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비가 오는 토요일입니다.
은혜로 새 날을 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2.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본문 주해)
1~6절 : 하나님이 다윗을 회개시키기 위해 선지자 나단을 보내신다. 죄인에게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이 죄를 범한 후 약 1년이 경과한 시점으로 추측되는데 밧세바와 간음하여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나단이 비유로 다윗의 범죄를 고발한다. 그것은 부자가 가난한 자의 한 마리밖에 없는 양을 빼앗아 자기에게 온 사람을 대접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단의 말을 들은 다윗은 즉시 분노하면서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고 한다. 양을 빼앗거나 훔치면 사형이 아니라 네 배로 갚으면 된다(출22:1).
그런데 다윗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자신에게 사형 언도를 내린 것이다.
7~9절 : 그때 나단이 다윗에게 ‘죽어 마땅한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말씀하신다. 목동인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신 것과 네게 무언가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이것저것을 더 주었을 것이라고 하신다.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8절)는 사울의 아내들을 다윗이 취했다는 것이 아니라, 왕권이 교체될 때에 새로운 군주가 전 왕의 후궁들을 모두 거느렸던 그 당시의 관습을 표현한 말일 뿐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우리아를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았느냐고 책망을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 것은 곧 하나님을 업신여긴 것이다.
10~12절 : 하나님을 업신여긴 다윗에게 재앙을 내리신다고 한다.
그 재앙의 내용들은 다윗의 집안에 칼이 영원토록 떠나지 않을 것이며, 다윗의 아내를 백주에 그 이웃에게 주어 동침하게 할 것이라고 하신다. 다윗은 은밀히 죄를 지었으나, 다윗이 받는 벌은 온 이스라엘 앞에 백주에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
은밀히 행해졌던 다윗과 밧세바의 간음의 현장이 후에 대낮에 재현된다. 그것은 압살롬이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하는 것을 온 백성에게 알렸던 것이다. 이는 다윗과 압살롬이 다시는 화해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백성들의 우왕좌왕하는 마음을 잡기 위한 아히도벨의 계략이었다.(삼하16:21~22)
이 모든 것이 다윗의 죄의 결과였다.
13~15절 : 이 책망을 들은 다윗은 곧 회개한다.
나단의 책망에 다윗은 두 가지로 반응할 수 있다. 즉 나단을 죽이든지 아니면 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이 회개를 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다윗의 회개에 나단이 즉시 하나님의 용서를 선언한다.
그러나 이 일로 말미암아 밧세바와 사이에 낳은 아이가 죽을 것이라고 한다. 이 아이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라고 성경은 표현한다.
나단이 돌아가고, 아이가 그때로부터 심하게 앓기 시작한다.
(나의 묵상)
나단의 책망에 다윗이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고 회개한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참 간단한다.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을 때, 심지어 아브넬이 죽었을 때도 조가를 지어 난리법석을 떨더니 이렇게 심한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질러놓고 ‘내가 하나님께 죄를 범했습니다’ 하니 끝인가....했다.
그런데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라는 표제가 붙은 시편 51편이 있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다윗의 처절한 회개와 비통한 심정, 그리고 하나님의 영으로 부어주시는 깨끗한 마음과 기쁨의 회복까지 간구하며 나아가는 이 시편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나의 묵상 시작 기도에서 늘 사용하는 구절이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10절)의 인용이다.
하여튼 다윗의 이 회개의 시편도 다윗 스스로가 알아서 쓴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고 1년이나 음흉하게 버틴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심으로 고백하고 쓰게 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것인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천하의 다윗이라도 중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고, 또 그 죄를 회개하지 않고 그냥저냥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더러움을 그냥 두고 보시지 않는 것이다.
나단이 와서 ‘그 죽어 마땅한 자가 바로 당신이야’라고 외치고,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뼈아픈 선고는 장차 다윗이 치러야 할 엄중한 대가-밧세바 사이에서 난 아이가 죽고, 또 다른 자식들이 죽고 죽이는 싸움과 압살롬의 반란 등-를 암시한다.
다윗은 회개함으로 스스로가 선고한 것처럼 당장은 죽지 않는다. 즉 분명히 용서는 받았지만 치러야 대가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은 자기 백성을 정결케 하시기 위함이다.
정결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주님께서 보혈로 덮어주신 주의 백성들은 그 보혈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자가 된다.
그런데 죄의 세력은 끊임없이 성도들을 공격한다.
육신을 입고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성도들은 늘 죄의 세력의 공격을 받지만, 늘 십자가로 달려감으로 죄의 세력을 무력하게 할 수 있다.
매일의 말씀은 내가 바로 ‘죽어 마땅한 자’임을 알게 한다.
내가 취할 밧세바가 아닌데 그토록 밧세바를 원하여 결국 죄를 짓는다. 그것이 예쁜 여자 밧세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재물과 세상 성공과 명예와 권력 등 세상 것에 대한 대한 탐심일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되면 바로 간음하는 자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리고 그 간음죄를 덮기 위해 인간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손을 쓰니 이것이 또한 살인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주님께서 알게 해 주시기까지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다. 다윗처럼 자신의 완전범죄에 안도하고 한숨을 내쉬며 평안을 꿈꾸는 존재가 되고 만다.
나단이 단호하게 선포하는 그 말을 매일의 말씀에서 듣고 또 듣는 것이 복이다.
매일, 안팎으로 죄를 뒤집어쓰고 사는 내게 말씀은 죄의 더러움과 역겨움을 드러나게 하시니, 속히 십자가로 달려가 보혈로 정함을 입는다.
그리고 다윗이 쓴 시편 51편으로 주님께 내 마음을 올려드린다.
(묵상 기도)
주님,
다윗의 진심 어린 죄의 고백을 받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죄가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그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장벽이 되니 최고의 고통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회개하지 않고 머뭇거리거나 엉뚱한 변명으로 죄를 가리고자 하는 존재입니다.
이 바보를 내버려 두시지 않고 말씀의 빛 속에 있게 하셔서
크고 작은 죄를 보게 하십니다.
때로는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 같은 죄까지도 보게 하시니
‘주님,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한숨을 내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위한 것이요,
정결한 자를 원하시는 주님의 사랑임을 알게 되니 감사할 뿐입니다.
스토리가 있는 구약을 묵상할 때
인물에 대한 의혹과 판단으로 바쁜 인간적인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사람은 참고로 하고, 오직 주님의 행하심에 집중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