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포격에도 연결 위성통신, 태양풍엔 두절
태양은 ‘핵융합’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한다. 이런 원리를 적용한 대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한국형 핵융합 연구시설인 한국형초전도핵융합장치(KSTAR). 사진 출처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일이 벌어졌다. 군사대국인 러시아의 공세에 우크라이나의 통신망은 맥없이 무너졌다. 기지국 같은 주요 시설이 파괴되니 연락을 주고받을 수가 없다. 군대뿐 아니라 민간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서비스 사용을 급히 요청한다. 스페이스X는 로켓 개발과 우주 탐사 계획으로 널리 알려진 회사다. 인터넷으로 날아온 요청에 머스크는 곧바로 답했고, 며칠 후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 서비스가 제공된다.
스타링크는 로켓으로 작은 위성을 지구 상공에 띄워 전 세계를 연결하는 인터넷 서비스다. 총 1만 개가 넘는 위성으로 지구촌 어디에서나 통신이 가능하게 만든다는 게 목표다. 지금까지 2000여 개의 위성이 하늘로 올라갔다. 위성과 연결되는 작은 장비만 있으면 기지국이나 광케이블 없이도 통신이 가능하다. 즉, 러시아가 전화국을 폭격해도 연락을 주고받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만 서비스됐는데, 전쟁을 계기로 여느 국가보다 먼저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 서비스가 개통된 셈이다.
수많은 위성으로 통신 연결을 하겠다는 구상과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미국의 모토로라가 시작한 이리듐 계획은 전 세계에 위성전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나라도 SK텔레콤이 잠시 서비스한 적이 있다. 수익이 크게 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의 사업은 철수했지만, 외국에서 가입한 이리듐 위성전화를 쓸 수는 있다. 위성은 국경과 상관없이 지구 전체에 전파를 내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작동하는 위성 서비스이지만, 태양폭풍이 일어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구에서 바람이 부는 것처럼 태양에도 바람이 분다. 태양에서는 자기장 때문에 이온 입자가 고속으로 방출된다. 이를 태양풍이라 한다. 지구에서는 태양풍을 직접 마주할 일이 없다. 지구자기장이 태양풍 입자를 지구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덕이다. 우주에는 수많은 별이 있다. 태양보다 큰 별도 무수히 많다. 만약 지구가 태양보다 더 강한 에너지를 가진 별 옆에 있었다면 지구 대기 정도는 우습게 날아갔을 것이다. 다행히도 지구에서는 태양풍 입자가 지구자기장에 산란해 만드는 화려한 오로라를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태양풍은 지구자기장의 바깥에 있는 인공위성에 큰 위협이다. 태양풍이 강하게 불어오면 인공위성이 오작동한다. 위성통신이 제대로 되지 않고, 내비게이션에 정보를 주는 GPS위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위성 역시 지금까지 쏘아올린 위성 중 약 10%가 태양풍 같은 우주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추락했다. 그래서 태양풍을 상시 관측하며 연구한다. 우리나라도 제주도에 있는 우주전파센터가 태양풍 지상 관측기를 운용하고 있다.
태양 표면에서 플라스마 폭발이 일어나는 모습(왼쪽 사진). 이때 태양에서 나온 전하입자들은 보통 사나흘이면 지구에 도착해 오로라나 자기폭풍을 일으킨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서비스하고 있는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의 운용 개념도. 태양풍이 불면 오작동이 발생할 수 있다. 사진 출처 미국항공우주국(NASA)·스페이스X
평상시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태양이지만, 가끔 태양의 흑점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분출되고, 이로 인해 생긴 강력한 태양폭풍은 지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위성 통신이 멈추는 것을 넘어 땅 위에서도 변압기가 터지고 정전이 된다. 곳곳에서 화재도 일어난다. 인프라가 잘 갖춰진 우리나라에서도 며칠 혹은 몇 달간 인터넷이 마비되는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다. 태평양 깊숙이 묻힌 해저 광케이블의 복구에는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흑점 폭발 역시 우주전파센터를 비롯한 많은 곳에서 관측하고 연구하며, 혹시 모를 우주로부터의 재난에 대비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태양에서 일어나는 일과 우주의 날씨에 갖는 관심과 투자가 꽤 부족한 편이다.
우크라이나의 스타링크에 또 다른 위협이 있다. 장비가 모두 갖춰졌어도 막상 전기가 없으면 쓸 수 없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전기 공급원인 원자력발전소를 차례로 점령하고 있는 것도 상대의 맥을 끊기 위함이다. 전기는 인류가 발명한 에너지 중 가장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다만 최근 기후변화에 맞서 어떤 방식으로 전기를 만드는 게 좋은지 논란이 많다. 여기에 다시 태양이 등장한다. 태양이 에너지를 만드는 원리인 ‘핵융합’을 지구에서도 구현하려는 노력이다. 핵융합은 원자력 발전에 쓰이는 핵분열과 반대의 원리를 이용한다. 핵분열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이 나누어지며 나오는 에너지를 쓴다. 핵융합은 수소가 헬륨으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이다. 태양이 끝없이 에너지를 방출하고 태양풍을 내뿜는 것도 태양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핵융합 덕분이다.
핵융합의 원리는 소련에서 처음 개발됐고, 많은 국가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핵융합 연구에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국가뿐 아니라 민간 기업도 핵융합에 뛰어든다. 마치 우주 개발에 여러 기업이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연구대학인 미국의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발간하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서 해마다 10대 기술을 발표한다. 이달 초에 발표된 2022년 10대 기술에는 실용적인 핵융합로가 이름을 올렸다. 민간에서 관심을 가질 만큼 기술적 발전이 있었고, 경제성도 엿보이는 상황이다. 물론 태양을 땅 위에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아직 의미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여전히 핵융합 기술은 극복해야 할 난관이 아주 많다. 그래서 핵융합 기술 개발의 옹호론뿐 아니라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 전문가도 상당하다.
21세기에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전쟁을 보며 국제사회에서는 남에게 기댈 수 없고 스스로 지킬 힘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내일의 태양은 누구에게나 뜨겠지만 풍년을 가져다주는 화사한 태양인지, 재앙을 부르는 지옥불 태양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