를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첫 번째는 ‘성화가 칭의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칭의에 필요한 것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의’일
뿐이지 우리의 의나 공로가 아니다.
두 번째로 성화와 관련하여 이해해야 할 칭의에 대한 이해는
성화가 칭의라는 비체험적인 사실을 구체적이고 체험적으로 입증하는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이런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칭의의 목적을 살펴보아야
한다.
칭의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의 신분을 화해된 관계로
회복하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케 하는데 있다.
그러면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에서 나타난 교제 단절의 결과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어리석어지게 되었으며, 도덕적으로는 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이라는 절대 기준을 기뻐하지 않게 되었다.
인간은 우주의 중심에 자기를 두고 자기 중심적 사고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이 땅에는 사망(영적 사망, 육적 사망)이 가득하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고 교제가 끊어진 인간의 비참한
상태이다.
그런데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있는 새로운 신분을
부여받게 하였다.
하나님께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인간은 이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합법적인 근거가
생긴것이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교제를 하게 된 인류는 자동적으로 성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말하기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이렇게 자부하는 그 사람에게 성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과 여전히
원수 관계(신분) 속에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성경적으로 볼 때 ‘그렇게 밖에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차원에서 잠시 정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칭의는 ‘신분(자격)의 변화’이고, 중생은 ‘기능의 변화’이며,
성화는 ‘칭의와 중생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이전과 다른 삶의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열매로 그 나무의 어떠함을 알 수 있다(눅6:44)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열매로 입증해야 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의 열매로 입증이
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칭의와 중생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사도 야고보는 말하기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약
2:17).
이 말은 성화가 나타나지도 않으면서 스스로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상태’라고 떠들어
대는 소리는
자기의 양심을 속이는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칭의는 이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칭의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면
성화로 입증해야 하는 부담감을 품게 한다.
조지 휫필드가 ‘그토록 빨리 회심을 일구어 내는 일’에 대한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했던
다음의 말을 묵상하는 것은 칭의와 성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잠시 기다려서 사람들이 열매를 맺는지 보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봄바람이 불어와 많은 꽃들이 떨어지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이 열매를 맺는 것을 보기까지는 회심했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