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천리
방민호
읍천리에 와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친구를 기다리며
아주 오랜만에 차가운 커피를 읍천리 컵에 시켜놓고
잊어버리고 있던 내 소설책에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펼쳐놓고 있는데
친구가 노란 보자기에 싼 것을 들고 나타난다
전화 목소리가 아주 상해버렸다고
몸이 맛이 갔다더니 정말인 것 같다고
마음은 또 얼마나 괴롭겠느냐고
오랜만에 읍천리에서 만나기로 한 김에
자기 이모부가 공주 지나 유구에 낚시 가서 잡아온 붕어 열 마리에
엄나무에 오가피에 숙지황에 인삼에 감초에 대추에 생강에 말굽버섯 작은 것에 영지버섯 쪼금까지
생각 나는 대로 다 넣고 푹 삶아 고았다고
꽁꽁 얼려 가져왔으니 서울 올라갈 때까지 끄덕없을 거라고
노란 보자기 안에 빈 홍삼 상자에 붕어즙 꽝꽝 얼린 것을
읍천리 탁자 위에 턱 올려 놓는다
읍천리 382번지가 뉘 고향인지 몰라도
지금 친구랑 같이 앉아 있는 사이에는 갈 데 없는 내 고향이다
공황장애 때문에 삼십 년을 직업이라고는
자동차보험 영업소장 1년에 농협 지점 1년이 고작이었지만
힘든 아파트 경비직도 두어 달 버텨 본 친구가
내가 시켜준 달달한 따뜻한 커피를 후딱 비우고
담배 한대 피우겠다고
실컷 감옥 갔다온 동네 막걸리집 단골 광렬이 얘기를 가득 풀어놓고 나간 사이에
진짜 읍천리나 가보자고 구글 검색을 한다
읍천리는 이 나라에
경상남도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하나밖에 없는데
내가 가끔 가는 포항에서 호미곶 아래로 7번 국도 따라 한참 내려가는데
거기에 읍천항이라고도 있는데
장마 지나고 진짜 뜨거운 여름 오면
소나타에 친구나 태우고 가보기나 해야겠다 생각하는 사이에
친구는 담배를 안 피우고 먹어버렸는지
금세 들어와 서울 저녁이나 먹고 올라가란다
그려, 나는 몸속 깊은 곳에 감춰둔 사투리 한 마디를 읍천리 탁자 위에 턱, 올려 놓는다
* '읍천리 382'라는 커피 체인점이 대전에도 있다.
방민호
1994년 《창작과비평》신인 평론상. 2001년 《현대시》 신인작품상 등단.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숨은 벽 』『내 고통은 바닷 속 한 방울 공기도 되지 못했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