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행성을 나는 가졌네
조정인
흰 보자기에 싼 나무상자를 장롱에서 꺼냈습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들었던 방입니다.
꽃비린내 물큰한 봄날입니다. 오늘은
생전에 우리 모녀 못다 한 꽃구경 가요.
어느 이팝나무 아래가 좋을까, 도시락도 펴야지요.
꽃그늘 넉넉한 이팝나무를 찾아 기웃거렸습니다.
사는 일이 악몽도 길몽도 아닌, 꿈속을 더듬는 일이라
고독은 무서워 차마, 마주 볼 수 없었다 하셨습니까.
네 웃음소린 왜 그리 쓸쓸하냐
웃는 듯 우는 것처럼만 들린다, 하셨습니까.
나, 세상에 오던 해는 눈이 많아 삼월에도
눈이 잦았다지요.
―이슬이 비치고 산통이 오고, 그날은 새벽부터 눈발이 날렸어. 애 받으러 온 이 가고 핏덩이 옆에 가물가물 눈을
붙였는데, 꿈에 너 가진 지 넉 달 되고 죽은 네 애비가 와서 요 밑에 손을 밀어 넣더구나. 장작 많이 해놨으니 원 없
이 때게, 하며 방문을 활짝 열어 보이는데…… 대흥여관 문간방 앞 벽에 빼곡히 들어찬 누런 장작더미가 그리 환하
더구나.
꿈속을 더듬는 당신 눈 속에 희미한 웃음이 지나갔던가요.
이후, 사계절을 당신 방엔 내내 눈보라가 들이쳤겠습니다.
꽃그늘 짙게 밴 봄흙은 참 보드라워서 그곳에
당신 눈보라 행성을 묻을까도 생각하다가
날은 저물고 꽃그늘을 만지던 손이 다 젖어
당신 마지막 방을 꼭 끌어안고 백 년 눈밭을 걸으며
품속 당신께 가만히 물었습니다.
어머니, 오늘 꽃구경은 좋으셨는지요?
조정인
서울 출생. 199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사과 얼마예요』『장미의 내용』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 동시집 『새가 되고 싶은 양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